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드리드 AFP=연합뉴스) 28일(현지시간) 마드리드 시내의 한 기차역이 정전으로 불이 꺼져 있다2025년 4월 28일 현지시각 낮 12시 33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포함한 이베리아반도 전체가 단 12.7초 만에 암전 상태에 빠지며 Brunch_ xml_ns="http://www.w3.org/2000/svg" width="14" height="14" fill="currentColor" viewBox="0 0 256 256" class="transition-all group-hover/tag:ease-out duration-[500ms] ease-in text-accent-100 group-hover/tag:scale-[100%] scale-[80%] group-hover/tag:opacity-[100%] opacity-[0%] -mr-[2px]">
평범한 월요일 대낮,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와 제2 도시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전국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다. 스페인에서만 4,800만 명, 포르투갈에서 1,050만 명 등 총 약 5,500만 명이 이번 정전으로 직접 피해를 입었다.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파이스는 이를 두고 최근 역사상 최악의 정전으로 온 나라가 마비됐다고 전했다.
도심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업무 중 갑자기 전력이 끊기자 당황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마드리드 시민들은 이내 손에 쥔 휴대전화마저 먹통이 된 것을 알아채고 패닉에 빠졌다. 신호등이 사라진 도로는 "먼저 속도를 내는 사람이 이기는" 무법지대로 변했으며, 차량들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모든 교차로마다 멈춰서면서 시내 교통은 완전히 마비됐다. 먹통이 된 신호등 대신 경찰관들이 수신호로 차량을 통제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이 부재한 틈에 시민들이 직접 차에서 내려 교통 통제에 나서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지하철과 열차 역시 일제히 운행을 멈추면서 수백 명의 관광객과 통근객들이 캄캄한 차량 안에 갇히는 사태가 속출했다. 대중교통 운행 중단에 택시 수요가 폭발하자, 발이 묶인 시민들은 종이에 행선지를 직접 써든 채 도로변에 서서 차편을 구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도로 위에 갇혀 차량 라디오조차 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한 바르셀로나 시민은 "이미 세상의 종말이 온 것이냐"고 자조하기도 했다고 엘파이스는 전했다.
이번 정전은 철도, 신호등, ATM, 통신망, 인터넷 등 필수 인프라 전반을 마비시켰다. 메시지 앱뿐 아니라 일부 이동통신사에서는 음성통화까지 두절되면서, 생면부지의 행인을 붙잡고 "어머니와 연락하게 잠깐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정전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동통신 커버리지는 50% 아래로 떨어졌고, 그 반작용으로 스타링크 위성통신 사용량이 평소보다 35% 급증했다.
경제적 충격도 즉각적이었다. 대부분의 가게에서 카드 단말기가 작동을 멈추자 현금이 없는 시민들은 생필품조차 구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고, 은행 지점 앞에는 현금을 뽑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슈퍼마켓과 주유소에는 연료와 비상식량을 확보하려는 행렬이 이어졌다. CaixaBank 집계에 따르면 정전 당일 스페인 가계 소비가 34% 급감했다. 매일 바르셀로나에서 인근 도시 바달로나로 출퇴근한다는 후안 카를로스 레옹(49) 씨는 엘파이스에 "기차를 타지 못해 출근을 포기하고 근처 가게에서 휴대용 배터리와 라디오, 촛불 등 생존 키트를 샀다"고 말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가 파하기 전에 먼저 자녀를 데려가기 위해 학교 앞으로 몰려들었고, 마드리드 시내 주요 도로에는 오후 3시부터 기록적인 교통체증이 이어졌다. 생명 유지 장비에 의존하던 환자 5명을 포함해 총 8명이 숨지고 25명 이상이 다쳤다.
정전은 밤까지 계속됐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날 밤 TV 연설에서 전력망의 절반 가량에 대한 복구를 마쳤다고 밝혔으나, 전력이 언제 완전히 돌아올지는 말하지 않았다. 비상복구계획이 가동돼 사고 발생 약 19시간 만에 99% 이상이 복구됐다. 이웃한 포르투갈도 리스본과 포르투 일부 지역에서 밤늦게부터 전력 공급이 재개됐고, 이튿날인 29일에는 대부분 복구가 완료됐다.
정전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도 거셌다. 스페인 당국은 외부 침해나 사이버 공격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EU 집행위원회도 사이버 공격 가능성을 공식 부인했다. 일부 스페인 시민들은 "러시아의 소행이 아니냐"며 불안감을 드러냈지만, 당국은 어떤 요인도 배제하지 않은 채 조사를 진행했다.
수개월간의 분석 끝에 공식 조사위원회는 이번 사태를 '원인이 복합적인 위기'로 규정했다. 낮은 전력 수요와 재생에너지 과발전이 누적시킨 무효전력이 제대로 흡수되지 못해 전압이 급등하고, 이로 인해 발전기가 연쇄 차단되는 과전압 도미노가 직접적 방아쇠가 됐다는 것이다.
사이버 공격이나 단순 기상 이변의 소행이 아니라, 전력망 운영과 기술·규제 체계의 복합적 결함이 맞물린 구조적 참사였다는 게 결론이었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