
[회사 업무 기록에 최대 200만 달러]
AI 기업들이 이제 회사 안에서 사람이 일한 기록까지 사들이고 있다. 의사와 변호사에게 시간당 수백 달러를 주며 전문지식을 확보하던 경쟁이 직원들의 메신저 대화와 문서, 업무 절차로 확대되는 것이다. 기업에는 뜻밖의 수익원이지만, 직원에게는 자신이 만든 기록이 AI의 업무 능력을 키우는 재료가 되는 변화다. 누가 판매를 결정하고, 누가 활용 범위를 통제하며, 수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디지털 비즈니스·금융·기술 전문 뉴스 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는 27일, “AI 데이터 기업 마이크로1이 향후 1년간 기업 내부 데이터 확보에 10억 달러(약 1조 34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라면서 “회사 측이 제시한 중견기업 한 곳의 데이터 거래 규모는 10만~200만 달러(약 1억 4천만~26억 8천만원)인데, 다만 이는 개별 기업에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가격이 아니며, 10억 달러 역시 이미 집행한 금액이 아닌 향후 계획”이라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대상은 완성된 보고서만이 아니며, 기업용 메신저 슬랙의 대화, 구글 업무 도구의 문서, 고객관리 기록, 디자인 파일, 업무 점검표까지 포함된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일하다 쌓인 자료지만, AI 개발사에는 실제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는데, 마이크로1은 자료의 규모와 복잡성, 전문성뿐 아니라 기록들이 서로 연결되는 정도에도 가치를 둔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정답을 찾는 일과 회사에서 업무를 완수하는 일은 다르다. 실무에서는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이전 결정을 확인하고, 동료에게 질문하면서 다음 행동을 정한다. AI 기업이 원하는 것은 최종 결과물과 함께 남은 이런 맥락이다. 문서 하나보다 대화와 문서, 고객 기록이 연결된 자료가 실제 업무를 재현하는 데 더 유용할 수 있는 이유다.
확보한 데이터는 업무 수행형 AI를 훈련하는 모의 환경으로도 쓰인다. 기업 자료를 특정 시점에 고정한 뒤, AI가 그 안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 과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잘 정리된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일하는 능력을 기르려는 시도다. 다만 자료를 확보했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기업의 업무 전체를 자동화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시급 400달러 전문가에서 기업 전체로]
이 흐름의 앞단에는 전문가 데이터 시장이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16일 “민권 변호사에게 시간당 400달러(약 54만원), 응집물질 전문가에게 170달러(약 23만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최대 120달러(약 16만원)를 제시하는 구인 사례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AI 답변의 오류를 가리고 전문적인 판단 기준을 설명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전문가 개인과 기업의 기록은 서로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 전문가는 어떤 판단이 옳은지 설명할 수 있다. 조직의 기록에는 그 판단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가 남는다. 데이터 확보 경쟁이 개인의 지식과 기업의 업무 과정으로 동시에 확장되는 셈이다. 개인 전문가 모집이 끝나고 기업 자료로 대체되는 변화라기보다, 두 경로가 함께 커지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전문가의 참여 동기도 단순하지 않다. 블룸버그가 인터뷰한 영상의학 전문의 아누 브릭시는 “AI가 늘어나는 판독 수요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가 제한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주된 이유도 환자 치료 개선이었다. 전문가가 AI 학습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곧바로 자기 직업을 없애는 선택으로 규정하면, 기술의 보완 효과와 현장의 동기를 놓치게 된다.
['임대'에서 '소유'로: 전문직이 느끼는 진짜 위협]
그런데 전문가 유입이 던지는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AI와 노동시장을 연구하는 MIT의 대니엘 리(Danielle Li) 교수는 “지금까지 고용주가 노동을 '빌려' 써왔다”고 설명한다. 육체노동이든 지식노동이든 임금 지급을 멈추면 그 노동에 대한 접근권도 사라졌다. 그러나 노동이 AI 모델이라는 형태로 고용주 소유가 되면 이 구조가 무너진다. 리 교수는 “소수의 데이터 전문가 집단이 이론적으로 한 직종 전체를 대체하거나 그 가치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며 "데이터를 제공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선택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라고 경고했다.
멜버른 로스쿨의 판 양(Fan Yang) 연구원은 이를 '새로운 형태의 아웃소싱'으로 본다. 기업이 사람을 직접 채용하는 대신 AI 도구를 사고, 그 도구는 다시 단기 계약직 전문가의 손을 거쳐 다듬어진다는 것이다. 양 연구원의 해석에 따르면 AI는 인간을 대체한다기보다 노동시장에서 인간의 자리를 재배치하고 있다. 반면 리 교수는 아웃소싱이라는 비유가 변화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한다고 반박한다. 하청은 여전히 사람을 쓰지만, 모델에 흡수된 지식은 한 번 팔리면 영구히 복제되기 때문이다.
