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C919, 엔진 공급 차질로 사실상 생산 전면 중단]
중국이 보잉 등의 외국산 항공기에 맞서 자체 제작했다고 널리 홍보해 오던 C919 여객기의 제조가 엔진공급 차질로 사실상 전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시진핑의 항공굴기의 꿈도 사라졌으며, 중국내 항공기 수요를 중국산으로 대체하려 했던 그 꿈 또한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9월 29일, “중국 C919 제트여객기의 주문이 미국의 엔진 공급 중단으로 인해 생산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했다”면서 “이로써 에어차이나와 중국동방항공에 2025년까지 각각 10대를 인도한다는 계획을 잡았으나 이미 상반기에 인도된 1대 외에는 더 이상 생산 날짜를 잡기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SCMP는 이어 “에어버스 A320과 보잉 737 항공기 제품군과 경쟁하기 위해 설계된 단일 통로 여객기를 개발하는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는 2024년에 국유 항공사 3곳으로부터 수백 대의 주문을 받았다”면서 “두 서구 거대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진출을 목표로 하는 상하이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2023년 5월 C919의 첫 상업 비행 이후 200만 명이 넘는 승객을 수송하며 이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고 짚었다.
SCMP는 “그러나 중국산 여객기를 만드는데 있어 필수적인 엔진 공급이 미국 정부에 의해 중단됨으로써 중국산 여객기의 생산 또한 좌절되었다”면서 “이로 인해 중국산 여객기의 생산 일정을 전혀 잡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SCMP는 “최대 192명의 승객을 태워 최대 5,555km(3,452마일)를 운항할 수 있는 이 항공기는 지금까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내 시장을 대상으로 운항해 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에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 시작한 광범위한 무역 전쟁의 여파를 느끼고 있다”면서 “미중간 무역 갈등으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는 GE 에어로스페이스가 C919에 사용되는 LEAP-1C 모델을 포함한 항공기 엔진을 코맥(Comac)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다가 7월에 해제하기는 했지만 현재 원활한 수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엔진들은 미국 GE와 프랑스 사프란 에어크래프트 엔진(Safran Aircraft Engines) 컨소시엄에서 생산된다.
이에 대해 독립 항공 분석가 리한밍은 SCMP에 “LEAP-1C 엔진에 대한 수출 금지 조치는 일단 해제되었지만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지금은 LEAP-1C 엔진 수입을 추진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할 정도로 위축되어 있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항공 정보 및 자문 회사인 IBA는 8월 전망에서 “미국산 핵심 모듈에 대한 의존이 제조업체의 전략적 취약점으로 남아 있다”고 경고하면서 “COMAC은 일부 엔진과 핵심 시스템을 비축해 놓았지만, 현대 항공우주 제조의 현실로 인해 이러한 여유분은 수년이 아닌 수개월 분의 생산에만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관점에서 중국 항공사들이 그렇게 많은 여객기를 도입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경제 데이터 제공업체 CEIC Data는 “작년 중국의 항공기 1대당 활용률은 평균 8.9시간이다”면서 “반면 민간 항공 분석 회사 Cirium은 2024년 단일 통로 제트기의 세계 평균은 9.3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짚었다. 한마디로 중국이 여객기 도입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데 지나치게 외부 과시용으로 여객기를 과잉도입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중국, 중국의 한계 인식해야]
사실 중국은 자국산 여객기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보일 때부터 ‘뱁새가 황새따라가는 꼴’이라는 지적이 많았었다. 중국이라는 대국이 미국이나 유럽산 여객기에 의존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중국산 여객기를 무턱대고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지만, 사실은 말로는 중국산이지 실체는 핵심 부품인 엔진부터 주요 안전 관련 부품들은 모두 수입산이었기 때문에 이를 놓고 중국산 여객기라고 자화자찬하는 것부터가 오버액션이었다.
사실 중국의 자체 개발 여객기에 대한 꿈은 거창했다. 중국은 2007년 중형 여객기 개발 계획을 세웠고, 2008년 이 사업을 담당할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를 설립했다. 중국이 이렇게 자체 개발 여객기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2021년 기준 등록 민항기 대수가 4045대에 이르는 세계 최대 민항기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장을 계속 보잉사와 에어버스에 내주지 않고, 자체 개발 여객기로 충당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 여객기의 자체 개발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처음엔 2016년쯤 상업 운항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여객기 설계와 제조, 비행 성능, 안정성 등의 분야에서 계속 문제가 생겨 차일피일 일정이 미뤄졌다.
