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과소평가하고 이란을 과대평가했던 헤즈볼라]
이스라엘이 지난 7월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에 이어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까지 '제거'하면서 이란을 중심으로 한 무장 동맹인 '저항의 축'의 양대 수뇌부가 사실상 궤멸됐다. 그런데 저항의 축 세력이 이렇게 초토화된 배경에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반면 이란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시간)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당시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서 ‘이란이 지원하는 모든 저항 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 선언한 바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 헤즈볼라는 고위 지도부는 대부분 사망했으며 심지어 헤즈볼라의 무서웠던 공격력도 사실상 궤멸되었다”고 보도했다.
WSJ은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데는 나스랄라가 두가지의 전략적 실수, 즉 적인 이스라엘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후원자인 이란과 이란의 역내 동맹 무장 단체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결과였다”고 지적했다.
WSJ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정밀 유도 탄도 미사일을 포함한 방대한 미사일과 로켓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확전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헤즈볼라의 무기는 아직까지 이스라엘에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9월 16일 이후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습으로 레바논에서 1,0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지금도 이스라엘의 공격은 진행 중이다. 반면 헤즈볼라 공습으로 인한 이스라엘인 사망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2006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였을 때 레바논 총리를 역임한 푸아드 시니어라(Fouad Siniora)는 “우리는 현재의 충돌에서 헤즈볼라가 군대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화력, 공군력, 정보력, 기술력 측면에서 이스라엘과 비교할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평가했다.
시니어라는 이어 “이란은 역내 동맹국들이 이란 정권을 위해 피를 흘려줄 것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동맹세력들이 공격을 당할 때 테헤란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면서 “이는 저항의 축 세력들의 단결 개념이 이란을 향한 일방통행이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란은 소위 저항의 축 세력들을 부추겨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도록 해놓고 정작 이란은 뒷꽁무니를 빼는 비겁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란은 나름대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 이스라엘이 이란 정부의 영빈관에서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암살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자국 안보 조직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사실상 이란은 초비상 상태다.
특히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은 대부분의 장비와 부품을 수상한 중개인을 통해 조달해야만 한다. 군사 분석가들에 따르면 헤즈볼라의 공급망에 침투해 무전기와 호출기에 폭발물을 설치한 이스라엘이 마찬가지로 이란의 통신 네트워크나 무기를 방해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이스라엘을 향한 어떠한 도발적 행동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이자 전 국무부 고위 고문인 발리 나스르는 “마수드 페제쉬키안 이란 신임 대통령이 서방에 매력 공세를 펼치면서 이란에 대한 국제적 제재 완화를 통해 경제회복을 살리는데 가장 중요한 외교에 방점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테헤란은 헤즈볼라를 대신해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스라엘은 정보 및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있고, 미국에는 대선 때문에 정치적 공백이 있으며, 미 해군이 지중해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당연히 전쟁을 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테헤란의 분위기는 그러한 미끼를 물지 않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역효과 낳은 헤즈볼라의 전쟁 선포, ’무적의 아우라‘ 잃었다!]
물론 헤즈볼라는 아직도 상당한 무기들을 소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의 일련의 사태로 볼 때 헤즈볼라는 레바논내에서 레바논 국가를 본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해 준 무적의 아우라를 잃어버렸다.
