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한 주유소[EPA=연합뉴스]
중동 전쟁의 여파로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전 세계 석유 수급 체계가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1일 자 보도를 통해 영국 연구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최신 보고서 내용을 인용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봉쇄로 인해 하루 약 1,000만 배럴에 달하는 석유 공급이 완전히 차단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전쟁 발발 전 세계 석유 수요량인 일일 1억 400만 배럴의 약 10%에 육박하는 막대한 규모다. 사실상 지구촌에서 쓰이는 기름 열 방울 중 한 방울이 사라진 셈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재의 부족분을 대체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육상 파이프라인을 가동해 원유를 우회 수송하고 있으나, 해상 봉쇄로 인한 결손량을 모두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특히 개전 이후 국제 유가의 기준물인 브렌트유 가격이 무려 79%나 폭등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세계 석유 수요는 고작 240만 배럴 감소하는 데 그쳤다. 가격 급등이 수요 억제로 이어지지 않을 만큼 에너지 의존도가 높다는 방증이다.
실질적인 수급 불균형 수치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각국의 비축유 방출과 수요 감소분을 모두 계산에 넣더라도, 여전히 글로벌 수요의 2% 수준인 하루 200만 배럴의 절대적 부족분이 발생하고 있다고 짚었다. 만약 전쟁이 홍해와 걸프만 등 인프라 전반으로 확산되어 6개월 이상 장기화될 경우, 공급 부족량은 최대 1,300만 배럴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있어도 연료를 구할 수 없는 '물리적 고갈'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에너지 수급난은 이미 일부 국가에서 현실화된 상태다.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국가 차원의 연료 배급제를 전격 시행하기 시작했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현재의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가격 인상, 비축분 활용, 그리고 배급제뿐이라고 분석했다. 공급 중단 사태가 길어질수록 경제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수단인 배급제를 선택하는 국가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배급제의 확산은 세계 경제 전반에 심각한 하방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연료 수급이 제한되면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고 기업들의 구매 자금 조달에도 차질이 생겨 경제 활동 전반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보고서는 이러한 연쇄 작용으로 인해 올해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4% 수준까지 둔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에너지 위기가 단순한 물가 상승을 넘어 실물 경제의 마비를 초래하는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