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진짜 변화는 '정권의 약화']
106일간 이어진 미국-이란 전쟁이 휴전 합의로 일단 멈춰 섰다. 이에 대해 한국의 일부 메이저 언론들은 “호르무즈와 핵, 달라진 건 없다... 전쟁 왜 했나 의문만 남은 종전” 등의 비판적 기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ABC·NPR·로이터 등 주요 서방 언론은 일제히 ‘역사적 돌파구’라고 보도했다. 특히 이란 내부를 깊이 아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한국의 일부 언론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번 종전합의에 대해 격찬을 보내고 있다.

마국의 공영방송인 NPR은 16일, “트럼프 대통령과 이란이 3개월여에 걸친 전쟁을 종식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기 위한 초기 합의에 도달했다”고 보도하면서, “스위스에서의 공식 서명이 예정된 이 합의를 중동 전역을 불길 속에 몰아넣고 세계 경제를 뒤흔든 분쟁의 ‘중대한 돌파구’”라고 평가했다.
알자지라방송도 “금융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면서 “S&P 500 지수가 1.9% 상승하고 국제 유가는 약 5% 급락했다. 아시아 시장에서도 일본 닛케이225 지수가 5.5%, 한국 코스피가 최대 5.7%, 대만 타이엑스가 2.7% 각각 급등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서방 전문가들이 더 주목한 것은 합의문 자체가 아니라, 이 합의가 나오기까지 이란이 치른 대가였다.
[106일 전쟁이 남긴 것…이란은 무엇을 잃었나]
서방 언론의 환호 이면에서 전문가들이 더 주목한 것은 합의가 나오기까지의 과정, 즉 이란이 실제로 어떤 대가를 치렀느냐는 문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일부 한국 언론들의 왜곡도 극심하다.
지난 2월 28일 시작된 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고, 이후 그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새로운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 이란 혁명체제의 핵심 축이 전쟁 와중에 교체된 것은 건국 이후 가장 큰 정치적 충격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CNN은 “군사적 피해는 광범위하고 구조적이었다”면서 “단 12일간의 집중 공격으로 이란은 방공망, 미사일, 발사대와 생산시설의 대부분을 잃었고, 군 지휘 계통의 핵심 인물들이 제거됐으며, 선도적 핵 과학자들과 함께 핵심 핵시설이 파괴됐다”고 짚었다.
미국 국방부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발사 능력이 전쟁 이전보다 크게 감소했다”면서 “나탄즈 핵시설 역시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수천 기의 원심분리기가 파괴되었다”고 평가했다.
CNN도 “핵시설 피해도 심각하다”면서 “나탄즈 주요 농축 시설은 75%가 손상됐고, 6,000기 이상의 원심분리기가 파괴됐다”고 짚었다. CNN은 “전쟁 전 약 5,800kg이던 농축 우라늄 총재고 가운데 약 2,600kg이 타격으로 소실된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다만 산악 지하 깊숙이 위치한 포르도 시설은 30%만 피해를 입어 핵심 시설이 온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전쟁의 경제적 충격 역시 막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호르무즈 봉쇄를 세계 석유시장 역사상 최대급 공급 충격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자는 역설적으로 봉쇄를 주도한 이란 자신이었다. 호르무즈 해협 차단은 이란 경제의 생명선인 원유 수출에도 치명타를 안겼다. 스스로 만든 충격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이란계 논객의 직격탄: “트럼프의 혼돈이 바로 전략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란 출신 소셜미디어 논객 아이다 투란(Ida Turan / ایده توران, X 계정: @iranidaturan)의 분석이 영미권에서 주목을 받았다. 2014년부터 X에서 활동 중인 그는 팔로워 4만 2,100여 명을 보유한 이란계 디아스포라 논객으로,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이란인, 애국자, 왕정주의자, 고전적 자유주의자”로 소개하며 이슬람 가정에서 성장해 현재는 서방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는 연구개발(R&D) 엔지니어다. 직업적 언론인이나 학술 연구자는 아니지만, 이란 내부 분위기에 대한 생생한 현장 증언과 날카로운 체제 분석으로 미국 보수 정치 전문 매체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합의 국면이 본격화한 6월 12일 전후, 투란은 X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 방식에 대해 이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깡패는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만 물러선다”는 전제 위에서, “이란 물라(mullah) 정권의 본질이 외교를 거짓과 의도 은폐의 수단으로 삼는 혼란스럽고 무법적인 체제”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예측불가능한 방식이 바로 이 정권에 효과를 발휘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정치 뉴스 및 블로그 매체인 핫에어(HotAir)가 지난 4월 인용 보도한 이전 글에서도 투란은 유사한 논리를 전개한 바 있다. “정권은 실제로 공중 충돌을 환영한다. 항상 '강요된' '방어적' 전쟁이라고 부르는 전쟁은 정권에 축복이다. 그것이 그들이 계속 도발하고 어떠한 의미 있는 협력도 거부하는 이유다. 설령 약해져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국내 시위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더 잔인하게 진압될 수 있다. 반면 제재와 지속적 압박의 진짜 이점은 정권 내부의 균열을 심화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투란이 주목하는 핵심은 이것이 '소프트 전쟁(soft war)'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란 정권의 무장을 단계적으로 해체하고 약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설령 합의에 서명하더라도 이란 인민이 스스로 정권에 맞설 수 있을 만큼 정권이 충분히 약해질 때까지 압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는 “이란 지도부는 과거 오바마 대통령을 다루듯 트럼프를 다룰 수 없었다”고도 지적했다.
