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카셴코의 굴욕: "우리는 손바닥처럼 뻔히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째로 접어든 2026년, 푸틴이 공들여 구축해 온 반서방 동맹 체제가 곳곳에서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최측근 동맹국인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며 전쟁 개입 거부 의사를 공개했다. 아르메니아는 "우리는 러시아의 동맹이 아니다"라고 선언했고, 중앙아시아 국가들 역시 조용히 모스크바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한때 옛 소련권 질서를 상징했던 러시아 주도의 안보 체제가 결속보다 이탈의 징후를 더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독립 언론사인 메두자(Meduza)는 16일,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는 아랍 위성방송 알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벨라루스가 끌려 들어가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히며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면서 “핵무기까지 배치해 온 푸틴의 가장 가까운 동맹자가 적국 대통령에게 공개 사과하는 장면은, 러시아 외교에 전례 없는 균열이 드러난 순간”이라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루카셴코는 자신의 발언이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쳤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는 “그의 근거 없는 발언들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젤렌스키가 '500개 목표물을 알고 있다, 내일 미사일과 드론으로 타격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자신은 침묵을 지켰다”고 강조했다.
메두자는 “사과의 이면에는 벨라루스의 냉엄한 전략적 자기평가가 깔려 있다”면서 “루카셴코는 ‘벨라루스는 군사적으로 매우 취약하다’고 직접 시인했다”면서 “루카센코는 ‘벨라루스의 모든 것이 우크라이나 군의 눈앞에 훤히 노출돼 있으며, 주요 핵심 인프라 시설—생산시설과 물류 거점—이 타격을 받을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루카셴코는 “벨라루스로부터, 특히 나로부터는 어떤 군사적 행동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벨라루스 영토로 번지는 것은 절대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표면적으로는 중립 선언이지만, 실제로는 전쟁 개입을 거부하는 사실상의 이탈 선언이다.
이런 가운데 더욱 주목받은 것은 벨라루스의 안보 현실에 대한 그의 솔직한 평가였다. 메두자에 따르면 루카셴코는 벨라루스의 핵심 인프라가 우크라이나의 감시 범위 안에 있으며, 유사시 주요 생산시설과 물류 거점이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이 발언은 우크라이나 무인기 부대 사령관 로베르트 마댜르 브로비디가 벨라루스가 전쟁에 개입할 경우 벨라루스 내 약 500개 목표물을 타격할 계획이 있다고 경고한 직후 나온 것”이라면서 “즉, 루카셴코의 사과는 자발적 화해 제스처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억지력에 굴복한 현실 인식의 표현으로 읽힌다”고 짚었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루카셴코는 푸틴 역시 벨라루스의 직접적 전쟁 개입에 부정적이었다”고 전하며, “벨라루스의 전쟁 참여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이 크렘린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발언 자체가 러시아-벨라루스 '연합국가'의 결속력이 실전에서 얼마나 공허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공개 결별: “우리는 러시아의 동맹이 아니다”]
벨라루스의 거리두기가 조심스러운 신호라면, 아르메니아는 훨씬 직접적인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아르메니아 총리 니콜 파시냔은 지난 5월 7일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의 동맹이 아니다’라고 공개 선언하며, 모스크바 전승절 열병식 불참 의사까지 공식 확인했다”면서 “파시냔이 이 발언을 한 배경에는 젤렌스키의 예레반 방문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유로뉴스도 “러시아는 젤렌스키가 예레반을 방문한 것에 강하게 반발하며 아르메니아 대사를 초치했다”면서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아 자하로바는 아르메니아를 향해 ‘역사의 어느 편에 서 있느냐’고 따져 물으며, 아르메니아가 ‘테러리스트’(젤렌스키를 지칭)에게 발언대를 제공했다고 맹비난했다”고 전했다. 유로누스는 이어 “파시냔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아르메니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동맹이 아님을 재확인했다”고 짚었다.
키이우포스트는 “파시냔은 아르메니아가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을 제공해왔으며, 독자적 외교 노선의 일환으로 이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면서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과정에서 러시아가 아제르바이잔 편을 들었다는 인식이 확산된 이후 모스크바와 점진적으로 거리를 넓혀왔다”고 전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이 자리 잡고 있다. 아르메니아 내부에서는 러시아가 동맹국의 안보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확산돼 왔다. 이후 아르메니아는 러시아 주도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활동을 축소하고 미국 및 서방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이러한 아르메니아의 이탈은 러시아 주도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체제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르메니아는 CSTO 회원국임에도 러시아 주도 훈련에 병력 파견을 거부했으며, 대신 미국과의 공동 군사훈련을 공개 발표했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도 각자의 방식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키르기스스탄은 CSTO 훈련을 하루 전날 일방적으로 취소하기도 했다.
[텅 빈 전승절…러시아의 달라진 위상]
이러한 러시아의 고립은 지난 5월 9일 붉은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으로 그대로 드러났다. 이날 열병식은 단 45분으로 축소됐으며, 2008년 이후 처음으로 기갑차량 이동 행진이 생략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 우려가 직접적 원인이었고, 실제로 참가한 외국군은 북한 뿐이었다.
유로뉴스는 “외국 정상들의 참석은 사실상 전무했으며, 중장비 행진조차 없는 열병식이 되자 러시아 측은 아예 대외 공개를 최소화했다”면서 “2025년 전승절에는 29개국 정상이 참석했던 것과 극명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고 짚었다.
미국 공영방송 NPR은 “보안은 역대 어느 해보다 삼엄했다”면서 “미국이 중재한 사흘간의 휴전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타격 가능성을 차단한 뒤에야 열병식이 가능했다”고 짚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에 열병식 개최를 '허가한다'는 조롱 섞인 포고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란 위기를 계기로 러시아의 이른바 반서방 블록이 전략적 동맹이 아닌 임시방편적 이해관계의 집합체에 불과했음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러시아가 이란에 충분한 정치적·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능력 자체가 소진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한만 남은 충성 동맹…깊어지는 중국 의존]
2026년의 러시아 외교 정책은 '강대국에서 실용적 행위자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여전히 외교적 경험, 군사기술 협력, 에너지 자원이라는 카드를 쥐고 있지만, 더 이상 슈퍼파워로서의 지위가 아니라 실용적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다극화 세계가 실현되고 있지만, 그 핵심 역할을 러시아가 아닌 다른 강국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러시아 자신은 오히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북한은 현재 러시아와 상호방위협정을 맺고 실질적으로 병력까지 파견한 유일한 충성 동맹국으로 남아 있다”면서 “그러나 이 관계 자체가 러시아의 전략적 고립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빞었다. “한때 29개국 정상이 열병식장을 찾았던 모스크바가 이제 평양의 지원 없이는 전선을 유지하기 어려운 처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브루킹스연구소의 지적이었다.
[전망과 논평]
루카셴코의 이례적 사과, 아르메니아의 공개적 거리두기, CSTO의 결속 약화는 개별 사건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된 흐름을 가리킨다. 러시아가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해 온 영향력 네트워크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에서 서서히 마모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맹은 군사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공유된 이해관계와 신뢰,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의 안보 보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동맹국들에게 "모스크바가 과연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벨라루스는 여전히 러시아와 밀접한 군사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루카셴코의 발언은 그 결속의 이면에 두려움과 현실 계산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아르메니아는 이미 독자 노선을 강화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국가들 역시 조용히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가장 큰 손실은 영토나 무기만이 아닐 수 있다. 더 치명적인 손실은 동맹의 신뢰다. 푸틴은 영토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동맹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