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의 지속적인 드론 공격과 극심한 연료 부족 현상으로 러시아 내부의 여론이 악화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집권 여당을 직접 지원하는 이례적인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러시아 본토를 향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무인기 타격 범위가 수도 모스크바와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확장되면서 러시아 국민의 일상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6월 30일 보도를 통해 전쟁의 여파가 러시아인들의 삶 깊숙이 침투함에 따라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러시아 전역에서는 드론 방어를 위한 통신 통제로 인해 인터넷 접속이 차단되는 일이 잦아졌으며, 정유시설 파괴로 유류 공급에 차질이 생겨 연료 배급제가 전개되는 등 주민들의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로 인해 유류를 구하려는 차량 행렬이 길어지면서 사회적 불안감과 정권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전방위적 위기 국면 속에서 푸틴 대통령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정치적 행보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는 정부를 향한 대중의 비판이 자신에게 직접 향하지 않도록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과 의도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분리 전략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여론 악화와 더불어 통합러시아당의 지지율이 30%대 중반이라는 저조한 수준에 갇히자, 푸틴 대통령은 여당과의 결속을 과시하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통합러시아당이 선거 전면에 대통령을 내세워 조직적인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은 약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이는 다가오는 총선 패배에 대한 크렘린궁의 깊은 위기감을 반영한다.
러시아 내부의 핵심 정세 분석가들은 현지 주민들이 느끼는 심리적 고통이 통제 불능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정치학자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전쟁 피로감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분노로 바뀌었다"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현재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묘사했다. 아울러 그는 "사람들은 인터넷 제한이든 연료난이든 그저 각자 버텨내고 있을 뿐"이라며 시민들이 극심한 무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 본인도 최근 내부 회의 등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집요한 드론 공습이 러시아 국경 안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시인했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이 군사 침략을 지속하려는 철저한 의지나 우크라이나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가혹한 전제조건 하에서만 종전 협상에 임하겠다는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신은 푸틴 대통령이 민심을 수습하고 국민들의 우려를 달래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전쟁 중단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여당과의 무리한 밀착 행보는 오히려 정치적 고립을 심화시키는 자책수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친정부 성향의 여론조사기관인 사회여론재단이 실시한 최근 지표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에 대한 국정 신뢰도는 69%까지 떨어졌다. 이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이후 기록한 수치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해당 조사는 우크라이나군이 모스크바를 겨냥해 전례 없는 규모의 무인기 공습을 단행한 직후 진행되어 민심의 요동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을 심층 연구해 온 저술가 이반 필리포프는 현 상황에 대해 "전선은 끝없는 소모전이 됐고 국민은 휘발유를 사려고 줄을 서며 드론은 매일 정유시설과 군수공장을 공격하고 있다"고 현지의 피폐한 상황을 고발했다. 이어서 그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인기 없는 정당의 얼굴로 푸틴을 내세우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만 내릴 수 있는 결정"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