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기이한 행보, 베이징에 무슨 일이 있었나?]
요즘 베이징 정가의 뉴스들을 보노라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래 중국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중난하이가 완전히 블랙박스같은 곳이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시진핑 1인 지배체제를 굳혀 왔던 중국 공산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노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행간 행간을 세심하게 읽지 아니하면 그 줄거리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8일자 1면을 보면 참으로 기이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인민일보는 전날 ‘민족 해방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에서 항일전쟁 발발 88주년 기념식 행사가 열렸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중앙서기처 서기인 차이치(蔡奇)가 축사를 하고 전시회 개막을 알렸다. 차이치 등 지도자들은 각계 대표들과 함께 항일 영웅들에게 꽃을 바치고 주제 전시회를 관람했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참석했던 사람들의 면면들이다. 원래 중국에서는 항일전쟁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르기는 하지만 이날도 왕이(王毅), 리슈레이(李书磊), 장유샤(张又侠), 왕샤오홍(王小洪), 장칭웨이(张庆伟), 우정롱(吴政隆), 왕용(王勇), 류진리(刘振立) 등이 참석했다. 참석한 면면만 봐도 화려하다.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이렇게 의미도 있고 대단히 화려하게 치러진 행사에 시진핑(习近平) 국가주석은 자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진핑은 항일전쟁 발발 88주년 기념식 행사에 참여하는 대신 7일과 8일, 산시성 양취안(陽泉)시와 타이위안(太原)시를 둘러보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이와 관련해 신화통신은 “시 주석은 7일 양취안의 항일 유적지에 헌화한 뒤 오후에는 양취안밸브주식회사를 방문, 생산라인에 들어가 가스 밸브와 전동 플랩밸브 등 제품 생산·판매 상황을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의 보도내용을 보면 확인할 수 있지만 산시성 방문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가야만 하는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고 중국의 최고 지도부들이 동행한 것도 아니었다. 촬영된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허리펑(何立峰) 국무원 부총리외에는 지방의 하급관료들만 동행했다. 과거같으면 당연히 수행해야 할 해당 지역의 군부 인사들도 없었다. 한마디로 아주 초라한 외출을 한 것이다.
여기서 남는 의문이 있다. 시진핑은 왜 베이징에서의 화려한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홀로 산시성으로 내려갔을까? 그리고 스모그가 가득한 산시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을까? 이게 정상적인 일일까?
[화려한 조명을 받은 차이치, 시진핑에게 등 돌렸는가?]
이날 항일전쟁 기념식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차이치(蔡奇)였다. 차이치는 과거 시진핑의 위세가 대단할 때는 당연히 지방순시에 수행을 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시진핑의 지방순시에 동행하지 않았다. 아예 다른 일정을 잡아 시진핑의 동행 요구를 거절하기까지 했다.
이날도 역시 시진핑의 산시성 여행에 따라가지 않았다. 차이치는 중앙의 쟁쟁한 인사들을 배경으로 대단한 연설을 했다. 그날 행사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특히 이날 행사에 군부를 사실상 장악한 장유샤와 연합참모총장이라 할 수 있는 류전리가 함께 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더욱 눈여겨볼 것은 차이치가 공식적 국가주석인 시진핑의 유고시 명색이 국가주석 대행이자 당 총서기 대행, 그리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대행으로서 직무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런 그가 장유샤가 자리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주빈으로 우뚝 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자리에는 차이치가 아닌 시진핑이 있어야 마땅했다. 행사의 규모도 그렇고 의미상으로도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항일전쟁 기념식에 주빈으로 연단에 서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여기에 시진핑의 사람으로 분류됐던 왕샤오홍마저 그간의 어려움을 딛고 이 자리에 함께 했다. 이는 차이치가 장유샤와 손을 맞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산시성으로 내려간 것은 100세로 알려진 시 주석의 어머니가 일주일 여전에 사망을 해 산시성 웨이난시 푸핑현 타오이촌에 있는 아버지 시중쉰 묘원을 방문하여 시중쉰과 어머니 치신의 합장 방안을 논의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시진핑을 맞이했던 산시성 성장 루동량]
흥미로운 것은 시진핑이 이날 방문한 산시성의 성장이 51세로, 전국 최연소 성장이자, 궈성쿤(郭声琨) 전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의 사위인 루동량(卢东亮)이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특별히 산시성을 방문한 것은 산시성 시찰 명분도 있지만 이 지역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쩡찡홍(曾庆红) 파벌에 대해 호의를 표시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 주석이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 우호적 지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시진핑이 루동량 성장을 만난 것도 결국 쩡찡홍을 향해 추파를 던진 것이란 해석이 그래서 나온다.
