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전·현 행정장관의 태도 돌변, 시진핑과 거리두기?]
홍콩의 존리 행정장관과 전 행정장관이었던 캐리 람의 최근 행보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노골적으로 시진핑과 거리두기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홍콩 전·현 행정장관들의 행보는 당연히 홍콩인들에게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또한 현재 베이징 정가의 풍파를 주시하는 많은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팔로워 50만명 이상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자 언론인인 타오지에(陶傑)는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캐리 람(林郑月) 전 홍콩 행정장관이 다수의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홍콩 도서전을 찾았는데, 이 장면이 시민들에게 촬영되었다”면서 “중국 자본이 운영하는 산롄(三连) 등의 메인 부스에서 ‘시진핑 사상 3대 저작’이 눈에 잘 보이는 위치에 전시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전혀 시선도 두지 않고 아예 무시했으며, 오히려 다른 책을 들고 관심을 보였다”고 밝혔다.
타오지에는 이어 “영어에는 ‘무시하는 것은 가장 큰 경멸이다’(ignoring is the biggest contempt)는 말이 있다”면서 “지난 2018년 3월만 해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라고 밝힌 바 있었는데, 캐리람 전 행정장관이 가까이 전시되어 있는 시진핑의 서적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고 짚었다.
타오지에는 “과거 중국 대륙에서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 선집 한 세트가 농촌에 배달되면 빈농들은 북을 두드리며 행렬을 지어 보물 같은 책이 베이징에서 온 것을 환영했다”면서 “캐리 람 전 행정장관이 이번 홍콩 도사박람회에서 메인 부스를 차지하고 있는 시진핑의 저술서에 눈길도 주지 않은 것은 중국인으로서뿐만 아니라 홍콩의 전 행정장관으로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던져준다”고 설명했다.
타오지에는 그러면서 “경멸은 적대감이다. 이처럼 신시대 홍보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는, 유명인으로서 홍콩에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일까? 이는 노골적인 소프트 저항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라면서 “단 몇 년 만에 왜 이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을까? 중국 소분홍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진핑 주석이 당신을 재임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인가?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퇴임 후 집에서 해외의 반공 선동가들이 퍼뜨리는 거짓말을 듣고 있는 것일까?”라고 물었다.
그만큼 캐리 람 전 홍콩 행정장관의 홍콩도서전에서의 행보는 많은 홍콩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관련된 최근 여러 뉴스들과 연계하면서 캐리 람 전 행정장관도 이제 시진핑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낳게 했다.
[존리 현 행정장관마저 시진핑을 무시했다?]
그런데 캐리 람 전 행정장관의 이날 행보가 주목을 받았던 것은 바로 며칠 전 존 리 현 행정장관도 캐리 람과 마찬가지로 시진핑을 아예 무시했기 때문이다.
홍콩의 명보는 지난 7월 2일, “전날 홍콩반환을 기념하는 7.1절 행사, 곧 홍콩특별행정구 수립 28주년을 맞아 존 리(李家超) 행정장관은 정부의 향후 우선순위는 ‘높은 수준의 안보를 바탕으로 고품질 발전을 보장’하고, 북부 대도시권 개발을 가속화하며, 민생 개선에 집중하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편안하고 정체된 개혁가가 되기보다는 어려운 개혁가가 되기를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날 명보 보도에서 정작 눈길을 끈 것은 존리 행정장관 연설의 어느 부분에서도 시진핑 주석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존리의 행보와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지난 2022년 7월 1일, 시진핑 주석이 홍콩을 직접 방문해 7.1절 행사를 했을 당시 존리 행정장관은 아예 시진핑을 숭배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지극히 충성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시진핑과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공개했다.
2023년 6월 25일에도 자신의 취임 1주년을 맞아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생각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작년 7월 1일 시진핑 주석께서 홍콩에 대한 '4대 의무'와 '4대 희망'을 제시하셨는데, 이는 저의 정책 청사진이 되었다”고 쓸 정도였다.
