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중국 공산당 금서 지정했던 ‘숭정’, 다시 출간돼 화제]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에 대한 책이 시진핑과 연관됐다는 소문이 나자 지난 2023년 10월, 돌연 금서로 지정되면서 서점에서 일제히 사라진 바 있었는데, 시진핑의 권력 이상설이 나돌면서 다시 중국 본토의 웹사이트에서 판매가 재개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 중국의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표출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관찰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대기원시보는 16일, “중국 본토에서 지난 2023년 출간된 책 『나라를 잃은 근면한 왕 숭정(崇珍)』이 시진핑 주석을 암시한다는 의심으로 2023년 10월 서점에서 판매가 중단되었지만, 같은 해에 서점에서 판매가 중단되었던 같은 저자의 또 다른 책 『숭정전(崇禎傳)』은 현재 중국 본토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를 재개했다”면서 “현재 중국도서망(中國圖書網)과 당당망(當當網) 등 중국 본토의 유명 서적 판매 웹사이트들을 검색한 결과, 고(故) 중국 역사학자 천오통(陳梧桐)의 저서 『숭정전(崇禎傳』이 판매 중인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책은 명나라(1368~1644)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를 다룬 역사서인데 핵심 내용이 “그가 열심히 일할수록 나라가 망한다!”는 내용으로 이것이 시진핑 주석을 사실상 가리킨다는 소문들이 SNS로 퍼져 나가면서 돌연 금서로 지정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023년 10월 21일, “『숭정제: 실패한 왕조의 부지런한 황제(崇禎: 勤政的亡國君)』라는 이 책이 금서가 됐다”며 “약 400년 전의 황제의 비극을 다룬 이 책이 지금 서점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검열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明 역사서가 금서? “그가 열심히 일할수록 나라가 망한다!”]
이 책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고위 관리들을 숙청하고 왕국을 잘못 운영하다가 반란군이 베이징을 점령하자 자금성 밖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책 제목에서도 나타나지만 황제가 열심히 일할수록 제국을 어렵게 만들면서 결국 붕괴를 재촉했다고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무능한 황제가 워낙 어리석은 탓에 국가를 위한다는 많은 조치들이 실수로 이어졌으며 여기에 부지런함이 나라의 몰락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쓰고 있다.
FT는 이에 대해 “중국은 현재 집권 중인 지도자들을 연상시키며 유사점을 그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검열의 대상으로 삼아왔다”며 “중국 내에선 '곰돌이 푸에 이어 과거 황제까지 문제 삼느냐'는 비판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FT는 이어 “‘당국은 무엇이 두려워서 금서조치를 내린 것인가?’라고 항의하는 네티즌들이 많았다”면서 “중국은 지금까지 과거 황제들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고 또 이를 지금의 삶에 많이 적용하는데 당국의 금서 조치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있다”고 적었다.
사실 중국에서는 책을 출간하기 전에 검열관의 반복적인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그런 단계를 거쳐 출간된 책이 금서가 되고 또한 회수 조치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오히려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도 이 책의 소식을 전하며 “시사 평론가들은 온라인 댓글에서 1368~1644년 명나라의 몰락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주석이 집권하는 중국의 현재 상황을 분석한 내용이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 책이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한 시사 평론가 왕젠은 “이 책은 누군가 권력을 남용하면 불행이 닥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민감한 주제가 되었을 것”이라며 “사회적 합의와 대중의 감정이 반영되지 않았다면 절대 금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닮은 꼴 숭정제와 시진핑, 거부감 확산 증거]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볼수록 숭정제와 시진핑의 통치방식이나 그 결과로 나타난 것들이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628년 17세의 나이로 즉위한 숭정제는 망국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평가가 비판 일변도이지는 않다. 이전 황제들과 달리 사치를 하지도 않았고, 권력을 남용하던 환관 세력을 제거해 정치 개혁을 꾀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숙청 등 정치 개혁의 과정에서 정쟁을 격화시켰고, '이자성의 난'으로 불리는 농민 봉기와, 후금의 침입 등을 막지 못하는 결정적 실책을 범했다. 숭정제는 결국 반란군이 진격해오자 후궁 등을 죽이고 본인은 자금성 밖 나무에 목을 매 자결했다.
