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개입 의지를 교란하고 우크라이나향 군수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유럽 전역의 방위산업 시설을 대상으로 은밀한 파괴 작전을 감행하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3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발발한 이래 유럽 각지의 무기 제조 및 보급 기지에서는 원인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연쇄 사고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번 달 들어 에스토니아, 이탈리아, 불가리아에 소재한 주요 방산 생산기지에서 배후가 모호한 연쇄 폭발 사태가 발생했다. 라트비아 정부는 인접국 에스토니아의 무인기 제조기업 밀렘 로보틱스 사업장에 방화를 시도한 혐의로 자국민 3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무인 체계 기술을 보유한 밀렘 로보틱스는 우크라이나 군에 무인 지상 전투 차량을 대여·공급하는 대표적인 해외 방산업체다. 크리스텐 미크할 에스토니아 총리는 사법 당국이 해당 화재 사건에 러시아 정보 기관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다각도로 조사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불가리아의 대형 민간 방산 기업인 엠코(EMCO) 소유 사업장에서도 지난 10일 대형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해당 공장은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되는 155㎜ 포탄을 집중 생산하는 핵심 거점이다. 지난 13일에는 프랑스·독일 합작 방산그룹 KNDS가 이탈리아에서 가동 중인 탄약 제조 공장에서 유사한 형태의 폭발이 관측됐다. 올해 초에도 우크라이나 측에 정찰용 드론과 열화상 장비를 인도하던 체코 제조 시설이 화재로 심각한 물적 피해를 입었다.
서방 정보 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군 총정찰국(GRU)은 자국 요원을 현지에 직접 투입하는 대신 유럽 내부의 범죄 조직망을 고용해 파괴 공작을 대리 수행하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현지 범죄자를 차폐막으로 활용하면 공작원이 현장에서 붙잡히더라도 모스크바 당국과의 연계성을 입증하기 어려워져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이 즉각적인 공동 반격에 나서기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GRU는 현지 범죄 네트워크 내에 포섭된 정보원을 거점으로 삼아 하부 실행자를 포섭한 뒤 텔레그램 등 보안 메신저를 통해 구체적인 범행을 지시하는 구조를 확립했다. 이렇게 고용된 현지인들은 암호화폐 형태로 대가를 받으며, 본인이 러시아 국가기관의 지휘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러시아가 회원국들을 겨냥해 사이버 테러, 암살 모의, 물리적 사보타주를 대폭 강화해 왔다고 전했다. 정보당국은 사이버 공격과 방화, 허위 정보 유포를 결합한 이른바 '하이브리드 전쟁'을 통해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 조약 5조의 집단방위권을 발동하기 모호한 영역에서 동맹의 결속력과 응전 태세를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러시아의 배후 공작을 무모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동맹국들의 단호하고 즉각적인 대처를 강력히 요구했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