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종식 이후 최악의 '국가해체' 위기에 빠진 레바논]
레바논의 지하 벙커에 은신해 있다가 이스라엘 전투기가 투하한 폭탄에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한 가운데 이스라엘이 레바논 지역의 헤즈볼라 잔당 소탕을 위한 대대적인 폭격이 이어지면서 레바논이 내전 종식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가운데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해 보복 공격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지켜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최악의 딜레마에 빠져 있고, 중동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완전히 분열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30일, “수년간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 끝에 레바논은 이제 재앙에 직면했다”면서 “지난 2주 동안 1,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십만 명이 이주했으며, 병원은 부상자들로 가득 차 있고 대피소는 수용 인원을 초과했다”고 보도했다.
WP는 이어 “레바논은 지금 어려움이 심화되고 구제책도 부족함에 따라 그리안해도 내전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레바논은 헤즈볼라가 10월에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연대하여 이스라엘에 발포하기 전부터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마비되어 있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9년에서 2023년 초 사이에 레바논 통화는 가치의 98% 이상을 잃었고, 약 45%의 사람들이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나라는 2022년부터 제한된 권력과 대중적 신뢰를 가진 과도 정부가 이끄는 대통령이 없는 상태이다.
이에 대해 베이루트에 있는 대안정책연구소의 연구 책임자인 니자르 가넴은 WP에 “레바논이라는 국가가 사실상 사라지기 직전에 처해 있다”면서 “나스랄라가 살해된 후, 이 국가는 붕괴 직전의 초위기 단계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지금과 같이 이어진다면 레바논은 그야말로 완전히 무정부 상태로 파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공황과 절망이 베이루트를 넘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WP의 진단이다.
더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많은 난민들이 뿔뿔이 지방으로 흩어져 가지만 그 가운데 누가 헤즈볼라 세력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로인해 더 큰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젠 헤즈볼라 구성원들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레바논은 지금 혼돈 그 자체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군은 분쟁 발발 후 처음으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도심을 공습했다. AP통신은 30일(현지 시간) “이날 새벽 베이루트 서남부의 주택가 알콜라에 있는 아파트 한 채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받았다”면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분쟁이 시작된 작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 시내 중심가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AFP 통신도 레바논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의 드론(무인기)이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단체 자마 이슬라미야 조직원 2명이 소유한 아파트를 표적으로 삼았다”면서 “이스라엘군의 이번 폭격으로 4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이번에 폭격을 받은 곳은 오랫동안 헤즈볼라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딜레마에 빠진 이란, 보복 큰소리 치지만 그럴 힘이 없다!]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이러한 분쟁 상황을 만들고 또 조정해 왔던 이란의 태도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 “이란 지도자들은 취약하고 분열되어 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에 있어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이란이 점점 곤궁한 처지에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어 “격동하는 중동 정세 속에서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는 그동안 레바논 민병대 헤즈볼라의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와의 긴밀한 동맹, 변함없는 충성심, 깊은 우정에 의지해 왔지만, 그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음에도 당연히 마땅히 해야할 보복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에 대응 방안을 놓고 이란내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란 내의 보수파는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고 있고, 이란의 새 대통령인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이끄는 온건파는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하메네이가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어찌보면 이스라엘을 향한 보복을 이란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붕괴의 길을 걷고 있는 헤즈볼라가 하기를 원하고, 이란은 그 헤즈볼라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직접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뜻을 밝혔다는 점에서 이란의 동맹세력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채텀 하우스의 중동 담당 이사인 사남 바킬은 “이란은 지금 이스라엘에 완전히 체크메이트(무슨 수를 써도 외통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 당했다”면서 “하메네이는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사실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약속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복수까지 아웃소싱만 했지 이란이 직접 뭔가를 하겠다는 약속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리더십의 실종이고 중동의 맹주였던 이란의 지위도 이미 무너져 내렸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복수의 아웃소싱 개념은 하메네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혁명 수비대 사령관인 호세인 살라미 장군도 “이스라엘에 타격을 가할 세력은 헤즈볼라, 하마스, 그리고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란의 태도는 중동질서가 재편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헤즈볼라가 사라지고 하마스까지 맥을 못추는 상황에서 종주국이었던 이란 역시 사실상 힘의 궤멸상태가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어서다.
