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달레이=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31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주민들이 무너진 주택 안을 살펴보고 있다.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고도(古都) 만달레이로 향하는 길은 불길한 예감만큼이나 험난했다.
규모 7.7의 강진이 미얀마 중부를 강타한 직후, 기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현지로 급파됐다. 지진으로 폐쇄된 만달레이 공항 대신 최대도시 양곤에 내려 차편을 구하려 했지만, 계속되는 여진 공포에 누구도 선뜻 동행하려 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구한 차로 새벽 5시 양곤을 출발해 부서지고 끊긴 고속도로를 우회한 지 15시간 만에야 간신히 옛 수도의 비극과 마주할 수 있었다.
만달레이 남쪽 짜우세에 들어서자 지진의 상흔은 잔인하리만큼 선명했다. 세 집 건너 한 집꼴로 무너져 내린 마을 중심에는 어린이 1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치원 폐허가 있었다. 주인 잃은 가방과 신발, 놀이기구들이 흙먼지 속에 뒹구는 현장은 당시의 처참함을 웅변하고 있었다. 밤마다 계속되는 여진에 호텔 직원들이 투숙객의 방문을 두드리며 대피를 외치는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날이 밝은 만달레이 시내는 겉보기에 평온해 보였으나, 한 걸음만 들어가면 도시 전체가 흉물스러운 폐허였다. 학교, 병원, 아파트 등 현대식 건물은 물론 고대 사원과 옛 왕궁까지 무참히 파괴됐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장비 부족으로 매몰된 가족을 꺼내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는 유가족들의 모습이었다. 국가적 재난 상황임에도 전문 구조 장비는커녕 최소한의 구호 손길조차 체계적으로 닿지 않고 있었다.
특히 진앙인 인근 도시 사가잉은 철저히 방치된 ‘버려진 땅’이었다. 사가잉은 반군 세력인 국민통합정부(NUG)와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장악한 곳이라는 이유로 군정에 의해 언론과 구호단체의 진입이 전면 차단됐다. 군정이 발표한 사망자 수가 3,000명에 육박하지만, 실제 수치가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도 사가잉의 피해가 집계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군정은 지진 피해 수습은커녕 이 지역에 폭격을 가하는 비인도적 행태를 보였다.
수도 네피도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군부의 심장부답게 주요 시설의 복구는 신속히 진행 중이었으나, 지진의 흔적을 숨기려는 통제는 삼엄했다. 갈라진 도로 틈을 모래로 급히 메우고, 파손된 동상을 촬영하려는 기자에게 경찰은 호각을 불며 제지했다. 검문을 통과하기 위해 "군 관련 업무로 왔다"는 가이드의 거짓말이 필요할 정도로 네피도는 외부인에게 폐쇄적인 '동남아의 평양' 그 자체였다.
현지에서 만난 시민들의 슬픔은 정부를 향한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기부 문화가 발달한 미얀마지만, 시민들은 정부에 기탁한 돈이 무기 구입에 쓰일 것을 우려해 직접 구호품을 사다 나르는 자구책을 택하고 있었다. "군정은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이 죽은 것을 오히려 반길 것"이라는 한 주민의 울분 섞인 말에서 미얀마 민심의 현주소가 드러났다.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보다 더 가혹한 것은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된 군정의 '인재(人災)'였다.
-Why Times Newsroom Desk
-미국 Midwest 대학교 박사
-월간 행복한 우리집 편집인
-월간 가정과 상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