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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1 18:44:09
  • 수정 2018-01-21 19: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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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학생운동 내지 X86세대 중에서 가장 어렵고, 치열했던 실천 활동을 전개했던 사람은 위장취업자

-대기업 노조운동의 원천인 ‘지불능력’도 압도적으로 우월한 원청대기업의 협력업체와 소비자에 대한 갑질탓

-힘의 격차와 더불어 요구, 기대 수준도 과대… 약자를 약탈•억압하지 않으면 그 수준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


▲ 위장취업자로 가서 눌러앉은 30년 늙은 노동자가 낸 이 책은 참으로 소중하다



이범연의 이 책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_’내부자’ 눈으로 본 대기업 정규직 노조 & 노동자>은 위대한 승리와 진지한 (대안)모색의 기록이지만, 유감스럽게도 1980년대 가장 치열했던 세대의 참담한 좌절의 기록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 내지 X86세대 중에서 가장 어렵고, 치열했던 실천 활동을 전개했던 사람은 위장취업자다. 사노맹이니 혁노맹이니 하는, 이름도 무시무시한 지하조직 만들어서 과격한 활동 좀 하다가 안기부의 맛있는 먹이가 되어 징역 왕창 구형 받는 것보다 위장취업이 훨씬 힘들고 대단한 활동이었다.

잠깐의 체험으로 공장에 간 것이 아니라,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노동자로, 혁명가로 살겠다는 각오로 갔다. 당시는 너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후 이 위대한 실천 활동에 뛰어든 활동가의 99%는 현장을 떠났다. 물고기에게 물에 해당하는 기업 자체가 없어지기도 하고, 이념적 회의도 심하게 왔고, 활동의 의미도 잃었고, 정치, 전문직, 교직, 기업 등 다른 의미있는 활동 공간도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떠났다.

그런데 이범연(서울사대 81)은 대우자동차에서 버텼다. 두번의 해고와 두번의 구속을 거치며 수차례 노조 간부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몇 년은 노조의 생활비 지원 없이 버텼다. 물론 회사가 망하지 않았고, 또 조합비로 해고자에 대해 생활비를 지급할 수 있기에 30년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낸 그의 집념과 헌신은 기념비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범연은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 선후배 들의 시선을 이렇게 요약했다. 참 잘도 요약하였다.

내가 오래 전 노동자로 살겠다며 공장에 들어갔을 때, 나를 잘 알던 지인들이 처음에는 미안해하고 격려도 하고 지원도 해 주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힘들지?”

몇 년 후 수많았던 위장 취업자들이 썰물처럼 공장을 빠져나가던 시기 그들은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너 아직도 그러고 있냐?”

그리고 또 수년이 흘렀다. 그들은 말했다.

“너 살만 하지?”

이제 그들은 부러움과 질시의 시선을 내게 던지며 이렇게 말한다.

“넌 좋겠다. 연봉도 높고 정년도 있고…..”

(이범연, 36쪽)

1994~96년에 대우자동차에 들어온, 나를 포함한 운동권 출신 입사동기들의 상당수는 바로 위장취업이나 공단 주변에서 교육상담 활동을 하다가 떠났던 사람이다. 이범연 씨는 내가 대우자동차 다닐 때 -2000년 전후하여 대우자동차 부도와 해외매각으로 논란이 분분했을 때- 만난 적 있다. 그런데 얘기가 별로 잘 통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개인적으로 훨씬 많은 얘기를 나눴던 사람은 이성재(서울공대 78) 전 노조위원장이다. 어떻게 보면 위장취업자로서는 가장 실천적 성과가 높았던 사람이다. 이 분이 요즈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내 기억으로는 한국노동운동에 대한 성찰과 모색의 고민은 더 깊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 분이 쓴 성찰과 모색의 기록을 정말로 보고 싶다.

이범연은 1987년 이후, 대기업 노조운동의 융성과 중소기업 노조운동의 몰락이라는 극적인 엇갈림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지불능력이 있는 대우자동차 같은 수출 중심 대기업 임금은 가파르게 상승했다……(하지만) 중소기업들, 그리고 노동집약적인 소비재 중심의 대기업들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고용 기반이 무너져 내렸다. (37쪽)

“더 잘 싸워서 노동조합이 유지되고 더 못 싸워서 노동조합이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단지 지불능력이 있는 수출 대기업에 다닌다는 것과 해외 이전과 구조조정이라는 자본의 칼날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차이일 뿐이다. 공장이 문을 닫는데 노동조합을 지켜낼 재간이 어디에 있겠는가?”(38쪽)

자본의 힘이 있고 지불능력이 있어야 노동조합도 힘이 있고, 노조로 단결할 필요성도 그만큼 커진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그것이 대기업 자본이든 국가든 지불능력이 있는 힘있는 자본이라는 맞상대가 있을 때 안정적인 노동조합이 만들어진다……그 많던 투쟁적인 중소기업 노동조합들 중에 지금 남아있는 곳은 거의 없다…. 당시 중소기업 노동조합 조직력은 대기업보다 더 탄탄했고 더 모범적인 활동을 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자본 크기의 차이다. 한쪽 자본은 노동조합에 일정 양보하면서 공장을 유지해갔고, 다른 한쪽은 공장을 축소, 이전, 폐쇄하면서 노동조합의 기반 자체가 허물어져 버렸다. 이처럼 노동조합 장래가 맞상대인 자본의 능력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194~195쪽)

