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핵 탑재 ICBM '사르마트' 시험발사 실패로 대화재 발생]
러시아 본토를 향한 서방의 장거리 미사일 허용이 임박하면서 이를 억제하기 위해 러시아가 온갖 레드라인을 들먹이면서 핵 위협을 해 왔었는데 정작 이를 과시하기 위해 실시했던 핵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가 실패하면서 오히려 개망신을 당했다.
미국의 전쟁연구소(ISW)는 현지시간 22일자(한국시간 23일) 보고서에서 “지난 21일(현지시간) 플래닛랩스(Planet Labs)가 촬영한 아르한겔스크(Arkhangelsk)주 플레세츠크(Plesetsk) 우주비행장의 피해 상황을 담은 위성사진을 살펴보면 러시아군이 최근 핵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르마트(Sarmat)' RS-28 시험 발사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러시아군이 이전에 사르마트 미사일이 시험발사 순간 사일로에서 폭발하여 거대한 분화구를 남겼으며, 발사시험장을 완전히 초토화시켰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사르마트 ICBM이 액체연료 미사일이라 연료 주입과정에서 실수로 폭발했을 수도 있지만 당일 코브라볼의 활동이 없었다는 점에서 실제 발사 과정에서 폭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진을 올린 ‘MeNMyRC’라는 이름을 가진 X 게시자에 따르면 사르마트 미사일은 지난 2022년 4월 20일,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시험발사를 성공한 바 있었는데, 이번에 두 번째 시험발사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핵을 탑재한 ICBM 실전 배치 및 활용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픈 소스 정보 분석가들은 “화재가 아직도 진압중이며 실제로 현장 근처에 4대의 소방차가 진화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고 보고했다.
이와 관련해 ISW는 “러시아는 사르마트 ICBM이 구소련 시대의 보에보다(Voevoda) ICBM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2014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로부터 보에보다 부품을 조달하기로 한 계약이 무산된 이후 사르마트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고 밝혔다.
[사르마트 ICBM, 제대로 시험발사도 않고 실전배치부터 했다]
이와 관련해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에서 발간하는 ‘폴리티카’는 지난해 10월 23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가 새로운 초중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사르마트의 개발을 완료했다고 말하면서 러시아는 이제 ‘대량 생산을 시작’하고 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기만 하면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면서 “그러나 그러한 푸틴의 발언은 오히려 국영 우주 기관인 로스코스모스와 러시아 미사일 생산 부문 전체에 불어 닥친 위기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일축한 바 있다.
폴리티카는 이어 “사르마트가 대체할 Voevoda ICBM(나토 보고명: 사탄)은 1970년대에 처음 도입된 이후 소련군과 러시아 전략 미사일 부대에서 모두 사용되었다”면서 “당시 소련은 보에보다를 통해 크기와 위력 면에서 기존의 모든 기록을 경신하며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구 소련 와해 후 유일한 문제는 이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에서 제조되었다는 것”이라는 점을 짚었다.
중요한 것은 미사일의 수명이 15년이기 때문에 소련이 비축했던 미사일은 2007년에 폐기되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난 2008년 모스크바는 비축 미사일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이 미사일들을 생산하던 우크라이나와 협력하여 일부는 성공해 지난 2013년 보에보다의 시험발사에 성공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보에보다도 2022년이면 완전히 퇴역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병합하면서 우크라이나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자 보에보다 미사일의 수명연장도 자연스럽게 파기되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르마트 개발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폴리티카는 “사르마트는 푸틴이 큰 소리쳤던 것처럼 개발이 쉽지 않았다”면서 “사르마트는 러시아의 미사일 생산 부문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폴리티카는 이어 “사르마트의 개발은 거듭된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초기 시험은 2015년에 이루어졌어야 했지만 2017년에야 이루어졌으며, 이 미사일은 2018년에 실전 배치될 예정이었지만 이 역시 계속 미뤄졌다”고 짚었다. 그리고 “사르마트의 실전 배치에 대한 정치적 압박은 2021년에 극적으로 강화되었지만, 그 과정을 앞당기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폴리티카는 꼬집었다.
