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체게바라 얼굴이 그려진 쿠바 내무부 청사 [EPA=연합뉴스]
강력한 경제 제재와 군사적 긴장 고조로 최악의 갈등을 빚어온 미국과 쿠바가 이달 초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고위급 양자회담을 갖고 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지난 10일 미국 대표단이 쿠바를 방문해 현지 외교부 당국자들과 회담을 가졌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 2016년 이후 10년 만에 이루어진 미 대표단의 첫 쿠바 본토 방문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지속된 강경 일변도의 대쿠바 정책에 변화의 기류가 흐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날 회담에서 미국 측은 쿠바 경제의 붕괴 위험을 경고하며 정권 차원의 핵심적인 개혁을 강력히 촉구했다. 국무부 관계자는 "쿠바 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 개혁할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강조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해결을 추구하지만, 쿠바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구체적으로는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 제공, 과거 몰수 자산에 대한 보상, 정치범 석방 및 정치적 자유 확대 등이 논의 안건으로 올랐다.
반면 쿠바 정부는 미국의 경제 제재가 국민 전체에 대한 부당한 처벌이라며 에너지 봉쇄 해제를 최우선 요구 사항으로 제시했다. 알레한드로 가르시아 델 토로 쿠바 외교부 미국 담당 부국장은 회담 분위기가 상호 존중 속에 진행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에너지 봉쇄 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쿠바 대표단의 핵심 과제였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언론이 보도한 '정치범 석방 2주 시한 통보'와 같은 최후통첩성 위협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회담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이어 쿠바에 대해서도 군사 행동 가능성을 시사해온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쿠바가 다음 차례"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고, 이에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이 "침략 시 격퇴하겠다"며 맞불을 놓는 등 양국 간 전운이 감돌기도 했다.
외신들은 이번 만남을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적 압박 카드를 쥐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외교적 합의를 위한 탐색전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에너지 수급난으로 고사 직전에 몰린 쿠바 정권이 미국의 개혁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할지가 향후 양국 관계 정상화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