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아들 보과과, 돌연 SNS에서 시진핑 저격]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의 최대 정적이었던 보시라이(薄熙來·76) 전 충칭 당서기의 아들인 보과과(薄瓜瓜·38)가 시진핑의 실각설에 때맞춰 목소리를 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그동안 완전히 몸을 숨겨왔던 보과과가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냈고 또 동시에 홍얼다이(혁명원로 2세대, 紅二代)들이 시진핑 실각과 관련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동이 앞으로의 중국 정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눈길을 끈다.
보과과는 지난 16일, 자신의 X계정을 통해 아버지 보시라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구구절절하게 올리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2012년 아버지의 실각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보과과는 10여 년간 공개 활동을 자제해 왔지만, 작년 말부터 아버지를 언급하며 주목받고 있다. 그는 옥스퍼드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캐나다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과과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시기는 시진핑의 실각설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보과과는 이날 어린 시절 보시라이 품에 안겨 찍은 사진을 올리며 “어릴 때부터 우리 부자는 천 리 떨어져 사는 데 익숙했고, (아버지가 수감된)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내가 컴퓨터를 다룰 줄 안다며 칭찬하고, 영어 실력도 본인을 따라잡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고 했다.
보과과는 이어 보시라이가 다롄 당서기에서 상무부장으로 승진한 시절을 회상하며 “기다리던 당신과 어머니가 베이징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영국 기숙학교를 다니고 있었다”면서 “당시 경제학을 조금 공부하며 썼던 제법 괜찮은 논문으로 당신이 중국과 유럽의 무역 전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회상했다.
보과과는 또한 “2007년 보시라이가 충칭시 당서기에 오른 시기에 자신이 대학생이 되면서 어른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면서 “아버지는 정원에서 산책을 할 때면 문천상(文天祥), 범중엄(范仲淹), 담사동(譚嗣同) 등 영웅들의 시를 읊으며 나라에 대한 책임감을 가르쳤다”고 했다. 보과과가 언급한 문천상은 송 말기 몽골군에 대항하다 희생한 충신이고, 북송의 범중엄은 북송 시대의 개혁 관료, 담사동은 청 말기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다 처형된 개혁가다. 마치 이들을 보시라이의 운명에 빗대어 설명을 한 것이다.
보과과는 “과거에는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쳤다”면서 “13년간 나는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아봤다”고 했다. 여기서 보과과가 말한 13년이란 2012년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후 보시라이에 대한 수사가 발표된 이후의 시간을 말한다.
그러면서 “이제야 나는 충분한 자신감을 갖고 아버지의 그림자 아래서 따뜻함을 누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보과과의 할아버지는 1980년대 덩샤오핑 시대 8대 원로 중 한 명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보이보(薄一波·1908~2007)다.
보과과는 중국어로 된 X 계정 글을 통해서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에 자신에 대해 보도된 내용을 적극 반박하면서 자신은 그렇게 경망스럽게 살지도 않았으며, 결혼생활도 잘 이어가고 있다고 해명하기도 했고, 자신의 재산이 엄청나다는 항간의 의혹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적극 부인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버지 보시라이가 어떤 인물인지 상세하게 설명을 곁들이기도 했다.
[바이든이 살려준 시진핑, 보시라이는 쿠데타 직전까지 갔었다]
시진핑의 실각설이 나도는 지금 이 시점에 보시라이와 그의 아들 보과과가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보시라이와 시진핑의 악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시진핑은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보시라이가 중국의 주석직에 앉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2년 2월 13일, 시진핑 당시 국가 부주석이 9박 10일 일정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시진핑은 중국의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를 굳히는 과정이었고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은 호스트로서 접대를 총괄했다.
그런데 방미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중국의 정치지형 자체를 바꾸는 엄청난 비밀 파일을 직접 전달했다. 후진타오 당총서기 임기 마지막 해로 권력 변동기였던 2012년 중국 정세는 그야말로 혼전상태였다.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시진핑은 상무위원이자 부주석으로 5세대 지도자의 핵심으로 황태자로 불렸지만 반(反)시진핑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9명의 상무위원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저우융캉(周永康)을 필두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 링지화(令計劃) 중앙판공청 주임, 군부 실세였던 쉬차이허우(徐才厚) 군사위 부주석 등 이른바 신4인방의 쿠데타 음모가 진행되는 와중이었다.
