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주유소에 주유를 위해 줄을 선 사람들 [AFP=연합뉴스]
미국의 전방위적 해상 봉쇄와 제3자 제재로 이란의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치솟으면서 국가 경제가 사실상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의 장기 해상 봉쇄와 제3자 제재인 세컨더리 보이콧 등 강도 높은 경제 압박이 이란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란의 리알화 가치는 최근 1달러당 220만 리알을 넘어서며 1년 전의 달러당 100만 리알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인플레이션도 심각해 12개월 평균 물가상승률이 69.9%에 달하고 식음료와 담배 등 생필품 가격 상승률은 그 두 배에 육박한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월평균 급여는 125달러 수준으로 떨어져 이란 정부가 산정한 기본 가계 생활비인 월 450달러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고용 시장도 크게 위축되어 올봄 공식 실업률이 9.1%로 상승했고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45만 명 급감했다. 테헤란의 한 민간 기업에 다니는 마흐나즈는 "우리는 매일 가난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의약품과 식량은 제재 예외 대상이지만 미국의 제재를 우려한 글로벌 은행들이 결제를 기피하는 과잉 준수로 암 환자 등을 위한 필수 의약품 수입마저 차단됐다.
이 같은 경제난은 이란의 달러화 접근을 차단한 미국의 제재망에서 비롯됐다. 세컨더리 보이콧 발동으로 필수 재화 수입과 원유 판매 대금 결제망이 막혔으며, 과거 유령 회사나 미등록 유조선, 밀수 등을 활용하던 이란 지도부도 우회 수수료 급등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원자재 분석업체 케이플러에 의하면 이달 이란의 원유 선적량은 하루 26만 배럴로 1년 전 하루 170만 배럴의 약 15% 수준으로 급감했다. 현재는 트럭이나 기차, 카스피해의 소형 선박을 통한 극소량의 수출만 이뤄지는 실정이다.
여기에 더해 이란의 핵심 무역 허브였던 아랍에미리트(UAE)마저 이달 들어 이란과의 상업 및 금융 거래를 전면 중단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도 수입 부문 타격으로 전체 무역 규모가 25~35%가량 감소했음을 시인했다. 테헤란의 한 무역상은 "UAE 경로가 차단되면서 다른 국가를 우회해야 해 배송은 늦어지고 수입 단가는 훨씬 비싸졌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경제 붕괴에 따른 민심 악화는 지난 1월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낸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여진이 남은 이란 지도부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한 이란 고위 소식통은 "국내 산유량에도 불구하고 정제 시설 부족 탓에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휘발유 재고가 두 달 치밖에 남지 않았다"며 위기감을 전했다. 미국은 경제적 압박으로 이란 내부 봉기를 유도하고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하고 있다.
다만 이란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부담을 겨냥하며 강경한 저항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은 서방 제재를 받지 않는 중국 소규모 정유사들에 원유를 헐값에 넘기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밀착한 러시아를 제재 우회로로 활용하며 버티는 중이다. 최근 미국과 이란은 걸프 연안과 아랍 국가 내 미군 기지를 상대로 상호 타격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끌어올렸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여전히 자신들이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제 에너지 물류는 우회로 등을 통해 흐름이 유지되고 있어 이란의 군사적 압박 카드가 점차 힘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리 안사리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는 "이란은 심각한 경제적 압박 속에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력도 잃고 있다"며 "결국 그들은 협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