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바가 약 60년 전 공산주의 체제를 전격 도입한 이래 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경제 체질 개선책을 내놓았으나 미국의 강경한 대외 노선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다. 프랑스 AFP 통신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 날 쿠바가 제안한 점진적 형태의 경제 구조 개혁안을 겨냥해 "이러한 점진적 경제 개혁은 규모가 작고, 너무 늦었다"라며 "피상적인 연막 신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앞서 마누엘 마레로 쿠바 총리는 미국의 강력한 원유 공급 차단 조치 등으로 인해 고사 직전에 몰린 자국의 심각한 경제적 침체 국면을 타개하려는 목적으로 총 176개 조항으로 구성된 친시장 성향의 개혁개방 패키지를 전격 통과시켰다. 해당 정책 과제 안에는 민영 기업들의 사업 기회 다각화, 기존의 가격 상한제 전면 폐지, 부실 국영 기업들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및 경영 자율권 보장, 외국 자본의 추가 유치를 위한 우대 조치, 금융 인프라 현대화 등이 핵심 골자로 담겼다. 이에 대해 국제 금융 시장 전반에서는 쿠바 당국이 사실상 과거 중국이나 베트남이 걸었던 사회주의 개방 발전 모델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 같은 역사적인 문호 개방 선언에도 불구하고 쿠바 지도부를 향한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국무부 대변인은 쿠바의 조치를 두고 "독재 정권의 매뉴얼에 있는 수법의 일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변화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소위 개혁 조치를 발표한 뒤 정권의 절대적 통제가 조금이라도 위협받는 순간 바로 그 변화를 되돌릴 것"이라며 일시적인 위기 모면용 전술일 뿐이라고 정의했다. 뒤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가 투자 가능한 국가로 만들고 쿠바 국민에게 자유와 존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훨씬 더 실질적인 경제·정치 개혁을 끌어내기 위해 계속 압박을 가하고 있다"라고 덧붙이며 고강도 압박 제재 메커니즘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현재 미국 당국은 쿠바 공산 정권을 국가 안보 측면의 중대한 위협 요인으로 규정하고 전방위적인 경제 봉쇄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1월 쿠바의 생명줄과 다름없던 베네수엘라산 석유 공급망을 전면적으로 차단해 차원이 다른 금융·경제적 타격을 입혔다. 아울러 미국은 쿠바 혁명의 상징적 지도자인 고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의 친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을 과거 발생한 특정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해 사법 기소 조치하는 등 지도부 개인을 직접 겨냥한 전방위 압박 카드를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