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메뉴 닫기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
미국은 언제 공격할 것인가? 북한핵 완전 폐기 제시한 미국, 도발 기미만 있으면 바로 공격할 것 2018-04-03
김은희 yk3411@chol.com
-전쟁은 문화. 서구의 모든 나라들은 전쟁 하는 데 있어 일정한 관행을 따르는 편. 이것이 국민성
-미국인은 상대방이 싸움 시작해야 하며 자신들이 정의의 편이라고 느껴야 이기려는 의지 극대화
-트럼프가 북핵 완전폐기 끌어내지 못하면 터프한 남성성 숭배하는 백인노동자의 지지 약화될 것

최근 미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대북 온건파에서 강경파로 바꾼 트럼프 대통령의 일련의 대북 강경정책을 보면서 게임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군의 비전투 요원들과 그 가족들의 철수 계획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으며 미 항공모함들이 한반도 주변으로 속속 배치되고 있다.


▲ 미국 항공모함들이 한반도 주변으로 속속 배치되고 있다.


놀랍지 않다.

미국 문화의 논리 속에서 볼 때 북한을 공격하는 데 필요한 조치들이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전쟁은 문화다.

루쓰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지적한대로 서구의 모든 나라들은 전쟁을 하는 데 있어 일정한 관행을 따르고 있다.


예컨대 근대 이후 서구의 군대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싸우다가 이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면 적에게 항복하며, 항복한 병사도 명예로운 병사로 자부한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들은 항복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죽을 때까지 싸워야 명예로운 군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일본군과 싸우면서 그들의 전략이나 군사 행동을 예측하기 힘들어 인류학자들에게 참전국들의 ‘국민성’ 연구를 위촉하였는데 여기서 국민성은 곧 ‘문화’라고 폭넓게 부를 수 있다.


루쓰 베네딕트의 일본문화 연구서인 <국화와 칼>과 쌍벽을 이루는 미국 문화의 연구서가 마가렛 미드의 다.


이 책은 <국화와 칼>과 달리 우리나라 식자층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미국 문화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마가렛 미드의 저 책은 미국인은 어떤 조건에서 싸워서 이기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며, 어떤 상황에서 공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드에 따르면 미국인은 상대방이 먼저 싸움을 시작해야 하며 또 자신들이 정의의 편에서 싸우고 있다고 확실히 느껴야 싸움에서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극대화된다.


그리고 이는 미국 사회의 독특한 양육방식이 도덕적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를 키워내기 때문이라고 미드는 설명한다.


미국인들의 청교도적 도덕주의는 ‘양심’의 개념과 ‘진보’에 대한 젊은 세대의 믿음에 잘 나타나 있다.


마가렛 미드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의식을 갖게 하는 양심이라든지 혹은 진보라는 개념을 서구의 개인주의적 근대문화의 산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비서구 사회에서 사람들은 흔히 양심에 따라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제재에 대한 두려움에서, 혹은 벌을 받을까 또는 남들이 어떻게 볼까 두려워 규범을 지킨다.


미드의 분석에 따르면 ‘양심’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서구의 핵가족에서 부모가 직접 양육하고 훈육할 때 어린아이의 마음에 이식된다.


서구의 근대사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사회에서 부모가 직접 아이를 키우고 훈육하는 일은 드물다.


보통 조부모가 양육에 많이 참여하며 부모 이외의 친척이나 종교적 신, 혹은 귀신 같은 초자연적 존재가 훈육을 담당한다.


이들 대체물은 어린아이의 마음에 양심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하며 도덕적 제재의 효과를 둔화시킨다.


“남들이 뭐라 할까?”하는 마음에서 비난 여론만을 두려워하게 되고 부끄러워하게 만든다.

반면 부모가 자식으로부터의 미움이나 적대감, 반발을 무릅쓰고 직접 아이를 훈육하는 핵가족에서 부모는 자식이 본받아야 할 인생의 선생님이 된다.


자식에게 부모는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결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는 도덕적 권위를 상징하는 부모의 목소리를 점차 내면화하게 되는데 이는 프로이드의 심리학 용어로 초자아(super-ego)가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구의 십대들이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거치는 것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가 실제로는 그닥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도덕적 권위에 반항하게 되고 사춘기를 지나며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에 대한 답을 핵가족 밖의 사회에서 찾게 된다.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보다 도덕적으로 나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즉 사회가 조금씩 ‘진보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진보에 대한 이러한 믿음 역시 모든 문화에 존재하는 보편적 개념이 아니며 근대 서구 사회에 존재하는 독특한 개념이다.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이며 인권유린 국가이고 불량국가라는 현실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때 적어도 양심과 진보를 믿는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정의의 편에 서있다고 믿게 함으로써 미국의 북한 공격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돕는다.


북한은 이미 서구에 ‘악의 축’으로 각인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독일, 일본, 이태리를 ‘악의 축’으로 지명하였었다.

이라크 침공 시에는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자신이 정의롭고 상대방은 악의 축이라고 해도 먼저 공격하는 것이 미국문화에서 무조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미드는 미국사회에서 공격성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규제되는가를 어린이 놀이터에서 엄마가 어린아이의 공격성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통해 보여준다.


엄마는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남에게 맞지 말고 자신의 물건을 뺏기지 말라고 아이에게 외친다.


“Stand up for yourself!”


그러나 동시에 싸우지 말라고 요구한다.

싸움을 먼저 시작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특히 자신보다 작은 애를 울리거나 때리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학교에 들어가면 선생님이 놀이터에서의 엄마의 역할을 하게 되고 규칙의 개념이 주입된다.

“Play fair!”


미국은 특히 규칙을 지키는 것 이외에도 비슷한 몸집의 아이들과 싸우라는 계명을 좀 더 강조한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한편으로는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아이에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싸울 것을 부추긴다.

특히 남자아이의 경우 터프할 것을 기대한다.

아빠는 맞고 들어오는 아들에게 직접 싸움의 기술을 가르져 준다.

동시에 아이에게 싸움을 먼저 시작하지 말라고 훈계한다.


따라서 싸우고 싶은 아이는 “건드리기만 하면 가만 안둘 꺼야” 혹은 “어디 건드려 봐”하는 식으로 상대방이 먼저 건드리기를 기다린다.


He puts the chip on his shoulder.

먼저 상대방이 공격했을 때 그를 흠씬 패주는 것은 언제나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 내가 먼저 때린 거 아니야. 그 놈이 먼저 때렸어. 걔가 먼저 때렸어. 걔가 먼저 싸움을 걸었어.”


미국의 어깨 위의 chip을 건드리는 행위는 어떤 것이 있을까?


미국은 누차 경고해왔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 시민의 생명과 재산에 직접적 위협을 가한다고.


앞으로 있을 트럼프-김정은 회담에서 트럼프는 아마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 완전 폐기를 요구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이 요구를 거절하면 회담은 결렬되고 이어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미세한 도발적 행위도 미국을 건드리는 행위가 될 것이며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격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것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협상을 통하든 군사력을 사용하든 북한으로부터 핵무기 완전폐기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반공의식 강하고 터프한 남성성을 숭배하는 미국의 백인 노동자 계층의 지지가 약화될 것이다.


북한 측 입장을 두둔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북핵의 완전폐기는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일 수 있다.


그런데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기 때문에 미국은 그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이 먼저 건드리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북한이 먼저 건드릴 때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격은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전재]
관련기사
TAG

사회

국방/안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