[이란 정치 지형의 근본적 변화: 모즈타바 체제의 취약한 권위]
투란의 분석이 단순한 반정권 레토릭으로 치부되지 않는 이유는, 실제 이란 지도부의 현실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3월에 이미 “이란 지도부가 심각하게 기능이 마비됐다”고 보도했다. “통신 인프라의 손상이 피해망상과 내부 권력 투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의사결정 구조가 심각하게 교란됐다”는 것이다.
abc News도 “신임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정통성 문제도 합의 과정에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면서 “미국 당국자는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이번 합의에 최종 서명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민간과 군부 측 모두 최고지도자가 현재 협상 방향에 편안함을 표명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그들의 시스템에서 최고지도자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며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유명한 싱크탱크인 Atlantic Council은 이 구조적 취약성을 더 직접적으로 진단한다.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2018년 트럼프의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2015년 이란이 군사적 목적의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독일(P5+1)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로 한 이란 핵 합의) 탈퇴 경험과 미국·이스라엘 연합이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아들을 살해한 사실을 고려할 때, 미국과의 어떠한 중대한 합의보다는 소규모의 거래적 협정에 머물려 할 수 있다”면서 “또한 미국 당국자 스스로도 이란의 강경파 일부가 합의를 무산시키려 하지만, 대부분은 합의를 원하면서도 내부 청중에게 유리하게 프레이밍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합의의 실제 내용과 남겨진 과제들]
로이터 통신이 이란 고위 당국자를 인용 보도한 MOU 내용에 따르면, “이란이 즉각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는 동시에 미국은 이란 항구 봉쇄를 해제하고, 워싱턴은 이란의 동결 자산 250억 달러를 해제하며 최종 합의 이전까지 신규 제재를 자제하고 석유 제재를 면제한다.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구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최종 합의 전까지 신규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며 고농축 우라늄을 희석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합의가 담지 못한 것도 분명하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헤즈볼라 등 역내 대리 세력 지원 문제는 이번 합의 범위에서 명시적으로 제외됐다.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정상화도 즉각적이지 않다. 107일간의 봉쇄로 원유 탱커 통과량이 95% 감소한 상황에서, 미 국방부 내부 추산으로는 전용 소해함 3척을 동원해도 기뢰 제거 작업에 최대 6개월이 걸릴 수 있다.
['온수 냄비 속 개구리': 이란 합의와 중국 에너지 안보]
눈여겨 볼 것은 배넛북(禁闻/Bannedbook.org) 등 중국어권 반체제 분석 채널에서는 또 다른 시각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론가 '타오먀오 선생'은 “이번 합의의 진짜 수혜자는 이란이 아닌 미국”이라는 독해를 내놓는다. “트럼프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함으로써 중국 공산당의 에너지 공급선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합의를 통해 중국이 즉각 반발할 명분을 제거하면서도, 에너지 목조르기라는 장기 포위망은 유지하는 '온수 냄비 속 개구리'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결론: “달라진 게 없다”는 착시, 전문가들이 보는 진짜 변화]
한국 일부 언론이 “호르무즈도 핵도 달라진 게 없다”며 이번 합의를 '빈손 종전'으로 규정하는 논거는, 어디까지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합의 조항의 미완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투란을 비롯한 이란 전문가들이 응시하는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이란 혁명정권은 이번 전쟁을 통해 최고지도자를 잃었고, 핵시설의 상당 부분이 파괴됐으며, 스스로 호르무즈를 막아 자국 경제를 피폐화했다”면서 “신임 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정통성이 취약하고, 역설적으로 이번 전쟁이 이란 지도부로 하여금 핵 억지력이야말로 자국의 미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확신을 강화시켰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점에서 후속 60일 협상은 핵·미사일·제재라는 삼중 압박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CFR(미국외교협회) 전문가들도 “핵 프로그램을 비롯한 핵심 현안을 둘러싼 향후 협상은 길고 험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합의문 한 장이 이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란 혁명정권 자체가 이미 내부에서 허물어지고 있으며, 이번 합의는 그 과정 위에 찍힌 잠정적 이정표다. 트럼프가 “세계여, 엔진을 켜라”고 선언했지만, 진짜 항로는 이제 막 설정되기 시작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