이건 누구나 알고 있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실은 대기업 노조운동을 융성하게 만든 ‘지불능력’이나 ‘자본의 능력’조차도 단지 높은 생산성의 산물만은 아니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원청 대기업의 협력업체와 소비자에 대한 갑질 탓이 크다. 대기업 노조운동은 이 갑질을 훨씬 집요하고 가혹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기업을 압박한다. 이는 내가1995~2004년에 대우자동차에서 협력업체 관리를 하면서 절감했던 일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윤에서 노조로 조직된 생산직 노동자들의 기여는 결코 많지 않다. 혁신의 원천은 1990년대 즈음 연구개발마케팅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장/기업 생태계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한국 노조운동의 주력 부대인 공공부문과 대기업 노조는 이 얘기를 여간해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들은 노조가 있어서 정당한 몫을 쟁취했고, 중소기업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체하거나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해서 지금처럼 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은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 자체가 경쟁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그리고 ‘대기업 자본이든 국가든 지불능력이 있는 힘있는 자본’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국가(정부)를 자본과 동열에 놓는다. 그런데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공부문)노조가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여 임금 등 근로조건을 끌어올리면, 그 부담은 노조원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가난한 국민들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정부의 지불능력은 어디서 나오나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정부만큼 털어먹기 좋은 존재가 없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는 망해도 정부는 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범연은 한국 노조운동의 지난 30년에 대한 성찰 반성을 통해, (그의 표현을 빌리면) 절대 다수인 ‘배제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는 노조운동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고귀한 생각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구체적인 대안은 링크한 기사에도 좀 나오는데, 한마디로 착한 부모, 사회적 책임을 의식하는 노조원, 주민, 시민이 되자는 것이다. 좋은 얘기지만, 좀 맥이 풀릴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성찰 반성은 한국 노조운동의 치명적인 맹점인 ‘시장/기업 생태계’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을 둔, ‘약탈/쟁취주의’에 대한 성찰 반성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말은 바르게 했다.

“이제 87년을 넘어설 때가 되었다. 87년 투쟁이후 30여 년간 지배해 온 관성적인 사유방식, 조직방식, 활동방식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 체계, 우리 몸 깊숙히 새겨있을지도 모르는 관성적 사유에 대해 한법 회의를 품고 들여다보아야 한다.(204쪽)

그런데 30여 년간 지배해 온 관성적인 사유방식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범연은 빌헬름 라이히의 말을 본따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설명되어야 할 것은 한국 사회의 가난한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싸우는가가 아니라, 착취당하고 고통 받는 다수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왜 스스로를 조직하고 싸우지 않는가? 라는 사실이다”(41쪽)

맞다. 정말 제대로 된 질문이 필요하다. 그런데 질문은 제대로 던져놓고도, 답을 여전히 새로운형태의 조직, 투쟁과 국가 형벌권에서 찾는다.

“배제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자신의 기회를 박탈하고,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다고 느끼고 조직된 노동자들의 기득권만 보호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배제된 노동자들의 이런 태도(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는 그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에서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배제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힘들고,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면 자본의 적대적 시선과 탄압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나는 이재명 후보가 “근로감독관을 5000~1만 명 수준까지 확충해 노동현장 불법 행위를 철저히 통제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는 공약에 상당히 공감이 갔었다. (192쪽)

앞에서는 배제된 노동자들의 삶을 비루하게 만드는 핵심 문제가 자본의 능력 내지 지불능력이라고 해 놓고, 또 조직, 투쟁 타령이다. 이게 새로운 형태의 조직, 투쟁과 국가의 감시, 단속으로 해결될 문제인가? 최저임금이 근로감독관 10배로 늘리면 해결될 문제인가?

잘못된 질문과 답의 뿌리에는 당연히 기득권/기형을 기득권/기형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고방식이 있다. 그 뿌리에는 한국사회와 한국 노조운동의 갈라파고스적 특성에 대한 몰이해와 신자유주의라는 낡고 조야한 프레임이 있다. 신자유주의 프레임은 문제를 추상화시킨다. 결론은 자본을 억압하고, 공공부문을 늘리고, 국가 규제를 강화하자는 것으로 귀결된다.

“우리가 상대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는 정말 유연하고, 교활하고, 그래서 힘이 있다. 배제된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투쟁하고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것, 그것은 박근혜를 몰아내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과제이다.(194쪽)

문제를 신자유주의 프레임으로 보니 교육 문제나 대학 문제에 대해서도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진단과 대안을 낸다.

