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트럼프·시진핑 석달만에 통화, 베이징 만남 무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간의 베이징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대신 오는 10월말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기로 했다. 어떤 식으로든 정상회담을 하기는 하는 것이지만 베이징에서 11월 미중정상회담을 열기를 학수고대했던 중국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베이징의 정치 풍향도 요동을 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20일(현지시간) “많은 기대를 모았던 트럼프-시진핑간 전화통화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에 양 정상이 만나기로 했으며, 틱톡(Tiktok)에 대한 합의도 이루었다”면서 “이번 대면 회담은 미국 대통령 복귀 이후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두 나라의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이며, 워싱턴과 베이징 간의 오랜 갈등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이날 오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서 “틱톡에 대한 합의를 포함해 무역, 펜타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사안에 대해 진전을 이뤘다”며 “(10월 말 있을) 경주 APEC 정상회의 때 시 주석과 만나고 내년 초에 중국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어 “전화가 아주 잘 이뤄졌고 우리는 틱톡 합의에 대한 승인을 축하했다”며 “APEC에서의 만남이 기대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회담 이후 이번 통화에 대해 “실용적이고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평가된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미·중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며 “양측이 상호 번영과 윈윈(win win) 협력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관세 전쟁’과 관련해 “일방적인 무역 제한을 피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고, 미·중이 큰 틀의 합의를 이뤘다고 밝힌 틱톡의 미국 내 사업권 매각과 관련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재확인했으며, 미국 내 중국 기업을 위한 개방적이고 공정하며 차별 없는 환경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렇게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을 절실히 요청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이는 중국에겐 상당한 충격적 결과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우리 채널은 “트럼프 베이징 방문 위해 올인한 中, 정상회담 성사에 시진핑 명운이 달렸다!”는 제목의 ‘중국관찰’(유튜브 3544회)을 통해 자세히 분석한 바 있다.
[왜 베이징 미중정상회담은 무산되었을까?]
이 시점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왜 베이징에서의 미중정상회담이 무산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것 자체가 시진핑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밀고 당기는 정치적 거래를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을 만나주기는 하겠지만 시진핑이 미국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의 한계를 시험했지만, 결국 미국이 원하는 만큼 다 주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경주에서 시진핑을 만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미중간 거래의 단초를 틱톡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측이 틱톡을 미국에 넘겨주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마지막 고리였던 알고리즘까지 미국측에 전적으로 넘길 것인지에 대한 합의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관영 신화통신은 “시 주석은 틱톡 문제에 대한 틱톡 측의 의사를 존중할 것을 강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문제의 적절한 해결을 위해 양측 간 협의를 지지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를 보면 미국측의 결정적 요구사항이었던 알고리즘의 미국 이전에는 합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을 베이징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은 결정적 포인트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입장에서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최근 미국이 틱톡의 중국 소유주(바이트댄스)에게 미국 사업을 매각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중국 당국은 ‘강도짓’이라며 적극적으로 비난해 왔었다. 그런데 만약 틱톡의 알고리즘까지 미국에 다 넘기게 되면 중국내에서 불 역풍을 중국 당국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관영 언론은 트럼프-시진핑 전화통화 이후 틱톡 매각에 대해 “거래를 진전시키기 위한 것으로 윈윈 협상”임을 적극 강조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트럼프가 틱톡에 대해 시진핑으로부터 일부 양보를 얻어낸 것은 우선 순위에서 상징적인 승리를 안겨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바로 젊은 유권자들과 소통하고 재선에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동영상 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 틱톡에 대한 안보 우려 제기 당시 알고리즘을 통한 중국측의 공작 등의 우려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알고리즘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해결책을 놓고 여전히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 스콧 케네디는 “양측의 공식 성명에서 최종 합의에 대한 세부 사항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이는 협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 싱크탱크인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의 전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이자 현 부소장인 대니 러셀은 “이번 통화에서 구체적인 결과에 가장 가까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틱톡 계약 확인이지만, 알고리즘 통제라는 가장 민감한 문제는 건너뛰었다”고 말했다.
[베이징 정상회담 무산으로 인한 중국측 실망감 뚜렷]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베이징에서의 미중정상회담이 무산된 것에 대한 중국측 반응이다. 이날 전화 통화후 신화통신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양 정상간 통화 내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면서도 정작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이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양자 회담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이와 함께 또 하나 밝히지 않은 부분이 바로 틱톡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중국의 심정을 그대로 표출해 준다.
사실 시진핑이 트럼프 대통령을 베이징에서 만나느냐, 아니면 경주 APEC에서 만나느냐 하는 문제는 시진핑이 중국 국민들, 특히 중국의 최고 지도부에 주는 의미는 180도 다르다. 만약 베이징에서 미중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면 이는 미국의 대통령이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인정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고, 또 이를 계기로 정국의 안정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주에서의 미중정상회담은 우선적으로 다자회담이 열리는 와중에 끼어드는 것이어서 회담 시간이 길지도 않게 된다. 이는 베이징에서의 단독 정상회담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 땅에서 정상회담을 열게 되면 최고 2박 3일간은 시진핑-트럼프의 만남을 독점적으로 갖게 되면서 중국 국민들에게 시진핑의 위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지만 다자회담인 APEC에서의 회담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는 결정적인 차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APEC을 계기로 한 미중정상회담 개최가 10월 하순에 예정된 4중전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흥미로운 소식이 하나 있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베이징에서는 샹산포럼이 열렸다. 샹산포럼은 서방국가의 샹그릴라 포럼과 경쟁을 하면서 시진핑의 안보 구상과 중국 공산당의 군사외교의 장을 펼치는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샹산포럼에 대해 서방국가들은 깊은 관심을 가져 왔고 언론들도 이를 집중 취재해서 보도하곤 한다.
그런데 올해 샹산포럼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우선적으로 당연히 있어야 할 시진핑 주석의 축전이 없었다. 샹산포럼은 항상 시작할 때 시진핑 주석이 보낸 축전을 낭독하고 시작했지만 올해는 이 축전이 아예 생략됐다. 시진핑이 아예 축전을 보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보냈음에도 군부에서 이를 차단해 버린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찌되었건 시진핑의 축하 메시지가 샹산포럼에서 삭제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두 번째로는 중국 당국의 국방정책과 관련해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는 이가 바로 국방부장인데 올해도 역시 등쥔 부장이 나와 기조연설을 했다. 그런데 샹산포럼을 보도한 신화통신에서 등쥔의 사진은 아예 없었다. 지난해에는 등쥔 부장의 클로즈업 사진과 행사장 대형 스크린에 상영된 대형 초상화가 함께 담긴 사진을 게재했었다. 또한, 인민일보, 중국공산당 군사 홈페이지, 국방부가 올해 신화통신의 보도자료를 공개했지만, 글만 실렸고 사진은 역시 없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신화통신이 장엄한 연단의 모습을 담아낼 예정이었던 사진에 연단이 텅 비어 있었고, 현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도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작년의 전례 없는 장엄한 행사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흥미로운 점은 또 있다. 중국 관영 언론들의 보도에 장유샤가 크게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요한 군사회의 관련 보도는 분량이 300단어에 불과했으나, 장유샤 부주석이 손님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장면을 담은 기사는 무려 600단어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과연 다가오는 4중전회에서는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까? 그러한 사실들이 과연 시진핑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분명한 것은 베이징에서의 미중정상회담 무산이 시진핑이게는 확실히 악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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