급기야 시 부주석 방미 일주일 전인 2월 6일 보시라이 심복이었던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공안국장이자 부시장이 신변의 위험을 느끼면서 청두 미 총영사관으로 달려가 망명을 요청하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이때 왕리쥔은 신4인방의 극비 쿠데타 음모가 적시된 비밀 파일을 미국에 건넸다. 이 파일은 당시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바이든 부통령은 중국의 차기 대권주자였던 시진핑에게 이 극비 문서를 넘기면서 중국의 정변 상황이 모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대만 국방부 산하 군사정보국의 전 부국장 웡옌칭(翁衍慶·76) 예비역 중장은 그의 저서 ‘중공정보조직과 간첩 활동’(2018)을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왕리쥔이 제출한 보시라이·저우융캉의 쿠데타 계획 물증을 시진핑에게 보여줬다. 깜짝 놀란 시진핑은 베이징에 돌아온 뒤 후진타오 주석에게 내용을 보고했다.”
이렇게 미국의 바이든으로부터 비밀 정보를 손에 쥔 시진핑은 후 주석과 연합전선을 펴 반격에 성공했고, 그해 11월 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당 총서기로 등극했다. 앞서 바이든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당시 미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중국의 세계 무대 진출을 지원하기도 했다. 결국 지금의 시진핑은 바이든 전 대통령이 만든 거나 다름없었다.
사실 보시라이는 중국 8대 원로인 보이보 전 부총리 아들이고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7명) 진입이 유력했다. 그러나 차기 주석으로 시진핑을 무리하게 낙점한 것에 대해 반발하며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하면서 그는 결국 2013년 뇌물 수수, 횡령,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베이징 친청(秦城)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리고 2012년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가 해외 자금 이전을 돕던 영국인 사업가를 독살한 사건을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며 이듬해 무기징역과 정치 권리 종신 박탈을 선고받았다.
보과과는 지난 5월 11일 어머니의 날에도 X에 글을 올려 “어머니(구카이라이)는 현대판 두억”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두억은 원나라 희곡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여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시진핑 타도 외치는 홍얼다이들, 정치모임 가졌다!]
지난 13일, 베이징에서 열린 천윈 탄생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계기로 중국의 홍얼다이 다수가 참석한 바 있는데 이들이 따로 모여 시진핑 주석의 사임을 촉구하면서 ‘시진핑의 두가지 죄악’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고위 소식통은 “이번에 중국의 홍얼다이 대부분이 참석을 했는데, 이들은 이들은 시진핑의 사임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성명을 작성했으며 이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제출하기로 했다”면서 “이 문건에는 시진핑 집권 이후 국내외 정책의 오류에 대해 냉철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시진핑은 당연히 주석직에서 사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시진핑이 집권한 후 마오쩌둥의 전철을 밟아 종신 체제를 구축하고 권력을 독점하려 했는데 이것이 바로 첫 번째 과실”이라면서 “시진핑은 다른 홍얼다이들과 권력을 공유하려 하지 않고 시진핑 가문만의 독점적 권력으로 만들려 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들의 성명서는 “시진핑 집권 이후 두 번째 잘못은 덩샤오핑의 지도노선을 완전히 벗어나 서방국가들과 적대시 정책을 편 것”이라면서 “또한 이 시기에 중국의 권력자들은 약 20조 위안에 이르는 엄청난 자산을 해외로 빼돌렸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성명서는 이어 “시진핑의 더 큰 실수는 그가 급속도로 전쟁 준비 태세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시진핑은 21차 전국대표대회 이전, 즉 2027년 이전에 대만과의 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그런데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그때 이후 중국의 미래는 담보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시진핑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라도 시진핑을 주석직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었다.
[반시진핑파, “더 강력하게 시진핑 해임해야 한다” 여론 커져]
한편 이런 가운데 시진핑 주석의 사임에 대해 지나치게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좀 더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여론들이 강력하게 일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중국의 고위 소식통은 “이미 군권을 장악한 장유샤가 시진핑 일파의 군부세력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고 있다”면서 “장유샤가 하루빨리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취임하여 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시진핑의 해임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고 전했다.
고위 소식통은 이어 “장유샤의 개혁이 지지부진하게 늘어지다보면 시진핑파인 차이치나 리창 등이 역공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문제는 공청단 파벌들이 시진핑에 대해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려는 자세가 만연한데 이 때문에 모든 일들이 엉킬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고위 소식통은 또한 “시진핑은 이미 13년간 집권했기 때문에 군부에 잔존세력이 의외로 많을 수도 있다”면서 “대대적인 숙청없이는 반 시진핑 운동이 겉으로만 성공한 듯 보일뿐, 실제로 시진핑 사임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고위 소식통은 “아무리 장유샤가 군권을 장악하고 있다 할지라도 명목상의 군사위원회 주석은 엄연히 시진핑”이라면서 “일단 대외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는 군부를 장유샤가 군사위원회 주석으로서의 권위를 확실하게 확보하지 않는 한 시진핑 축출의 대세도 흔들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고위 소식통은 그러면서 “6월들어 장유샤가 군부의 대대적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작업이 끝나는대로 군사위원회 주석직에 앉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면서 “대세는 시진핑 실각이지만 끝까지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지금 베이징을 감싸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