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와 미 성조기 깃발 사이를 지나가는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오른쪽)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에서 미국의 부재를 가정한 '유럽판 나토' 구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현지시간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린란드 영유권 갈등, 이란 분쟁 등 대외 정책에서 미국과 끊임없이 충돌해온 유럽 국가들은 미국이 나토를 탈퇴하거나 역할이 축소될 경우에 대비한 비상 계획 수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계획의 골자는 동맹의 지휘통제 역할을 유럽 국가들이 직접 맡고, 부족한 미국의 군사 자산을 유럽군 자체 자산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특히 수십 년간 프랑스의 유럽 독자 방위론에 부정적이었던 독일이 태도를 바꾼 것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집권 이후,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독일은 유럽 자강론으로 선회했다. 이는 과거 미국의 국방비 분담 요구에 등 떠밀려 대응하던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유럽 국가들이 주도적으로 생존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미국 없는 나토'가 현실화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재 나토의 모든 군사 체계와 의사결정 구조가 미국의 압도적인 주도권 하에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교한 첩보 자산과 전략 무기 체계를 단기간에 유럽이 대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해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은 "방위 부담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겨가는 추세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현재의 변화를 진단했다. 스투브 대통령은 미국의 급작스러운 철수로 인한 안보 공백을 막기 위해 "매우 관리되고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 대응 체계를 전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는 미국과의 완전한 결별보다는 점진적인 독립성 강화를 통해 안보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유럽의 고심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