“대학에 절실한 것은 경쟁보다는 평등, 그리고 연대와 공감, 노동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노동자로서의 자각이다. 대학이 경쟁의 원리를 넘어설 수 있다면, 노동자 조직화의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지 않을까?(224쪽)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열심히 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따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인 시간 강사, 아니 비정규직 교수들이 있다. 이들은 대학을 장악한 재벌 자본에 착취당하는 지식노동자들이다.(231쪽)

이범연은 진짜 던져야 할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얼마 전에 한국GM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이 나에게 말했다. “정규직은 그렇지 않은데 비정규직에 대한 관리자들의 통제와 인격적인 모욕이 심하다” 나는 대답했다. “그것은 정규직, 비정규직 차이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있고 없고 차이다”

창원공장 노동자들은 ‘무노조 10년의 한’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노동조합이 없는 10년 기간 동안 회사와 관리자들에게 당했던 억압과 모멸감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187~188쪽)

“나는 노동조합은 임금과 노동조건의 향상보다도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게 해주는 역할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연이은 자살 원인은 생계의 고통도 있겠지만, 인간으로서 존엄과 인간관계가 무너진 것이 더 큰 이유일 수도 있다” (189쪽)

쌍용차 얘기는 하도 많이 한 얘기라서 더 이상 하지 않겠다(2001년 대우차 1752명 정리해고로 인해 자살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는 그렇게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살로 몰아갔을까? 이 질문 하나로 족하다).

진짜 던져야 할 질문은 노동조합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왜 그렇게 커야 하느냐다. 물론 이게 사실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사실이라면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

나는 노조 유무가 ‘억압과 모욕과 모멸’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노사관계 뿐 아니라 제반 사회관계가 힘(대항력)의 격차가 크면 갑질이 비교적 심하다고 알고 있다. 노조 문제보다는 힘(대항력)의 격차가 본질이다. 사실 이것을 바로 잡는 것이 핵심인데, 한국 노조운동은 이 구조를 개선은 커녕 더욱 악화시켜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반 사회관계에서 갈등이 심한 것은 힘의 격차와 더불어, 요구, 기대 수준 문제도 있다. 약자를 약탈하고 억압하지 않으면 그 요구,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의 평균적 생산력 수준에서 벗어난 요구, 기대, 표준이 너무 많다. 자신이 사회적 기여를 훨씬 뛰어넘는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이건 약탈임에도 불구하고 약탈인 줄 모른다. 이를 전형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공공부문 종사자와 민간대기업 노조와 그 종사자다.

단적으로 공무원 임금과 연금과 복리후생에 대해서 민주공화주의가 잘 작동하는 선진국의 수준을 묻지 않는다.

공무원 연금으로 말하면, 많이 내니까 많이 받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수준이다. 꽤 똑똑하다는 논객들도 이 수준이다. 이런저런 산식을 가지고 국민연금과 비교해서, 내는 것에 비해 결코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건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공무원 연금의 근원인 결코 낮지 않은 임금과 자기 부담금(7%)과 고용주 국가의 매칭금(7%)도 다 세금이고, 긴 근속기간(고용보호 수준)도 국가의 법령이라는 사실을 의외로 망각한다.

선진국의 보편적인 기준인 1인당 gdp나 노동자 평균 임금이나 중위임금이라는 잣대로 한국 공무원의 임금, 연금 수준을 따져보지 않는다. 이범연도, 공무원 연금 좀 안다는 논객도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고임금, 연공임금과 강한 고용보장의 근원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시장경제(생산물시장과 노동시장)와 민주공화주의가 잘 작동하는 나라, 노동조합이 기업횡단적인 근로조건의 표준을 형성하기 위해 투쟁하는 나라와 한국의 차이를 묻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지만, 공무원연금이 왜 국민연금과 따로 존재해야 하는지, 그리고 유족 연금은 또 왜 달라야 하는지도 묻지 않는다. 한국의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고갈등 문제의 배경에는 공공부문과 노조 등의 약탈주의적, 과도한 요구가 있다. 나머지는 생산물 시장 자체의 엄청난 불균형과 국가권력의 과잉(규제)과 저열한 정치품질 등이다.

이범연이나 나나 지난 35년 여에 걸쳐 나름대로 치열하게 실천하고 성찰하고 모색했다. 물론 둘은 생각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둘 다 철저하게 실패했다. 좌절감은 내가 더할 것이다. 이범연에게 문재인 정부는 사상이념적으로 꽤 싱크로율이 높은 정부겠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사상이념 지체 정부요, 시대착오 정부요, 철부지, 망나니 정부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다 그런대로 애들 잘 키웠고 먹고는 살지만, 1980~90년대 꿈꾸던 사회와 너무 다른 사회를 보고 당혹해한다. 그나저나 우리 세대가 살 날이 평균적으로 30년은 남은 것으로 보이는데, 둘 다 성찰과 모색을 한참은 더해야 할 것 같다.

좀 혹평은 했지만 위장취업자로 가서 눌러앉은 30년 늙은 노동자가 낸 이 책은 참으로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파리행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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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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