현장의 불안은 이미 구체적이다. 데이터 작업을 부업으로 하는 또 다른 영상의학 전문의 폴리 체아는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수년간 수련을 받아야 하는 의대생과 전공의들 사이에서 이 불확실성이 특히 크다고 전했다. 정작 브릭시는 다른 동기를 강조한다. 그는 근무하던 의료기관에서 폐 결절 탐지 AI가 오진을 내는 것을 직접 봤지만, 늘어나는 판독 수요를 감당하는 데 AI가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1년에 많아야 두 개 프로젝트만 맡는다는 그는 "환자 치료를 개선하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직종별 온도차도 있다. 임상의는 부업이 흔하지만, 투자은행가는 고용계약에 묶여 여유 시간이 거의 없다. 바쁜 고소득자를 붙잡기 위해 플랫폼들은 단가를 계속 올리고 있다. 프로리픽의 아나 프라이스 부사장은 "화이트칼라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은데, 이들은 일반적으로 시간은 부족하지만 돈은 많은 사람들입니다"라며 "따라서 보상은 매력적이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단계: 모든 직원이 데이터 작업자]
일부 데이터 기업은 전문가를 일일이 모집하는 단계마저 건너뛰는 미래를 그린다. 고용주에게서 직원들의 업무 데이터를 통째로 사들이는 방식이다. 마이크로1의 알리 안사리(Ali Ansari) 최고경영자는 “기업이 직원을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존재로만 볼 게 아니라 시장 가치가 있는 데이터를 생산하는 존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1월에 "직원들이 일하는 매 시간은 동시에 조직을 운영하고, AI 모델을 훈련시키고,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썼다.
이 구상은 이미 현실이 됐다. 메타는 미국 내 직원들의 업무용 컴퓨터에 새 추적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마우스 움직임과 클릭, 키 입력을 수집하고 이를 AI 학습에 쓰고 있으며, 이는 업무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를 만들기 위한 광범위한 계획의 일부다. 내부적으로 '모델 역량 이니셔티브(MCI)'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주기적으로 화면 스냅숏까지 찍는다. 메타 대변인 앤디 스톤은 수집 데이터를 인사 평가 등 모델 학습 외 용도로 쓰지 않으며 민감 정보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내에서는 사생활 침해 우려와 함께 수집을 거부할 선택권이 없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 구조가 확산되면 컴퓨터로 일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데이터 작업자가 된다.
10년간 이 산업의 변화를 지켜본 핸슨은 그럼에도 인간의 자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최근 그의 일감 대부분은 줌으로 처음 보는 사람과 최대 20분간 대화하는 작업이다. 그는 이 대화가 AI의 말투를 덜 기계적으로 다듬는 데 쓰인다고 추정한다. 핸슨은 우리 없이는 모델이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고 말한다.
[Why Times Insight]
첫째, '시급 400달러'는 보상이 아니라 매입가다. 전문가 데이터 노동의 본질은 시간 임대가 아니라 지식의 일회성 매각에 가깝다. 의사 한 명이 수십 시간 동안 판독 기준을 가르치면 그 판단은 모델 안에서 무한히 복제된다. 400달러는 높은 시급이 아니라, 한 직종의 미래 협상력을 헐값에 넘기는 '권리금'일 수 있다는 것이 리 교수 경고의 핵심이다.
둘째, 플랫폼 노동의 '두 계급화'가 AI 산업의 기본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메커니컬 터크의 폐쇄와 머코어·마이크로1의 몸값 급등은 같은 사건의 양면이다. 상층부는 전문가 프리미엄을, 하층부는 자동화된 사전 라벨링과의 경쟁을 겪는다. 오분류 소송은 그 하층부가 법정에서 제기하는 첫 집단적 저항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데이터 공급망이 지정학적 자산이 될 가능성. 엔비디아의 머코어 투자 협의, 마이크로1의 '중국 모델 개발사에는 데이터를 팔지 않는다'는 입장 표명은 전문가 데이터가 반도체처럼 전략 물자로 다뤄질 조짐을 보여준다. 영어권 전문직 데이터가 미국 AI의 해자가 될 경우, 비영어권 전문가 집단의 데이터 주권 문제가 다음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넷째, 한국도 업무 데이터의 활용 조건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같은 거래가 얼마나 진행되는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문직 판단과 기업의 업무 기록을 AI 개발에 활용할 때 어떤 원칙을 적용할지는 검토할 과제다. 사람이 일하면서 만든 기록이 새로운 자산이 된다면, 그 가치를 누가 결정하고 누가 나눠 갖는지도 함께 물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업 내부 대화에는 직원의 사적인 사정이나 고객의 비밀이 함께 담길 수 있다. 이름을 지우더라도 직책과 사건 경위, 대화 맥락을 조합하면 당사자가 드러날 위험이 있다. AI 서비스에서 정보 노출 오류와 학습 자료 추출 가능성, 대화 기록 유출 취약점이 각각 확인된 만큼, 데이터 거래에서는 익명화 여부뿐 아니라 제공 자료의 최소화와 접근 통제, 외부 유출 방지까지 검증해야 할 것이다. 다시말해 회사에서의 모든 업무 기록 중에는 내가 원치 않았던 사적인 내용까지 부지불식간 포함되어 유통될 수도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