[공든 탑 완전히 허물어버린 시진핑, 중국몽도 사라졌다!]
그런데 시진핑의 최근 행보와 관련해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근거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열렸던 브릭스정상회의에 불참했다는 점이다. 사실 브릭스 정상회의는 시진핑이 서방진영의 G7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국제적 협의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시진핑은 브릭스에 많은 국가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다 써왔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브릭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브릭스에서 인도가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한 것도 불과 최근이고, 그동안 줄곧 시진핑 주석이 브릭스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그 시진핑을 도왔던 이가 바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그런데 이번 브릭스회의에는 공교롭게도 브릭스의 두 주역인 시진핑과 푸틴 모두 불참했다. 푸틴은 ICC(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가 되어 있어서 움직이기 불편한 점도 있지만, 시진핑 주석이 브릭스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고 참석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에서 아예 불참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진핑 주석이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왔던 브릭스 정상회담까지 빠질 정도로 그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지금 사진핑을 둘러싼 실각설이 핵심 요인이다. 군부만 하더라도 4개 전구 중 동부전구만 자신의 지지세력일 뿐 나머지 3개 전구를 장유샤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을 오래 비울 수 없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여기에 공안파트까지 장유샤의 군부에 모두 점령당한 상태라 신변의 위협까지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브릭스 정상회담 참석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다. 브릭스 정상회의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그러한 브릭스 회원 국가들과 뜻을 같이하기 어려운 처지이다. 당장 시진핑의 중국이 앞장서 미국의 관세전쟁 등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성명을 낼 경우, 당연히 트럼프로부터의 보복이 중국을 향해 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시진핑이 자신이 키워왔던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시진핑과 푸틴이 브릭스 정상회의에 불참하면서 서방진영의 대항마로 키워왔던 브릭스는 이제 시들하게 되어 버렸고, 또 국제적 관심도 받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리그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CNN은 “이러한 움직임은 베이징의 현재 정책 방향이 ‘국내 우선주의’에 치우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브릭스 확대에 열정을 쏟아왔던 시진핑의 브릭스 정상회의 불참으로 브릭스 체제도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이로써 미국의 단극 체제에서 미국-중국-러시아 등 다극 체제로의 전환을 유도하려 했던 시진핑의 전략도 완전히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을 계기로 중국은 미국과 정면충돌하는 방향이 아닌 외교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한마디로 시진핑이 내세웠던 ‘중국몽’의 폐기이자 미국과 정면 충돌이 아닌 협력체제를 유지해 나갈 것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흐름은 브릭스 정상회담에 시진핑 대신 참석했던 리창 국무총리가 연설에서 ‘냉전적 사고방식’, ‘패권주의’와 같은 강경한 표현을 버리고 ‘평등협상’, ‘포용윈윈’을 강조했던 점에서도 드러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한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이란 정세와 미국 달러화 가치 등 민감한 사안과 관련된 내용이 대폭 삭제됐다. 리창 총리도 미국을 직접 비난하지 않고 온화한 어조로 발언했다. 그는 단지 ‘권력 정치’와 ‘진영 대결’을 강조하며 ‘평등한 협상’을 강조했는데, 이는 시진핑의 중국 공산당이 이전에 보여줬던 강경한 반미 입장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시진핑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중국의 외교노선도 상당히 변화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만든다. 이는 중국의 외교정책에 시진핑의 입김이 줄어들고 당 원로들의 뜻이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중국 경제 상황이 미국과 결코 대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지난 2024년 여름 이후 다자간 회의에 반복적으로 불참해 왔고, 또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에 대한 원조나 지원사업 규모도 대폭 줄여왔던 것이다. 이는 중국이 그만큼 지정학적 위험과 국제여론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되면 결국 브릭스 체제는 그저 상징적 체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마디로 시진핑의 운명과 나란히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세계 제패’를 향한 시진핑의 중국몽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동시에 시진핑의 정치생명 역시 희미해지고 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