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군함이 지중해에서 사라졌다…“글로벌 해군 맞나?”]
한때 미국에 맞서는 세계적 군사강국을 자처했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에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굴욕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러시아 해군은 2013년 지중해 상설 기동부대를 재창설한 이후 처음으로 이 해역에서 상시 군사적 존재감을 사실상 상실했고, 러시아 본토에서는 정유시설과 군사기지에 이어 우주산업의 핵심시설까지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공격에 노출되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정보자산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종심타격에 깊숙이 결합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를 단기간에 굴복시키겠다며 시작한 푸틴의 전쟁이 오히려 러시아의 글로벌 군사 활동반경을 축소시키고 러시아 본토까지 전장으로 끌어들이는 역설을 만들어내고 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22일, “러시아 해군이 지중해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는데, 실제로 러시아는 지난 6월 이후 지중해에 군함을 상시 배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2013년 지중해 상설 기동부대를 재창설한 이후 10여 년 만에 처음 나타난 상황”이라고 보도해 충격을 주었다. 한 나토 관계자는 “6월 이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지적하면서 “전 세계에 함정을 배치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해군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평가까지 내놓았다.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해양 군사강국이라는 러시아의 오랜 선전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현실이다.
텔레그래프는 “이것은 단순히 군함 몇 척이 다른 해역으로 이동했다는 정도의 뉴스가 아니다”면서 “러시아는 2013년 지중해 상설 전력을 복원한 뒤 시리아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면서 동지중해를 러시아의 글로벌 군사력 부활을 과시하는 무대로 활용했다”고 짚었다. 실제로 시리아 타르투스 해군시설과 흐메이밈 공군기지는 러시아가 흑해에서 지중해를 거쳐 중동·아프리카로 군사력을 투사하는 전략적 교두보였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겠다며 전쟁을 시작한 지 수년 만에 러시아가 오히려 지중해의 상시 해군 존재감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림자함대 지키느라 전투함까지 끌어왔다]
러시아 해군의 부담을 키운 또 하나의 요인은 제재회피용 이른바 ‘그림자함대’를 둘러싼 서방과의 해상 충돌이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산 석유 운송에 관여하는 선박에 대한 단속과 억류를 강화하면서 러시아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군함 운용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 지중해와 대서양, 영국해협 등 여러 해역에 동시에 충분한 전력을 유지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용 자원이 소진되면서 선택과 집중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얼마나 궁색해졌는지는 해군 보급에서도 드러난다. 텔레그래프는 “러시아 해군이 충분한 지원·급유 능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서방 관리들이 러시아 수상함대의 상태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원양해군의 핵심은 전투함 숫자만이 아니라 보급함과 수리함, 해외기지까지 포함해 장기간 함대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인데 바로 그 부분에서 러시아의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텔레그래프는 “결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하나를 상대로 장기전을 벌이는 동안 해군의 전략적 여유까지 크게 줄었다는 의미”라면서 “흑해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미사일과 해상드론 공격 때문에 흑해함대의 활동공간이 크게 제한됐고, 이제는 지중해 상시 주둔마저 사실상 중단됐는데, 이는 러시아가 그동안 과시해온 ‘글로벌 해군’이라는 위상에 상당한 상처가 생겼다고 평가할 만한 대목”이라고 밝혔다.
[바다에서 밀려나는 사이 러시아 본토는 우크라이나의 공격장이 됐다]
더욱 굴욕적인 상황은 러시아 본토에서 벌어지고 있다. AP통신은 “전쟁 초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거리 미사일로 공격하면서도 자국 후방은 비교적 안전한 전략적 성역으로 유지했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공격은 올해 들어 더욱 확대됐으며, 러시아의 군사·산업·물류시설을 전선에서 수백㎞ 이상 떨어진 곳까지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AP가 직접 취재한 우크라이나 제413독립무인체계연대 ‘레이드’는 FP-1 장거리 공격드론을 운용해 러시아 후방 깊숙한 곳의 목표물을 공격하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러시아 사마라 지역의 전략산업시설이 대규모 공격을 받았다. AP는 “러시아 당국도 대규모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공격 대상에는 러시아 연방우주공사 로스코스모스 산하 ‘프로그레스 로켓·우주센터’가 포함됐다”면서 “우크라이나 측은 자국산 장거리 무기를 사용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한때 우크라이나 전역을 마음대로 미사일로 공격했던 러시아가 이제는 자국의 우주·미사일 산업 핵심시설까지 방어해야 하는 상황으로 뒤집힌 것이다.
[러시아의 아킬레스건 정유시설을 집중적으로 두들긴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집중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러시아의 에너지 산업이다. 로이터는 “우크라이나군은 20일 러시아 타타르스탄의 TANECO 정유시설과 크라스노다르 지역의 타만네프테가즈 석유터미널을 공격했다고 밝혔다”면서 “두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이 우크라이나군의 발표인데, 이는 단순한 보복공격이 아니라 러시아 전쟁경제의 핵심인 석유 정제와 수송능력을 장기간 떨어뜨리겠다는 전략적 타격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이러한 공격은 이미 러시아 국민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격과 계절적 수요 증가 등이 겹치면서 모스크바 일부 주유소까지 휘발유 판매량을 제한하고 있다. 가즈프롬네프트·로스네프트·루코일·타트네프트 등 주요 업체들이 판매제한을 실시했고, 러시아 정부는 연료 수출을 제한하고 석유제품 수입을 확대하는 대응에 나섰다. 세계적인 산유국 러시아가 전쟁 상대인 우크라이나의 공격 때문에 수도권에서 휘발유 판매까지 제한하는 장면은 푸틴에게 결코 작은 정치적 굴욕이 아니다.