그런데 금서가 된 이 책은 사실상 무능하다고 봐야 할 숭정제가 열심히 일을 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바로 이러한 대목이 시진핑 주석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 중국의 위기는 시진핑 주석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기인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중국 경제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미국과의 패권전쟁에 나서면서 비롯된 것이고, 경제에 대해 문외한이면서도 경제전문가들을 중용하지 않은 탓도 있다.
실제로 시진핑 3기가 출범하면서 경제전문가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시진핑 충성파 일색으로 내각을 꾸린 것도 중국 상황을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여기에 제로코로나 정책을 무지막지하게 시행하면서 중국 경제를 초토화시킨 탓도 크다. 한마디로 시진핑이 손대는 일마다 중국 사회를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바로 이점이 숭정제와 유사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시진핑이라는 이름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국 당국이 이 책을 검열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희화적이다. 그 말은 곧 중국 당국도 시진핑의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진핑 주석에 대한 불만 표출에 대해 중국 당국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말이고, 시진핑에 대한 부정적 평판 확산이 국가를 흔들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FT도 “시 주석 집권 후 검열은 계속 강화됐지만 특히 최근 더 심해졌다”며 “팬데믹을 지나며 경제가 더 어려워졌고, 특히 소비자들과 소상공인들 사이에 (정권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FT는 또한 “시 주석 본인이 역사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이유 역시 검열 강화의 배경”이라고 소개했다.
영국 런던 킹스 칼리지의 중국학 전문가 케리 브라운 교수도 FT에 “시진핑 주석 본인이 역사엔 패턴이 되풀이된다는 믿음을 가진 듯하다”며 “연설문에도 역사의 교훈을 많이 포함시킨다”고 설명했다. 브라운 교수는 이어 “그런 시 주석을 비판하는 대상 역시 역사에서의 비교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며 “시 주석 본인이 황제와 같은 존재가 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숭정제’, 왜 지금 또다시 화제로 떠 올랐나?]
그렇다면 숭정제와 관련된 이 책이 지금 이 시점에서 왜 또다시 화제를 몰고 오는 것일까?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감시 체계를 뚫고 왜 다시 회자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지금 중국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다. 더더욱 시진핑 위기설이 돌았지만 시진핑은 임기를 계속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국의 인민들이 보기에는 시진핑 주석이 그렇게 자신의 직무를 더 하겠다면서 강력한 의지를 비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 생각들이 다시 ‘숭정제’를 공론의 장으로 불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치 평론가 저우샤오후이는 “시진핑 3기 동안 부패 관료들의 횡포, 관료들 간의 분열, 그리고 복종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 또는 계속해서 무활동적인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더욱이 당 내부에는 다양한 경제·사회 문제가 잇따라 발생하며 광범위한 국민 불만을 야기하는 암류가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서방 국가들 또한 경제,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과의 분리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또한 기이한 현상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하늘의 경고가 잦아지면서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짚었다.
이런 차원에서 중국 국민들은 시진핑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시진핑 황제시여! 제발 열심히 일하지 말라! 스스로 중국을 위한답시고 열심히 하는 그 모든 일들이 오히려 중국을 힘들게 만들고 있음을 제발 깨달아 달라! 그러니 숭정제와 같이 최악의 상황을 스스로 마주하기 전에 이젠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실상 종신집권을 꾀하던 시진핑도 이제 갈수록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스스로 황제가 되려 했지만 하늘이 막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한 혼돈의 시기가 닥치면서 ‘숭정제’라는 금서도 이제 막지 못하는 상황으로 흘러가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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