이스라엘은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무려 1천700㎞ 정도나 떨어진 예멘에 있는 친이란 무장세력 후티를 폭격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는 이란이 의지할 수 있는 세력이라면 누구든 이스라엘의 처단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이런 차원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중동질서를 자국에 유리하게 재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나스랄라를 죽인 뒤 “지역 내 힘의 균형을 수년간 바꿀 수 있다”며 “현재 국면은 이스라엘에겐 중요한 기회”라고 평가했다.
지금 이란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2년 전 반체제시위의 불씨가 완연한 형국에 만약 이란이 주도하는 전쟁이 벌어질 경우 서방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그리안해도 고립된 경제가 더 큰 치명상을 입게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체제 존립마저 위협받는 최악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하메네이도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아파 분노-수니파 조용, 나스랄라 사망에 분열된 중동]
이런 상황에서 눈여겨볼 것은 중동 지역 각국의 반응이다. 실제로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수장 나스랄라가 이스라엘 공습에 폭사한데 대해 중동 이슬람 국가 사이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이슬람 시아파 국가에서 이스라엘 응징을 예고하며 분노하는 반면 수니파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30일, “중동 국가 사이에서 이처럼 반응이 엇갈리는 것은 이슬람 양대 종파인 수니파, 시아파에 따라 이스라엘의 나스랄라 '제거'를 둘러싸고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나스랄라는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주도하는 '저항의 축'에서 헤즈볼라를 이끌어 온 '맏형' 격으로, 지난 27일 이스라엘의 융단 폭격으로 사망하면서 시아파 국가는 일제히 이스라엘을 상대로 응징을 예고하며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가 맹주로 있는 수니파 국가들은 대체로 이스라엘과 수교했거나, 친이란 세력과 갈등 관계라는 점에서 나스랄라 사망에 조용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사우디는 나스랄라 사망 발표가 나온 다음날인 29일 성명을 내고 “레바논 후속 상황을 깊은 우려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밝히고 침묵중이다. 그리고 같은 수니파 국가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도 여전히 침묵을 고수 중이다.
이중 UAE와 바레인은 2020년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했으며, 특히 바레인은 2011년 '아랍의 봄' 시위 당시 수니파인 집권층이 시아파의 반정부 민주화 봉기를 폭력 진압하기도 해 시아파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바레인은 나스랄라 추모 시위가 벌어지자 이들을 강제진압 시키기도 했다.
이집트 또한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이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와 통화하면서 레바논 영토 침범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나스랄라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내놓지 않았다. 이집트는 그간 이란과 갈등 관계에 있었다.
레바논 바로 옆 나라인 시리아도 같은 수니파 국가이기는 하지만 정부군과 반군 간 오랜 내전에 시달리면서 이번 나스랄라 사망을 둘러싸고도 민심이 극명하게 갈려 있어 상황이 복잡하다.
나스랄라는 바샤르 알아사드 현 시리아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군의 핵심 동맹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간 그가 시리아 정부의 폭정을 앞장서 도왔다는 측면에서 원성이 자자했다.
이에 따라 시리아 반군이 점령한 북서부 도시 이들리브의 거리에서는 28일 나스랄라 죽음에 환호하는 주민들이 쏟아져 나온 반면, 아사드 정권이 점령하고 있는 도시 홈스에서는 나스랄라 지지자들이 애도 행진을 벌이는 상반된 풍경이 연출됐다.
반면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 국가에서는 '시온주의' 이스라엘을 규탄하며 나스랄라의 죽음을 분노의 불씨로 삼고 있다. '저항의 축' 일원인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예멘 수도 사나에서는 수만 명이 모여 '이스라엘 응징'을 외쳤다.
이렇게 헤즈볼라의 수장 나스랄라의 죽음과 그 세력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징은 중동의 맹주 이란의 지위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고, 이로인해 중동지역은 완전히 분열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럴수록 이란은 더욱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