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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현 칼럼] 흐르다 만 세월 2023-11-15
최원현 whytimes.pen@gmail.com


▲ [사진=Why Times]


차라리 쓰러져 가더라도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으면 싶었다. 하기야 170년이니 제대로 남아있을 수도 없었을 터이지만 내게는 제 옷을 잃어버리고 맞지도 않은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보였다.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41번지, 강화경찰서 왼쪽 담 옆길을 따라 들어간 외진 곳에 숨어있듯 서있는 기와집, 아무리 봐도 궁(宮) 같지도 않고, 궁이 있을만한 곳도 아닌데 이곳이 궁이란다.


용흥궁(龍興宮)! 용이 일어난 궁, 용은 왕을 상징함이니 곧 왕이 되어 나간 집이라는 뜻이 아닌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드니 내전, 외전, 별전 각 1동씩의 팔작지붕 기와집들이 애써 궁의 위용을 나타내보려 하고 있는데 내전 오른쪽의 사용치 않은지 오래 된 우물 하나가 할 말이 많다는 듯 나뭇잎 배를 띄우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강화에 와 본 건 여러 번이지만 이곳에 들른 건 처음이다.


강화도령 원범이 조선 25대 철종(哲宗 : 1831~1863)이 되기 전 5년간을 살았던 잠저(潛邸/왕이 되기 전에 살던 집)로 강화도령이 왕이 되자‘원범이네 집’이 ‘왕의 집’으로 바뀐 것이다.


원래는 초가삼간의 볼품없는 집이었다는데 철종 4년에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주변의 집들을 사들여 기와집으로 확대 개축했다고 한다. 그러나 옹색하고 힘들었던 지난 삶의 체취가 집을 새로 지었다고 해서 없어질 수 있으랴.


원범은 순조 31년인 1831년에 전계대원군과 용성부대부인 염씨의 셋째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원범의 증조할아버지가 사도세자로, 사도세자와 궁녀 사이의 소생인 은언군(恩彦君)이 할아버지다. 그러나 은언군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영조의 미움을 받아 제주로 유배되는 등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는데 정조 연간에는 이복형인 정조의 끔찍한 비호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순조 즉위 후 얼마 안 되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원범의 아버지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살다가 원범이 11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으니, 원범은 종실(宗室)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 처지가 궁색할 수밖에 없었고, 14살이 되던 해에는 또 어떤 역모 사건에까지 휘말려 전 가족이 교동을 거쳐 강화로 와서 살게 된 것이었다.


우물을 조금 지나니 ‘철종조잠저구기(哲宗朝潛邸舊基)’라고 새겨진 잠저구기 비각(暫邸舊基碑閣)이‘ 이 자리가 원범의 집 자리랍니다’ 말을 하고 있었다. 세월 막을 장사 없다더니 산천도 사람도 옛 것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면 흘러가는 것이 어찌 강물 만이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강은 처음엔 사람을 자라게 하지만 이내 늙게 하지 않는가. 오래된 집을 보면서는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옛 모습을 생각하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함께 지쳐왔을 삶도 생각한다.


논 가 연못에 살던 고기를 호화로운 어항에 옮겨 놓으면 행복해 할까. 160년 전 원범(元範. 철종의 본명)을 왕으로 모시기 위해 원로대신들이 강화로 나올 때 강화에는 상서로운 하얀 두루미 떼가 하늘을 덮을 듯 날아들었다고 한다.


임금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지만 나는 왜 이곳에서 자꾸만 안타까워만 하는가. 원범이가 좋아했다던 양순이 때문일까. 어쩌면 떠나가는 원범이를 멀리서 바라보며 눈물짓던 양순이가 손을 흔들던 산자락에서부터 흐르던 세월도 멈춰버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흐르다 만 세월을 우리는 다시 깨워 흐르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되돌아 우물로 다가갔다.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긷고 싶어진다. 그러면 우물 속에 잠겨있던 흐르다 만 세월도 후다닥 깨어날 것만 같다. 허나 한 번 가버린 세월은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어쩌랴. 차라리 원범은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역사를 더듬어보는 내 걸음이 짐짓 원망스러워 진다. 하지만 역사는 역사다. 지난 역사가 있기에 오늘의 역사도 있는 것이다. 지난 일을 교훈 삼아 오늘에 일깨우는 것도 지혜가 아닌가. 그러나 요즘 우리네의 삶을 보면 결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을 것 같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토록 떠나갈 것 같지 않던 금년의 여름도 어느 한 날 불어온 시원한 바람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선선한 날씨로 바뀌지 않던가.


우물 속을 다시 들여다본다. 나뭇잎 배 한 척만 여전히 물 위에 떠있다. 지난 세월을 잊지 말라는 뜻인가. 하늘의 구름 한 조각이 우물에서 쉬고 있다. 아니다. 흐르다 만 세월만큼 거기 머물러 있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도 흐름이 멈춘 곳도 있다는 듯 나뭇잎 한 잎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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