폴리티카는 “러시아는 당초 2021년에 세 차례의 사르마트 시험 발사를 계획했지만, 그 계획은 한 차례로 수정된 후 2022년까지 연기되었고, 마침내 2022년 4월에 시험 발사가 이루어졌지만 그 이후에는 발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당시 로스코스모스의 수장 드미트리 로고진은 두 번째 비행 테스트에서 사르마트를 미세 조정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4월 발사에 성공한 후 그해 최소 3번의 추가 테스트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실패했는데, 그 후 2023년 2월에 실시된 사르마트 시험 발사가 실패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폴리티카에 따르면 그 시점에서 크렘린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고, 미사일은 단 한 번만 성공적으로 테스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전 배치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미사일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 또 한번의 시험발사가 실패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런 사실은 푸틴이 얼마나 조급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제대로 성능이 검증되지도 않았는데 서방진영을 압박하기 위해 일단 실전 배치했다면서 대대적으로 선전선동까지 했지만 알고보니 맹탕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해 폴리티카는 “사르마트의 실전배치는 미사일 생산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Voevoda R-36M은 실전 배치되기 전에 36번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거쳤고, Voevoda R-36M2는 20번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거쳤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폴리티카는 그러면서 “사르마트의 문제는 로스코스모스와 계약업체의 재정적 손실과 부채 증가로 인한 결과로, 일부 로스코스모스 계약업체는 2014년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아왔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거의 모든 국제 계약이 취소되었다”면서 “서방 기술과 장비의 공급이 끊기면 로스코스모스와 그 계약업체들은 더 큰 손실과 더 긴 생산 지연에 직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폴리티카는 이어 “좋은 예가 사르마트용 추진 시스템을 제조하는 Proton-PM으로, 이 회사는 주문이 밀려 있지만 이를 충족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는 생산 시스템의 일부가 오래되어 심하게 낙후된 데다, 서구 제조업체들이 더 이상 장비를 정비하거나 부품을 공급하지 않아 최신 부품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대신 Proton-PM은 중국의 기술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자격을 갖춘 직원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ISW는 “최근 사르마트 시험 실패가 러시아의 기존 핵 3축이 이전보다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국제 제재의 압박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방위산업 기지(DIB)의 수요로 러시아가 새로운 미사일 능력 개발에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WP “푸틴, 핵옵션 사실상 불가능” 진단]
이렇게 러시아가 사실상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그럼에도 푸틴은 레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는 23일, “크렘린궁에서는 서방이 핵 위협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으며 푸틴은 레드라인을 집행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실제로 이달 초 푸틴 대통령이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내륙을 공격하는 것을 승인하면 모스크바가 나토와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자, 러시아 선전가들은 서둘러 핵 전쟁 가능성을 운운하면서 서방을 겁박했다.
그럼에도 크렘린 내부에서는 핵 위협의 반복적인 사용이 그 힘을 잃기 시작했고 모스크바의 레드라인을 우크라이나가 끊임없이 넘고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익명의 러시아 관리는 “러시아 관리들이 핵 위협을 해도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주장했고, 러시아 고위 외교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러시아 학자는 “글로벌 사우스의 러시아 파트너들이 러시아의 핵 위협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에 본사를 둔 정치 컨설팅 회사 R-Politik의 설립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도 WP에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을 억제하고 자신의 레드라인을 집행하기 위해 다양한 옵션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푸틴은 핵무기를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최악의 선택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노바야는 이어 “핵 조치나 나토 영토에 대한 직접 공격은 푸틴이 현재 러시아의 존재에 위협이 있다고 느끼고 다른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할 때만 고려될 것”이라면서 “그런 상황은 서방이 지금 논의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레드라인과 관련해 크렘린궁의 매파 정치 분석가인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관 폐쇄와 우크라이나가 배치한 F-16 전투기가 있는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공군 기지에 대한 공격이 레드라인 월선에 대한 모스크바의 가능한 대응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나토공군기지에 대한 공격은 가능성이 지극히 낮고 그야말로 절박한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은 낮다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사르마트 ICBM의 시험발사 실패는 푸틴에게 ‘핵위협’이라는 카드가 완전히 힘을 잃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푸틴의 설 자리도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음을 확증해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