[그리고 그 뒤에 미국 정보가 있었다]
러시아 입장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종심타격 능력 뒤에 미국의 정보지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미 상원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 마크 워너 의원은 최근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정보협력이 이전의 강력한 수준으로 복원됐다고 밝혔다. 디펜스 뉴스는 “미국 정보지원이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과 미사일이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의 목표를 공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정보지원의 수준이다. Defense News가 디 애틀랜틱의 미국·우크라이나 관계자 취재를 인용해 전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 정보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군 공격뿐 아니라 “러시아 영토 안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용 타격 패키지”에도 활용되고 있다. 관계자들은 정보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계속 무상으로 제공하는 핵심 자산이라고 설명했으며 존 랫클리프 CIA 국장이 이러한 정보협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디펜스뉴스는 “이 대목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면서 “미군이 직접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세계 최고 수준 정보·감시·정찰 능력이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타격체계와 결합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우크라이나군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방대한 정보능력까지 고려해 러시아 전역의 전략시설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특히 미국 정보가 러시아 에너지시설에 대한 ‘타격 패키지’에 들어간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이 단순한 무기공급 이상의 수준에 있다는 의미도 된다.
[10년 넘게 구축한 CIA-우크라 정보망도 다시 살아났다]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정보협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디펜스뉴스는 “CIA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 정보기관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했으며, 미국 언론들은 CIA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 우크라이나 정보요원들을 훈련하고 러시아 국경 인근에 약 12개의 비밀 전진기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보도했다. 2025년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백악관 충돌 직후 정보공유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다시 강력한 수준으로 복원됐다는 것이 미국 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 결과 러시아가 방어해야 할 공간은 사실상 전 국토로 확대되고 있다. AP는 “우크라이나군의 장거리 공격은 올해 크게 증가했고, 러시아의 석유·군수·물류·항공우주 산업시설이 모두 잠재적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공격 증가 추세를 추적한 ACLED(무력분쟁 위치·사건 데이터 프로젝트) 자료 역시 올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후방 공격이 크게 확대됐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전쟁을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 가둬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러시아의 계산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 시작한 러시아, 이제 자기 영토가 전장이 됐다]
이와 관련해 AP는 “2022년 전쟁을 시작할 당시 푸틴의 계산은 분명했다”며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단기간에 무너뜨리고 러시아의 전략적 영향권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었다”고 짚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자체 장거리 드론과 미사일을 개발했으며, 미국의 정보자산까지 활용해 러시아 후방 깊숙한 곳을 공격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정유시설뿐 아니라 대형 산업·물류시설까지 공격대상이 확대됐다.
물론 이것이 곧바로 러시아군이 전장에서 패퇴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AP는 “러시아는 여전히 거대한 병력과 미사일·드론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도시에 치명적인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며 “실제 최근에도 러시아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군사적으로 평가할 때는 “러시아의 즉각적인 전면 패배”가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기 위해 시작한 전쟁이 러시아 자신의 전략적 자산과 글로벌 군사 영향력을 계속 소모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Why Times Insight — 러시아가 잃고 있는 것은 영토가 아니라 ‘강대국의 위신’이다]
지중해에서 러시아 군함이 사라진 것과 러시아 본토 정유시설이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받는 것은 별개의 뉴스가 아니다. 두 사건은 모두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전략적 역량을 얼마나 소모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흐름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기 위해 막대한 병력과 군수자원을 투입했지만 그 과정에서 흑해 해군의 활동공간이 줄어들었고 이제 지중해의 상시 해군 존재감까지 사실상 상실했다.
특히 지중해 철수는 군사강국 러시아에게 뼈아픈 상징적 굴욕이다. 세계적 강대국의 핵심 조건 가운데 하나는 자국 연안 방어를 넘어 먼 바다에서도 지속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다. 러시아가 2013년 이후 10년 넘게 지중해에 군함을 상시 배치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그것조차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면 ‘글로벌 해군 러시아’라는 푸틴의 국가전략 자체에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상대는 미국이 아니다. 러시아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단기간에 굴복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던 우크라이나다. 그런데 그 우크라이나가 이제 1,000㎞ 이상 떨어진 러시아 후방까지 공격할 수 있는 드론전력을 운용하고 있으며, 미국의 정보지원은 러시아 에너지시설을 겨냥하는 ‘타격 패키지’에까지 활용되고 있다. 러시아가 세계 최대 규모의 핵무기와 거대한 재래식 군대를 갖고 있으면서도 자국 정유시설과 전략산업시설을 반복적으로 공격당하는 상황은 푸틴 정권이 내세워온 군사강국 이미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결국 이 전쟁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하루에 몇㎞ 전진했느냐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얻는 것과 동시에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계산해야 한다. 러시아가 몇 개의 마을을 점령하는 동안 지중해의 해군 존재감과 러시아 본토라는 전략적 안전지대, 에너지시설의 안전 그리고 강대국으로서의 위신이 동시에 훼손되고 있다.
푸틴이 시작한 전쟁의 가장 역설적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되돌리겠다던 전쟁이 러시아 해군을 지중해에서 밀어냈고, 안전지대였던 러시아 본토를 우크라이나의 타격권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에 미국의 정보자산까지 우크라이나의 종심타격에 결합되면서 러시아는 이제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과 드론뿐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미국의 정보능력까지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래서 지금 러시아가 잃고 있는 것은 병력과 전차, 정유시설만이 아니다. 푸틴이 20여 년 동안 쌓아올린 ‘미국과 세계 패권을 겨룰 수 있는 군사강국 러시아’라는 신화와 국가적 위신까지 함께 소모되고 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