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잔한 바다는 끝났다”…‘오디세이’보다 뜨거워진 에게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한국에서 9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3000년 전 호메로스의 세계가 다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영화 속 트로이와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카 사이에 펼쳐진 동지중해·에게해 세계에서는 현실의 거센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2023년 이후 ‘잔잔한 바다’를 유지했던 그리스와 튀르키예가 해양공원과 영해, 에게해 도서의 군사화 문제를 놓고 다시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두 나라 모두 NATO 회원국이라는 점이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2일(현지시간), 최근 에게해를 바라보며 심상치 않은 경고를 내놨다. 르몽드는 “거의 3년간 이어진 상대적 긴장완화 이후 그리스와 튀르키예 사이의 불화가 다시 깨어나고 있다”면서 “특히 아테네대 국제관계학자 파나요티스 차코나스는 양국 관계를 표현해왔던 이른바 ‘잔잔한 바다(calm waters)’에 대해 이제 그 시대가 끝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그리스를 향해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라’고 공개 경고하면서 르몽드가 지적했던 우려가 현실의 외교 충돌로 번지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지금 세계 극장가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9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오디세우스가 목마로 함락시킨 트로이는 오늘날 튀르키예 땅이고, 그가 돌아가야 했던 이타카는 그리스 땅이다. 영화에서는 오디세우스가 두 세계 사이의 바다를 헤쳐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현실에서는 바로 이 공간을 사이에 둔 두 NATO 회원국이 다시 충돌하고 있다.
[르몽드 “3년간의 ‘잔잔한 바다’ 끝날 수 있다”]
그리스와 튀르키예 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2023년 튀르키예 대지진 당시 그리스가 신속하게 구조대를 파견하면서 양국 관계에 해빙 분위기가 조성됐고, 같은 해 12월 에르도안 대통령과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우호·선린관계 선언’에 서명했다. 이후 정상회담과 실무협의가 이어지면서 양국은 관계를 ‘잔잔한 바다’라고 표현해왔다.
그러나 르몽드는 지난달 20일 “튀르키예가 에게해와 동지중해에서 잇따라 새로운 조치를 내놓고 그리스 역시 군사협력을 강화하면서 거의 3년간의 상대적 긴장완화가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튀르키예가 8월 17일 북동부 에게해와 동지중해에 두 곳의 국립 해양공원을 지정하면서 잠복해 있던 해양경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물고기 보호구역’ 하나가 왜 국가주권 문제가 됐나?]
표면적으로 해양공원은 환경보호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튀르키예가 그은 공원의 경계가 문제였다. 르몽드에 따르면 북동부 에게해 공원은 렘노스와 사모트라키 인근 해역과 관련되고, 남쪽 동지중해 공원 역시 그리스령 카스텔로리조 주변의 민감한 해양공간과 맞물렸다. 그리스 정부는 튀르키예가 설정한 구역이 국제수역에 걸쳐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대륙붕까지 침범한다며 ‘불법’이라고 반발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조치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스는 2025년 먼저 자국 해역에 두 곳의 해양공원을 만들었고, 당시 튀르키예가 강력하게 반발했다. 튀르키예의 ‘블루 호미랜드’ 구상에 깊이 관여한 퇴역 제독 지하트 야이즈는 이번 조치가 그리스의 해양공원 지정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물고기를 보호하기 위한 선’을 긋는 문제가 어느 순간부터 “에게해의 바다를 누가 지배할 것인가”라는 주권 싸움으로 바뀐 것이다.
[에르도안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라”]
그리고 9월 2일 에르도안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등장했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던 전용기에서 에르도안은 에게해 도서의 군사화를 문제 삼으며 그리스에 기존 정책을 바꾸라고 공개 압박했다. 튀르키예는 일부 그리스령 도서가 국제조약에 따라 군사적으로 제한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그리스의 논리는 정반대다. 튀르키예 본토에는 에게해를 마주 보는 대규모 군사력이 배치돼 있고, 무엇보다 튀르키예 의회가 1995년 그리스의 영해 확대를 ‘전쟁 사유’로 간주하는 결의를 채택한 상황에서 섬의 방어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순히 ‘그리스가 비무장 섬을 무장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섬마다 적용되는 조약과 법적 지위가 다르고, 그 조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놓고 양국의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게해의 운명을 결정하는 숫자 ‘6’과 ‘12’]
에게해 갈등을 이해하려면 복잡한 국제법보다 두 숫자만 기억하면 된다. 6해리와 12해리다.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에게해에서 현재 6해리 영해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는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영해를 12해리까지 확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에게해의 지형이다. 수많은 그리스령 섬들이 튀르키예 본토 코앞까지 흩어져 있어 그리스가 영해를 12해리로 확대하면 에게해의 해양공간 구조 자체가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튀르키예 의회는 1995년 그리스가 에게해 영해를 6해리 이상으로 확대할 경우 정부가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결의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양국 관계를 짓누르는 ‘카수스 벨리(casus belli·전쟁 사유)’다.
해양공원과 해저케이블, 천연가스 탐사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군함까지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표면적으로는 환경·에너지 문제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모두 “어디까지가 그리스의 바다이고 어디부터가 튀르키예의 바다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100년 전 로잔조약도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갈등의 뿌리는 오스만제국의 해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만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는 19세기 독립한 뒤 여러 차례 전쟁을 거치면서 에게해 도서를 확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그리스군이 아나톨리아까지 진격했지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튀르키예 민족군에 패퇴했다.
