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시간 만났지만 푸틴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종전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들려 스티브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를 모스크바로 보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시간 넘는 담판에서도 기존 전쟁목표에서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막대한 병력과 돈을 쏟아붓고도 전선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데 푸틴은 왜 전쟁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 여부가 러시아라는 국가의 손익을 넘어 푸틴 자신의 정치적 생존과 점점 더 강하게 결박되고 있다는 분석을 피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5일(현지시간), “푸틴은 크렘린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를 3시간 넘게 만났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이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 ‘구체적인 종전 제안’을 가지고 간다고 밝혔으며, 크렘린도 회담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방안을 집중적으로 다뤘다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회담이 끝난 뒤 확인된 것은 돌파구가 아니라 기존 입장의 재확인이었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외교보좌관은 회담을 "매우 유용했다"고 평가했지만 구체적인 합의는 내놓지 않았다. 로이터도 “회담에서 돌파구의 징후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푸틴 역시 “러시아군이 전장에서 진전하고 있다”면서 “전쟁의 이른바 근본 원인이 해결돼야 한다”는 기존 논리를 되풀이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러시아의 기본 요구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병합을 선언한 4개 지역에 대한 영토 요구를 사실상 수용하고 나토 가입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를 러시아에 넘기는 방식의 종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미국 특사단이 3시간 넘게 크렘린에 앉아 있었지만 양측의 가장 중요한 간극은 거의 좁혀지지 않았다.
[미국, '동결안'을 제시했을 가능성]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전쟁을 동결하자는 방안을 공식 제시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트럼프는 위트코프와 쿠슈너가 "구체적인 제안"을 가져간다고 말했지만 세부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협상 구조상 영토와 전선 문제를 빼고 종전을 논의하기는 어렵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현 전황을 토대로 휴전선이나 영토 문제를 절충하는 것이 협상의 핵심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푸틴은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해야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역시 “푸틴이 경제난이나 전선 교착에도 기존 입장을 완화할 의사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푸틴은 이기고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전황은 딴판이다]
로이터에 의하면, 푸틴이 미국 특사들에게 내세운 중요한 논리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군이 여전히 전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에도 러시아군이 도네츠크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독립적인 전황 분석은 상당히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미 전쟁연구소(ISW)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8월 한 달 동안 실질적으로 점령하거나 통제권을 굳힌 우크라이나 영토는 약 90.35㎢였다. 하루 평균 2.91㎢에 불과하다. 침투지역까지 포함해도 약 123.53㎢다. 지난해 8월 러시아군이 확보한 505㎢와 비교하면 진격 속도가 크게 둔화됐다. 더구나 우크라이나군은 같은 달 최소 129.81㎢를 탈환한 것으로 ISW는 평가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이 정도의 땅을 얻기 위해 치른 대가는 엄청나다. 우크라이나군 집계를 인용한 ISW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8월에만 4만 2,020명의 사상자를 냈다. 두 달 연속 월간 사상자가 4만명을 넘었다. 8월 실질 점령지와 단순 비교하면 점령한 1㎢당 약 46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셈이다. 이렇게 ISW가 지적하는 추세는 분명하다. 러시아는 제한적인 영토를 얻기 위해 엄청난 병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만 타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러시아 경제도 흔들린다]
전쟁의 청구서는 경제로도 넘어오고 있다. 로이터가 입수한 러시아 정부 전망 초안에 따르면, 올해 러시아 원유 생산량은 하루 약 988만 배럴 수준으로 떨어져 2009년 이후 17년 만의 최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서방의 에너지 제재와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격, 국내 연료 생산 차질이 동시에 러시아 에너지 산업을 압박하고 있다.
재정 상황도 심상치 않다. 로이터에 따르면, 푸틴 자신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올해 1~7월 러시아의 재정적자가 GDP의 2.8%로 확대됐다고 인정했다. 당초 정부 목표인 1.6%를 크게 웃돈다. 로이터는 “장기화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세금과 정부 차입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이제 러시아 내부에서도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푸틴의 지속가능발전 담당 특사 보리스 티토프는 “러시아 경제가 군사 부문에 지나치게 집중될 경우 경제 전체가 ‘폭주(go berserk)’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군사경제와 민간경제 사이의 현재와 같은 불균형은 제한된 기간 동안만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권력 내부에서도 전시경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공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푸틴은 멈추지 않는가?]
바로 이 지점이 이번 미·러 회담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대목이다. 국가의 손익만 계산한다면 러시아는 지금쯤 '얼마나 더 얻을 수 있는가' 못지않게 '얼마나 더 잃을 것인가'를 계산해야 한다. 병력 손실은 계속되고 있고 전선의 진격 속도는 둔화됐으며 에너지 산업과 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푸틴의 계산에는 러시아라는 국가가 지불하는 비용과는 별개의 변수가 하나 더 있다. 푸틴 자신의 권력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정치·경제 엘리트의 이해관계가 푸틴 체제와 더욱 강하게 묶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은 “전쟁 이후 러시아 엘리트들의 푸틴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으며 전쟁이 러시아 권력구조 자체를 변화시켰다”고 분석한다.
