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초강력 관세 정책으로 인해 갈 곳 잃은 중국 상품이 유럽 시장으로 대거 유입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유럽연합(EU)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전방위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지시간 4일, EU 집행위원회가 미국 시장에서 차단된 중국 및 아시아 제품이 유럽으로 목적지를 변경해 '덤핑' 공세를 펼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34%, 베트남산에 46%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나온 움직임이다. 도이체방크의 로빈 빈클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높은 관세 장벽에 가로막힌 중국 제조업체들이 재고 소진을 위해 유럽 시장에서 공격적인 저가 판매에 나설 것이며, 이 무역 충격이 유럽으로 즉각 전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U는 이미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35.3%포인트의 상계관세를 부과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전자와 기계 등 다른 핵심 산업 부문까지 보호 조치를 확대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한 EU 고위 외교관은 "중국이 과잉 생산된 물량을 수출로 해소하려는 모델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조치보다 훨씬 강력한 수입 제한 카드를 꺼내들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일각에서 제기되는 '미국 관세에 맞선 중·EU 협력설'에 대해서도 EU 당국은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를 경계하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EU는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이 철강 관세를 도입하자, 유럽으로 밀려드는 수입 물량을 막기 위해 할당량 초과분 공세에 25%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관세를 매긴 전례가 있다. 노무라의 안제이 슈체파니아크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미국의 대중 관세가 예상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중국의 상품 덤핑 위험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고 경고했다. 이에 EU 고위 당국자는 예기치 못한 수입 급증 시 철강 부문에서 시행했던 시장 폐쇄 조치를 전 산업 분야로 확대 적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발 무역 전쟁이 단순히 미·중 간의 갈등을 넘어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EU가 자국 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빗장을 걸어 잠글 경우, 글로벌 공급망의 혼란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중국의 과잉 생산과 미국의 관세 장벽 사이에서 유럽이 선택할 '경제적 요새화' 전략이 향후 국제 무역 질서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