1923년 로잔조약으로 현대 튀르키예의 국경과 에게해 도서의 기본적인 주권질서가 확정됐지만 갈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영해와 대륙붕, 배타적경제수역(EEZ), 영공, 일부 섬의 군사적 지위 등을 둘러싼 해석 차이가 그대로 남았다.
그래서 양국은 1987년과 1996년 실제 군사충돌 직전까지 갔고, 2020년에도 동지중해 천연가스 탐사를 둘러싸고 군함들이 대치했다. 100년 전 육지의 국경은 그었지만 바다의 경계는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셈이다.
[에르도안의 진짜 카드는 ‘블루 호미랜드’]
이번 사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튀르키예의 ‘블루 호미랜드(Mavi Vatan·푸른 조국)’ 전략이다. 르몽드에 따르면 이 독트린 설계자 가운데 한 명인 야이즈는 튀르키예를 둘러싼 약 46만2000㎢의 해양공간이 앙카라의 관할권에 들어가야 한다는 구상을 제시해왔다. 그리스 섬들이 튀르키예 본토의 해양권리를 가로막는 ‘벽’처럼 작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변화가 있다. 르몽드는 “튀르키예가 이러한 일방적 해양관할권 주장을 법률로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른바 ‘블루 호미랜드 법’으로 불리는 해양관할권 관련 법안이 올가을 튀르키예 의회에서 검토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군사독트린과 지도상의 주장에 머물렀던 블루 호미랜드가 국내법과 행정정책으로 한 단계 올라설 가능성이 있다.
[실제 에게해 하늘도 다시 뜨거워졌다]
더 불안한 것은 말싸움만 거칠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르몽드는 그리스 국방부 자료를 인용해 “그리스가 튀르키예 항공기의 자국 영공 침범으로 집계한 사례는 2024년 0건에서 2025년 225건으로 늘었고, 2026년 들어서는 이미 433건에 달했다”면서 “특히 드론의 비중이 크게 늘었는데, 물론 이는 그리스 정부가 집계한 수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2023년 이후 낮아졌던 군사적 긴장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는 신호로는 충분하다”고 짚었다.
또 하나의 시한폭탄은 그리스와 키프로스를 연결하고 향후 이스라엘까지 이어질 수 있는 해저 전력케이블이다. 예정 항로 일부가 튀르키예가 해양권리를 주장하는 지역을 통과한다. 실제로 2024년 카소스섬 부근에서 해저조사를 하던 선박 주변으로 튀르키예 군함 5척이 출동하면서 사업이 지연됐다. 올가을 해저조사가 재개될 경우 다시 양국 군함이 현장에서 맞닥뜨릴 가능성이 있다.
[키프로스라는 또 하나의 화약고]
여기에 키프로스 문제까지 있다. 1974년 그리스계 군부가 그리스와의 합병을 추진하는 쿠데타를 일으키자 튀르키예군이 개입했고, 이후 키프로스는 사실상 남북으로 분단됐다. 북부의 ‘북키프로스튀르크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지금도 튀르키예뿐이다.
지난달 30일 북부 키프로스 케레니아에서 튀르키예 타슈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전복돼 최소 8명이 숨지고 20명이 실종되는 참사가 발생했는데, 사고 지역을 어떻게 표기할지를 둘러싸고도 양측에서 감정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직접적인 에게해 분쟁의 원인은 아니지만, 50년 넘게 이어진 양측의 역사적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Why Times Insight]
이번 에게해 사태를 단순히 “그리스와 튀르키예가 또 싸운다”고 보면 핵심을 놓친다. 더 중요한 질문은 2023년 이후 유지돼온 ‘관리된 평화’의 규칙이 무너지기 시작했느냐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양국이 실제 전쟁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 나라 모두 NATO 회원국이고 경제·관광 관계도 깊다. 무엇보다 2023년 이후 정상과 외교·군사당국 사이에 만들어진 위기관리 채널도 아직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위험요인은 분명히 늘어나고 있다. 해양공원, 영해 12해리, 도서 군사화, 해저케이블, 영공 침범이라는 서로 다른 갈등이 모두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튀르키예가 블루 호미랜드를 법제화한다면 양국의 주장이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실제 국가정책으로 굳어질 수 있다.
더구나 에르도안의 외교적 시선은 이제 에게해 너머까지 향하고 있다. 그는 2일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정회원 가입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이것이 NATO와 서방을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는 튀르키예가 서방과 동방 어느 한쪽에 서기보다 양쪽 모두가 필요로 하는 국가가 돼 자신의 전략적 몸값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에게해의 긴장은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NATO 남동부 전선의 결속, EU와 튀르키예의 관계, 그리스·키프로스·이스라엘을 잇는 동지중해 에너지망, 그리고 러시아를 견제해야 하는 유럽의 안보전략까지 연결된다.
공교롭게도 지금 한국에서는 영화 ‘오디세이’가 9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오디세우스가 출발한 트로이는 오늘날 튀르키예에 있고, 그가 목숨을 걸고 돌아가려 했던 이타카는 그리스에 있다. 3000년 전 호메로스는 이 바다에서 신과 인간, 전쟁과 귀향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2026년 현실의 에게해에서는 영해와 섬, 군함과 드론, 에너지와 민족주의가 뒤엉킨 또 다른 ‘오디세이’가 시작되고 있다.
르몽드가 경고한 ‘잔잔한 바다의 끝’이 단순한 외교적 풍랑으로 끝날지, 아니면 NATO 내부까지 흔드는 지정학적 폭풍의 시작이 될지 이제 에게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