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세력 전멸시키려던 시진핑, 오히려 역으로 당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국가주석의 퇴진이 기정사실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종신집권을 누릴 것으로 생각했던 그의 영화가 무너진 것은 지난해 당대회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을 연단에서 끌어내린 사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이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 마지막 걸림돌로 생각했던 후진타오를 제거하기 위한 엄청난 계획을 세웠지만, 오히려 당시 시진핑 수하의 핵심 충신 2명이 배신하면서 시진핑은 그 이후 권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국내 중요한 소식통이 전한 바를 종합하면 실제로 지난해 3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후진타오가 시진핑의 명령에 의해 연단에서 쫓겨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전 세계에 생중계로 송출된 이 장면은 보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시진핑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는 듯 하다면서 시진핑은 사실상 영구집권의 탄탄한 권력을 장악한 것으로 파악을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허상이었고 바로 후진타오 퇴장 명령에는 엄청난 시진핑의 쿠데타 음모가 숨겨져 있었고, 동시에 시진핑의 음모를 완전히 뒤엎으면서 중국의 역사를 뒤집는 놀라운 역쿠데타 계획이 발동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유명한 중국전문 시사평론가인 장펑(江鋒)은 “시진핑은 당대회를 통해 자신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원로들을 동시에 축출하고 제거해 버리려는 엄청난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사실은 그토록 자신이 신뢰했던 장유사(張又俠)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과 충칭시 당서기 천민얼이 시진핑의 편에 서지 않고 후진타오 편에 줄을 서면서 시진핑의 쿠데타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그후 오히려 역공을 당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중국의 시사평론가 수샤오허(蘇小和)도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시진핑은 원로들이 회의장에서 반발할 것을 예상해 미리 통제 계획을 마련했지만, 장유샤(張又俠)의 기밀 유출로 사건은 미연에 차단됐다”고 말한 바 있다.
장펑은 이와 관련해 “후진타오는 시진핑에 의해 연단에서 끌려나갔지만 사실 이 장면은 시진핑이 그렸던 큰 계획의 일부에 불과했다”면서 “사실은 시진핑이 후진타오를 연단에서 끌어내리게 되면 당연히 이 장면을 보고 상당수의 당 원로들과 주요 인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시진핑에 대항해 소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해 시진핑은 이미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원로 15명의 명단을 작성해 그들을 ‘소란죄 혐의’로 체포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짚었다.
장펑은 이어 “그런데 후춘화와 왕양 등 원로들 15명에 대한 체포 계획을 알고 있던 천민얼 충칭시 당서기가 후진타오에게 미리 이 사실을 알렸고, 이러한 시진핑의 계획을 인지한 당 원로들은 후진타오가 연단에서 끌려 내려가고 있음에도 그저 쳐다만 봤지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장펑은 “시진핑은 이들 원로 15명을 제거하게 되면 자신의 권력 기반을 크게 강화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과 정부, 그리고 군을 완전히 자신의 수중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짚었다.
[뜻을 다 이룬 듯 했던 시진핑, 장유샤-천민얼 때문에 무너졌다]
사실 시진핑은 이미 3연임을 결정한 때부터 1인 독재체제를 확고하게 수립한 듯 보였다. 이는 그동안 중국정치의 관행이었던 집단지도체제마저 무너뜨린 것이었기 떄문에 아무도 시진핑의 일방독주를 제동걸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불러온다고 했던가? 시진핑의 과욕이 엄청난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이와 관련해 수샤오허(蘇小和)도 “시진핑은 최측근이던 왕샤오훙(王小洪) 공안부장에게 체포 대상자 명단을 알려주고 회의장 내부에 보안요원과 사복경찰을 배치하도룩 지시했다”면서 “이와 함께 만전을 기하기 위해 중앙군사위원회 장유샤 부주석에게 회의장 밖에 군인들을 배치시키도록 지시했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시진핑의 중국 공산당 정권 타도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에포크타임스도 “현재는 장유샤가 시진핑에 대항하는 대표적인 군 인사였지만 20차 당대회 이전까지만해도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였다”면서 “사실 장유샤는 시진핑 측근이기도 했지만 원로그룹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설명했다.
수샤오허(蘇小和)는 이어 “장유샤가 회의 전 일부 원로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반응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주장했다.
천민얼과 장유샤의 귀띔대로 시진핑의 원로그룹 제거 작전은 예상대로 실행됐다. 실제로 후진타오가 시진핑에 의해 쫓겨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CCTV의 방송 영상을 보면 후진타오는 자기 앞에 놓인 붉은색 표지의 서류를 집으려 했다. 내용을 확인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옆자리에 있던 리잔수(栗戰書) 전인대 상무위원장에게 제지됐다.