2022년 2월 전면침공 이후 4년 반이 지났다. 푸틴은 이 전쟁을 단순한 영토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의 안보와 생존, 나토의 동진 저지, 역사적 영토와 영향권 회복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과제로 정당화해 왔다. 실제로 푸틴이 반복해서 말하는 전쟁의 ‘근본 원인’ 역시 나토 확대와 우크라이나의 서방 편입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전쟁을 끝냈는데 그 결과가 러시아 국민에게 압도적인 '승리'로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모든 희생을 치렀는가?" 이는 푸틴이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는 뜻이 아니라, 4년 반에 걸친 전쟁의 막대한 비용과 푸틴이 제시해 온 최대주의적 전쟁 목표 사이의 간극에서 도출되는 정치적 질문이다.
['패전'보다 더 두려운 것은 '승리 없는 종전']
우리 채널은 바로 이 지점에서 푸틴의 딜레마를 본다. 이는 공개된 협상문건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전황과 러시아 국내 정치구조를 토대로 한 분석적 판단이다. 푸틴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반드시 군사적으로 패배하는 순간만은 아닐 수 있다. ‘승리’라고 설명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전쟁이 끝나는 순간이 오히려 정치적으로 더 위험할 수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은 “러시아의 전쟁목표가 단순히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획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우크라이나의 서방 안보체제 편입을 막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다시 확대하는 보다 광범위한 정치·안보 목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몇 개 주의 영토선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푸틴이 자신이 주장해온 '승리'를 완성하기는 어려워진다.
전쟁이 러시아 국내 권력구조까지 바꿔놓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카네기의 러시아 엘리트 연구는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 엘리트들의 정치적·경제적 운명이 푸틴 체제에 더욱 강하게 종속되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분석한다. 결국 전쟁의 지속과 푸틴 체제의 존속이 서로를 강화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볼 여지가 있다.
[결국 러시아의 국익과 푸틴의 이해가 갈라질 수 있다]
이번 3시간 회담은 그래서 단순히 "협상이 실패했다"는 뉴스로만 보면 안 된다. 러시아라는 국가 입장에서 보면 전쟁이 길어질수록 병력과 돈을 잃고 에너지 산업과 국가재정의 부담은 커진다. 그러나 푸틴에게는 충분한 전리품 없이 전쟁을 끝낼 경우 지난 4년 반 동안의 희생을 정치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또 다른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러시아가 부담해야 하는 '전쟁 지속 비용'과 푸틴이 부담해야 하는 '종전의 정치적 비용'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러시아의 국가적 손실이 커진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으로 푸틴의 종전 결정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미국이 아무리 새로운 종전안을 제시하더라도 푸틴이 이를 러시아의 '승리'로 포장할 수 없다면 협상 타결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번 위트코프·쿠슈너와의 3시간 회동에서 크렘린이 "매우 유용했다"는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실질적인 돌파구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바로 이 구조적 난제를 다시 보여줬다.
[Why Times Insight]
이번 미·러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3시간 동안 무엇을 이야기했느냐가 아니다. 3시간을 이야기하고도 푸틴이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러시아의 기존 영토·안보 요구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확인되지 않았고 회담에서도 종전 돌파구는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측 집계 기준 8월 한 달 4만2천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면서도 실질적으로 확보한 영토는 약 90㎢에 그쳤다는 것이 ISW의 분석이다. 원유 생산 전망은 17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고 재정적자는 당초 목표를 크게 웃돌았다. 푸틴의 경제특사마저 군사 부문에 지나치게 치우친 러시아 경제가 '폭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푸틴은 미국 특사들에게 러시아가 전장에서 진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왜일까? 우리 채널은 여기서 러시아에 필요한 종전과 푸틴에게 필요한 종전이 반드시 같지는 않을 가능성을 주목한다. 러시아에는 전쟁의 인적·경제적 손실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지만, 푸틴에게는 '승리 없는 종전'이 가져올 정치적 책임이라는 또 다른 계산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종전 협상을 바라볼 때 핵심 질문은 '러시아가 언제까지 싸울 수 있느냐'만이 아니다. '푸틴이 언제 전쟁을 끝내도 자신의 권력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하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국가가 지불하는 비용은 커지지만, 그렇다고 푸틴 개인의 종전 유인이 함께 커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러시아의 국가이익과 푸틴 개인의 정치적 이해가 충돌한다면 이 전쟁의 가장 비극적인 본질도 선명해진다. 러시아가 푸틴의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쟁이 러시아의 국가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