특히 여객기의 핵심 부품들을 중국에서 자체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랜딩기어를 자체 개발했는데, 강도가 떨어져 미국산으로 대체하는 일도 있었다. 랜딩기어가 이럴 정도면 진짜 중요한 엔진 등에서는 어떤 문제들이 있었을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러다보니 여객기 제작에서 가장 핵심적인 엔진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프랑스 샤프란(Safran)의 합작 법인인 CFM 인터내셔널(CFM International)이 만든 것을 쓰고, 제동·제어 체계, 통신 및 착륙 장치, 항법 및 항공데이터 기록 장치 등도 모두 외국산이어서, 진짜 자체 생산 여객기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48개 부품 공급 기업 중 중국 기업은 7곳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기체와 날개, 내부 인테리어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치를 서방 기업으로부터 공급받았다. 상황이 이러니 C919를 ‘민족의 자랑’으로 선전하지만, 사실상 무늬만 중국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항공기의 가장 복잡한 부품 생산을 서방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방 회사의 재산권과 A/S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게 중국의 독자 기술이 아닌, 해외 부품·기술에 의존하다보니 지금 COMAC이 주문을 받은 여객기들을 다 제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특히 지정학적 변수가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항공기 제작은 당장 올스톱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이코노미스트인 해리 머피 크루즈는 “공급망에는 공급 부족, 자연 재해 또는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한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것이 이번에 미중충돌로 인해 현실화된 것이다. 이제야 중국당국도 자국산 여객기 생산의 한계를 어느 정도는 깨달은 듯 보인다.
물론 미국산 엔진의 대체 기술을 중국의 ‘에어로 엔진 코퍼레이션’도 개발하고 있다. 실제로 LEAP-1C를 대체할 CJ-1000A 엔진을 개발 중이지만 성공까지는 앞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른다. 이에 대해 아시아 스카이 그룹의 컨설팅 서비스 디렉터인 데니스 라우는 “이 엔진은 빨라야 10년 안에나 취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독자 엔진이 아닌 LEAP-1C 카피 제품이다.
꼭 지정학적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만약 중국산 여객기의 시장이 더욱 확대된다면 에어버스나 보잉에서 그저 쳐다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당장 COMAC의 여객기 부품 공급망에 스트레스를 줄 수 있어서다. 그렇게 되면 중국산 여객기의 추가 생산이 언제, 또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그야말로 미지수다.
여기에 GE 등이 만든 C919의 엔진 수급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SCMP는 이에 대해 “엔진 제조업체인 CFM 인터내셔널도 에어버스와 보잉 항공기에 유사한 엔진을 공급하고 있는데, 기존 주문량이 많기 때문에 생산량을 늘리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중갈등이 있는 한 중국산 여객기 확장은 사실상 불가능]
이런 상황에서 중국산 여객기라고 말하는 C919의 자체 생산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아닌 시진핑 주석이다. 미중 무역 갈등이 중국의 경제를 완전히 휘감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산 여객기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과의 관세전쟁 국면에서 미국에 보복한답시고 미국 보잉에 발주한 3대의 여객기를 미국에 반환한 데 이어 올해 인수하기로 한 29대를 모두 반납하는 쇼를 벌인 바 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중에서야 중국산 여객기 제작의 현실을 깨달은 시진핑은 돌연 미국과의 갈등 해소를 명분으로 보잉 여객기 500대와 유럽의 에어버스 500대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자국산 여객기라 말하는 C919 생산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특히 중국이 보잉으로부터 도입하기로 한 여객기의 기종 자체가 COMAC이 조립 생산하고 있는 단일 통로 항공기인 737맥스 시리즈다. 이는 사실상 중국산 C919의 생산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중국의 COMAC이 사실상 생산 자체를 포기해 버린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어쩌면 이제야 중국은 항공기에 관한한 자국의 실력과 가능성 여부를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보잉사와 에어버스의 여객기 1천여 대를 구매하기로 결정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이것이 중국의 수준이고 무역 대응 능력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중국의 경제 운용 능력이나 국제적 외교 감각이 얼마나 무디고 형편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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