그러자 시진핑 주석이 직접 수행원을 불러 뭔가 지시를 했고, 그러자 2명의 보안요원이 다가와 후진타오를 강제로 끌고 나갔다. 이 와중에 후진타오는 시진핑의 책상 앞에 놓인 서류를 낚아채려 했고, 시진핑이 서류의 다른 한쪽을 붙잡고 버티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후진타오는 서류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채 퇴장했다.
그 모습을 생생한 동영상으로 지켜본 세계의 언론들은 경악을 했다. 한마디로 중국내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연단에 앉아있던 당 원로들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모두가 다 후진타오를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수샤오허(蘇小和)는 “시진핑의 핵심 측근이었던 천민얼(陳敏爾)이 ‘후진타오 서기는 우리에게 잘해주셨던 분’이라고 말해 시진핑의 심기를 건드렸다”며 “그 바람에 원래 정치국 상무위원에 포함돼 있었으나 막판에 빠지고 리시(李希·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로 교체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에포크타임스는 “충칭시 서기였던 천민얼은 ‘시진핑 키드’로 불리며 후계자군에 포함돼 있었는데, 2022년 당대회에서 예상과 달리 상무위원 진입에 실패하며, 두 달 뒤 톈진시 당서기로 옮겨갔다”면서 “이를 계기로 사실상 정치적으로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됐다”고 짚었다.
에포크타임스는 “끌려나가던 후진타오에게 응답한 고위 인사는 또 있었는데, 바로 리커창(李克強) 전 총리였다”면서 “그는 재임 중 경제 정책 분야에서 시진핑과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후진타오는 퇴장하면서 리커창 당시 총리의 어깨를 토닥였고, 리커창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만 아는 작별 인사를 나눈 셈이다. 리커창은 이듬해 퇴임했으나 7개월 만에 상하이의 한 고급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 후 휴식하던 중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했다.
[위기 감지한 시진핑, 후진타오에게 발언 막으려 퇴장시켰다]
사실 시진핑이 당대회에서 후진타오를 주목한 이유는 3연임을 강행한 시진핑에게 후진타오가 마이크를 잡고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펼칠 것을 두려워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수샤오허(蘇小和)는 “붉은색 표지 서류 쟁탈전이 기점이 되긴 했지만, 꼭 이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후진타오가 퇴장당했을 것”이라면서 “시진핑은 이미 후진타오를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삼고 있었는데, 자리 배치상 후진타오 앞에 마이크가 놓여 있어서 그가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다른 인사가 호응하면 회의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어 선제 대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포크타임스도 “후진타오가 끌려나간 2022년 중공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핵심 목표는 자신의 국가주석 3연임 확정 외에도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파벌 축출, 자기 측근 인사들의 최고 지도부(중앙정치국) 진입 등이 있었다”면서 “25명으로 구성된 중앙정치국은 중공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이 중 상무위원 7명은 국가 주요 정책을 결정하며, 시진핑 역시 이들 중 서열 1위인 총서기인데, 상무위원과 그 후보군인 정치국 위원 명단은 중공 내 모든 정치 세력의 최대 관심사로, 막대한 권력과 이권이 달렸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런데 “중국 전문가들은 후진타오가 입수하려 했던 ‘붉은색 표지 서류’에 정치국 상무위원 명단이 적혀 있었으며, 시진핑은 후진타오가 이를 확인하고 강하게 반발할 것을 우려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런던대 소아스(SOAS) 중국학과 스티브 창 교수와 이 대학 중국연구소 연구원 올리비아 청은 “후진타오가 명단을 봤다면 자신이 후계자로 낙점한 후춘화(胡春華) 정협 부주석의 이름이 빠졌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포크타임스는 “공청단 소속인 후춘화는 후진타오가 키워온 후계자로,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됐다면 시진핑의 뒤를 이을 인물이었다”면서 “그러나 시진핑 집권 후 후춘화는 권력의 중심에서 철저히 배제됐으며, 이날 당대회에서는 리커창, 후춘화, 왕양(汪洋) 등 공청단 파벌도 사실상 전멸했다”고 짚었다.
에포크타임스는 “결국 수샤오허(蘇小和)의 주장에 따르면 시진핑은 지난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원로 세력의 반발을 예상하고 일부 체포 등 강경책을 세웠으나 장유샤가 이에 관한 정보를 원로 측에 흘리면서 무산시켰고, 시진핑은 일부 소란에 대비하면서도 후진타오의 반응을 보며 사태가 커지지 않도록 차단하는 등 양측 사이에 험악한 수싸움이 오갔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정치평론가 장펑도 “이 숙청이 시진핑 정권의 마지막 전투로 여겨졌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중단되었다”면서 “충성스러운 파트너로 여겨졌던 두 고위 인사, 천민얼과 장유샤가 동시에 계획을 포기하거나 회피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시진핑은 그동안의 중국 정치 관행을 깨고 ‘제2의 마오쩌둥’이 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충신으로 여겼던 이들의 반란으로 인해 이제 권좌를 내놓아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사망에 이른다!” 자금 시진핑에게 딱 걸맞는 말인 듯 보인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