지난해 7월 1일에도 존 리는 리셉션에서 “지난 2년간 우리는 시진핑 주석의 홍콩 관련 중요 연설 정신을 실천해 왔다”면서 “우리의 공동 노력 덕분에 시진핑 정부가 도입한 많은 정책들이 점점 더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시진핑 주석에게 여러 차례 경의를 표하는 연설을 했다.
그렇게 아첨에 능하고 시진핑에게 절대적 충성심을 보여왔던 존리 행정장관이 올해는 돌연 시진핑이라는 이름을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존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돌변한 것일까?
[홍콩은 베이징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이렇게 존리 행정장관이 7.1절 행사에서 아예 시진핑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이에 대해 존리 행정장관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그러했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 5월 30일, 홍콩특별행정구 중앙인민정부 연락판공실 주임,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부주임, 홍콩특별행정구 국가안전위원회 국가안보보좌관을 맡고 있던 정옌슝(郑雁雄)이 돌연 해임됐다. 그러자 즉각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그 가운데는 존리 행정장관이 연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추론도 끼어 있었다. 그래서 존리가 시진핑의 이름을 아예 연설에서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상당히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그럴수록 더 충성심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현 홍콩 행정장관들의 돌발적 행동에 대해 중국전문가이며 중국 정세 관련 중요한 스피커인 탕징위안은 자신의 X를 통해 “홍콩이 중국 공산당의 정치 상황을 관찰하는 일련의 풍향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홍콩은 지리적으로 베이징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정치적 거리는 중국 본토의 모든 지방 왕자들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탕징위안은 이어 “이는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거의 모든 가문이 홍콩에 부동산, 인맥, 세력권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따라서 홍콩은 일반 지역 관리들보다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동향을 훨씬 더 잘 알고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짚었다.
탕징위안은 “이런 측면에서 타오지오의 분석이 매우 예리하다”면서 “캐리 람의 공개적 행보는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고 매우 강력한 정치적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탕징위안의 설명이 맞다고 판단하는 것은 캐리 람 전 행정장관의 경우 과거에도 매우 정치적 센스를 갖춘 사람으로 평가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홍콩 도서전에서, 그것도 아주 광대한 행사장에서 시진핑 도서전시대와 불과 2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것으로 가 의도적으로 시진핑 서적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적 제스처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캐리 람은 그 자리에서 시진핑의 책을 사야할지 말아야 할지, 차라리 다른 책을 사면서 시진핑의 책을 아예 무시할지 이미 계산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탕징위안은 “캐리 람은 2023년 7월 23일에도 홍콩 도서전에 갔던 적이 있다”면서 “시간이 매우 촉박해서 30분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시진핑 주석의 저서 『시진핑의 가정교육과 가정양식 건설에 대한 발췌록』을 특별히 훑어보았다”고 짚었다.
탕징위안은 그러면서 “캐리 람이 이번에 이런 행동을 보인 진짜 이유는 시진핑 주석의 재선 개입에 분개하거나 시진핑 주석을 일부러 경멸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면서 “오히려 더 이상 시진핑에 관심둘 필요가 없다는 측면에서 아예 평범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탕징위안은 “캐리람의 홍콩 도서전에서 보인 행보는 존리 행정장관의 7월 1일 연설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면서 “존리는 이날 연설에서 시진핑과 관련된 모든 명칭이나 업적들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시진핑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은데다,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와 광둥-홍콩-마카오 대만구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탕징위안은 그러면서 “홍콩 시민들에게 중국 공산당의 대리인으로, 시진핑에게 애국자로 여겨지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진핑에 대한 충성심과 사랑을 표현하던 이 두 홍콩 행정장관이 갑자기 시진핑을 눈감고 모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면서 “그들의 정치적 감각이 둔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며, 캐리 람과 존 리는 중난하이의 붉은 성벽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고, 시진핑의 입장이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또한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전·현 두 홍콩 행정장관의 돌변은 지금 중국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홍콩만큼 중국 고위층들의 행보에 정보도 많고 관심도 많은 지역이 없다는 점에서 이들 두 전·현 행정장관의 이례적 행보는 중난하이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우리들에게 많은 정보를 던져주고 있다 할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