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연쇄 지진이 발생한 지 닷새가 지난 가운데, 구조대와 자원봉사자들이 참사 현장에서 밤샘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생존자 발굴에 난항을 겪고 있다.
우렁찬 크레인 소리와 콘크리트를 타격하는 해머 소리가 가득한 지진 피해복구 현장은 혼란과 소음으로 가득했다. 건물 잔해를 옮기는 자원봉사자들의 부지런한 발걸음과 간헐적으로 들리는 구슬픈 울음소리 사이로 구조대원의 용접 불꽃이 붉은빛을 밝히며 돌을 일직선으로 잘라냈다.
정신없이 시끄러운 현장에서 아기가 있는 것 같다는 외침이 들리자 모든 소음과 탄식이 순식간에 정적 속으로 스며들었다. 구조대원들이 녹색 담요를 건물 잔해 옆에 깔아두고 작업을 진행하자 현장의 모든 사람이 쥐 죽은 듯이 이를 지켜보았으나, 결국 아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담요는 현장에서 치워졌다. 무소불위의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에게 작은 희망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 혹독한 현실 속에서 크레인은 다시 굉음을 내며 움직였다.
카라카스 산베르나디노 지역에 위치한 '에디피시오 리타' 앞에서는 사고 발생 후 다섯째 날 밤 9시가 넘은 시각에도 자원봉사자와 구조대원들이 잔해를 치우며 생존자 확인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현장에서 구조를 돕던 자원봉사자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씨는 "5일째 밤샘 작업 중인데 잔해 속에서 20명의 시신만 끄집어낼 수 있었다"고 침통하게 말했다. 이어 "건물이 붕괴한 지 닷새째여서 살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이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에디피시오 리타는 1967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로 추정된다. 현지 전문가들은 1967년 카라카스 대지진 이후 당국이 옥상 물탱크 설치를 금지한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해당 건물 잔해 가장 위에는 과거의 건축 방식을 증명하듯 반쯤 부서진 물탱크가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주변 건물들의 상황도 심각하여 대다수 건축물 출입구에 노란색 출입 금지 선이 쳐진 상태였다. 외벽이 심하게 훼손된 건물에서 대피한 주민들은 인근에 조성된 텐트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피 주민은 "지금 너무 힘들지만, 여기 도움의 손길을 뻗치기 위해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힘이 난다"며 고마움을 전했고, 곁에 있던 가족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이 동네 인근에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수백 명에 달했다. 밤 10시가 가까워진 시간에도 이들은 직접 준비해 온 음식을 구조대와 현장 작업자, 그리고 도움을 주려고 대기하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평소보다 3배쯤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현장의 열기를 전했다. 사방이 금이 간 건물로 둘러싸인 사고 현장 인근 알타미라 광장 주변은 경찰들이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현장을 통제하던 한 경찰은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있으니 절대 진입하지 말라며 강력히 경고했다.
피해 지역에는 한국인 교민 가족이 살던 아파트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해당 건물 역시 붕괴하기 일보 직전의 위험한 상태로 확인되어 이들 가족은 곧 이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알타미라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피해를 입은 22층짜리 건물 '레지덴시아 페투니아'가 위치해 있었다. 연쇄 지진의 충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 이 거대한 건물은 흙더미와 돌 잔해, 그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철근 뼈대만이 남아 있어 거대한 굴착기조차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삼엄한 통제 속에서 진입한 건물 내부의 압도적인 참상 앞에서는 일부 구조대원과 자원봉사자들조차 말을 잃은 채 잔해를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Why Times Newsroom Desk
-미국 Midwest 대학교 박사
-월간 행복한 우리집 편집인
-월간 가정과 상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