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통이 (마드리드 EPA=연합뉴스) 2026년 3월 25일 마드리드에 있는 스페인 하원 회장에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가 이란을 상대로 한 미국의 군사 작전 지원을 거부하며 자국 내 공동기지 사용 금지에 이어 군용기의 영공 통과까지 전면적으로 차단했다.
마르가리타 로블레스 스페인 국방부 장관은 30일 현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란 전쟁과 연계된 모든 군사적 행동을 목적으로 스페인 영내 기지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영공을 경유하는 행위 또한 허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발표는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가 사전에 보도했던 내용을 정부 차원에서 공식 확인한 것이다.
영공 폐쇄 대상에는 스페인 영토에서 이착륙을 시도하는 미국 군용기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프랑스 등 인접한 제3국에서 출격해 스페인 상공을 통과하려는 기체까지 모두 포함된다. 엘 파이스에 따르면 스페인의 이러한 강경 조치로 인해 중동 지역으로 전개하려던 미군 폭격기들이 비행 경로를 대폭 수정하고 물류 보급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는 등 실질적인 작전 수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인도적 차원의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착륙이나 영공 진입은 예외적인 사례로 허용될 방침이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에는 로타 해군기지와 모론 공군기지 등 미군과 스페인군이 함께 사용하는 핵심 공동기지 두 곳이 위치해 있다. 로블레스 장관은 이번 분쟁을 시작 단계부터 전적으로 불법적이며 정의롭지 못한 전쟁으로 규정해 왔으며, 스페인의 확고한 반대 입장을 이미 미국 측에 여러 차례 전달했음을 분명히 했다.
내각의 다른 주요 인사들도 정부의 결정에 힘을 실었다. 카를로스 쿠에르포 경제통상기업부 장관은 일방적인 결정이자 국제법 위반으로 시작된 전쟁에 국가가 기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외무부 장관 역시 무력 충돌의 확산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는 어떠한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며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 행정부는 즉각 불쾌감을 드러내며 동맹 관계 재검토를 시사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럽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미국이 방어에 나서지만, 정작 미국의 필요에 의한 기지 사용 권리가 거부된다면 이는 공정한 협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작전이 종료된 이후 대통령과 함께 나토 내 동맹 관계를 전반적으로 다시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지난 2월 말 전쟁 발발 이후 서방권 지도자들 중 가장 선명한 반전 메시지를 던져왔으며, 전쟁 직후 기지 사용 불허 방침을 통보한 바 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초 스페인이 이란 전쟁 지원을 거절하고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하라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으로 전면적인 무역 단절을 경고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현재 스페인은 자국 국방비를 GDP 대비 2.1%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는 나토 회원국들이 합의한 목표치인 5%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나토 동맹국 사이에서 군사 작전을 위한 인프라 공유를 거부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지만, 과거 1986년 리비아 공습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미군의 영공 통과를 막아 대서양 양안 관계가 냉각됐던 전례가 존재한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터키가 지상군 통과를 불허한 바 있으나, 당시에도 영공은 개방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스페인의 조치는 매우 강도 높은 대응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