레바논은 헤즈볼라와 그 동맹세력의 방해로 인해 의회가 투표를 실시하지 못하면서 2022년 10월 이후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남부 시아파 지역과 베카 계곡의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고향을 떠나면서 헤즈볼라는 레바논 시아파 공동체 내 기반도 위협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 분석가 마이클 영은 WSJ에 “헤즈볼라의 전쟁은 역효과를 낳았고, 근거지인 남부의 많은 지역이 파괴되었으며, 수십만 명의 시아파가 고국을 떠돌거나 사실상 난민이 되면서 기반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또 다른 문제는 국내적으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제2전선을 구축하는 데 있어 고립되어 있다는 점으로 많은 커뮤니티에서 헤즈볼라에 대해 어느 정도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이번 사태로 인해 레바논 내에서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약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 공습에 숨진 나스랄라의 빈자리를 그의 사촌인 하셈 사피에딘(60)이 채울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과연 나스랄라의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대신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헤즈볼라의 핵심 지도부 11명중 10명이 사망한 상황에서 조직을 제대로 추스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나스랄라의 사망이 이란의 ‘종말의 시작’일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하산 나스랄라 살해가 이란에 '종말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영국 더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는 29일(현지시간) “나스랄라가 살해되었다고 해서 헤즈볼라가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이스라엘이 나스랄라를 잡았다는 사실은 헤즈볼라의 취약성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내는 것”이라면서 “나스랄라의 사망은 헤즈볼라의 사기에 큰 타격을 입히고 이란의 동맹세력들에게 헤즈볼라가 그동안 기지고 있었던 이미지, 곧 강력한 보안을 갖춘 무적의 이미지가 완전히 훼손되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러한 헤즈볼라의 타격이 중동지역에서 이란의 위치와 명성, 그리고 관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더타임스는 “나스랄라의 제거와 헤즈볼라의 약화로 중동 전역의 이란 지원 단체들은 자신들의 안보에 대한 실질적인 우려를 갖게 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이란의 가장 강력한 자산을 무릎 꿇릴 수 있다면, 이란의 네트워크에 속한 소규모 신생 단체들은 잠재적으로 더 쉽게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 짚었다.
더타임스는 그러면서 “이란은 솔레이마니 암살에도 불구하고 역내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암살은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했다”면서 “반면 나스랄라의 사망은 헤즈볼라를 무력화하려는 이스라엘의 광범위한 공격의 일환으로, 중동에서 이란의 지역적 영향력이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도 29일, “수년동안 이란의 충성스러운 하인이었던 헤즈볼라는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의 피비린내 나는 정권을 지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라크와 예멘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다른 민병대에 훈련과 지침을 제공해 왔다”면서 “나스랄라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던 시리아의 수많은 이들과 상당수의 걸프국가들도 나스랄라의 죽음에 대해 샴페인을 터뜨렸을 것”이라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나스랄라는 당연히 이란이 도와줄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이란은 그러지 않았다”면서 “그 이유는 이란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이란 내부에 이스라엘 조직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또한 “이란의 지도자들은 헤즈볼라와 같은 단체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 표명이 국내에서의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걱정한다”면서 “침체된 경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이란 정권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리 세력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보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면서 “지난 28일, 이란의 촤고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의 ‘중요한 성명’이 발표되었지만 내용 자체가 공허했다”면서 “이란은 자체 핵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헤즈볼라에 의존했지만 이젠 더 이상 헤즈볼라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측면에서 이란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동내에서의 이란의 입지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의 결론이었다.
[이란 혁명수비대 장성, 헤즈볼라 수장과 함께 폭사]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수장 제거 작전으로 이란 혁명수비대(IRGC) 작전부사령관도 함께 사망했다. 이란 국영 IRNA통신은 “압바스 닐포루샨 부사령관이 헤즈볼라 수장을 암살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IRGC 정예부대인 쿠드스군의 레바논·시리아 지역 사령관도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나스랄라 피살에 긴장한 신와르…"이동 멈추고 연락도 끊어"]
한편, 나스랄라의 사망 소식에 하마스의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도 경계심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랍권 매체 알아라비야는 29일, “신와르 등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머무르고 있는 하마스 지도층 인사들은 나스랄라 피살 이후 모든 움직임을 멈춘 상태”라면서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 카타르 등 해외에 있는 지도부와 연락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도자인 신와르는 작년 10월7일 자신이 계획하고 주도한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그는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파놓은 땅굴에 은신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군은 신와르를 '제거 1순위' 표적에 올려놓고 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