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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천안문은 끝나지 않았다…37년이 지나도 공산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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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천안문은 끝나지 않았다…37년이 지나도 공산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기억 - 로이터 단독 전문 인용…트럼프·시진핑 밀착 속 작심 성명 - 중국 외교부 "역사 왜곡·체제 비방" 발끈…신경질적 반응이 상처 깊이 드러… - 유가족 묘지 방문도 사상 첫 봉쇄, 홍콩 촛불은 완전히 꺼지다
  • 기사등록 2026-06-05 1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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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오 발언이 던진 질문—왜 중국은 아직도 천안문을 두려워하는가]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총성은 37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 공산당을 따라다니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어떠한 검열도 과거를 지울 수 없다”고 직격하자 중국 외교부는 즉각 ‘역사 왜곡’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중국이 해마다 더 강력한 검열과 추모 통제에 나서는 현실 자체가 천안문이 여전히 체제의 가장 깊은 상처임을 보여준다. 천안문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 시진핑 체제를 움직이는 공포와 통치 철학의 출발점이다.

로이터 통신은 4일,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중국의 1989년 천안문 광장 평화 시위대에 대한 군사 진압의 기억을 베이징의 검열이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면서 “이 성명은 루비오 장관의 과거 발언과 기조를 같이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직접 만나는 등 양국 정상 간 밀착 관계를 거듭 과시하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중국 반체제 인사들과 민주주의 지지자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루비오 장관은 공식 성명을 통해 “세계는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 광장 안팎에서 평화적 시위대를 향해 군을 투입했던 사실을 기억한다”며 “자유로운 표현과 평화적 집회의 권리를 위해 희생한 이들은 언젠가 반드시 인정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발언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상황 속에서도 미국이 천안문 문제만큼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로이터는 같은 기사에서 “중국 내에서 천안문 진압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금기시되며 해당 주제는 철저히 검열되고 있고, 중국은 당시 시위를 공산당 전복을 획책한 반혁명 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했으며 지금까지 공식 사망자 수를 발표한 적이 없다”고 명시했다. 또한 “홍콩의 제한 조치로 한때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추모 집회가 완전히 사라졌고, 이제는 런던·뉴욕·베를린·타이베이 같은 도시들이 6·4 기념의 불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발끈한 베이징, ‘비방’이라는 반박이 오히려 상처의 깊이 드러내다]


루비오의 성명에 베이징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그 반응의 속도와 수위가 오히려 이 사안이 중국에게 얼마나 예민한 급소인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마오닝은 정례 브리핑에서 루비오의 성명에 대해 “중국은 미국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중국의 정치 체제와 발전 노선을 비방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표하며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마오닝은 또한 “중국 정부는 1980년대 후반 발생한 정치적 혼란에 대해 이미 명확한 결론을 내린 바 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 짧은 문장이 사실상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 전부다. '명확한 결론'이란 더 이상 논의할 여지가 없다는 봉인 선언이고, '혼란'이라는 단어는 수백에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학살에 대한 중국식 완곡어법이다


이에 대해 유로뉴스는 “중국이 루비오의 발언을 '비방(smear)'으로 규정하며 반박에 나섰지만, 정작 중국 본토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공개 논의 자체가 검열로 차단돼 있다”고 짚었다. 유로뉴스는 또한 “이날 홍콩 코즈웨이베이에서는 촛불을 들고 서 있던 시민이 사복 경찰에 연행됐고, 민주화 진영의 원로 활동가 찬포잉이 노란 종이꽃을 들고 있다가 경찰 차량에 실려 가면서 기자들에게 ‘빅토리아 공원은 홍콩인 37년의 집단 기억을 담은 곳이다. 이 기억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37년째 이어지는 기억과의 전쟁…공산당이 두려워하는 것은 과거다]


로이터 보도가 환기시키는 더 큰 질문은 “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핵무장 강대국인 중국 공산당은 37년 전의 기억 하나를 이토록 두려워하는가?”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는 천안문 사태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 공산당이 지금까지도 끝내지 못한 기억과의 전쟁에 가깝다.


중국 본토에서는 천안문 관련 정보가 사실상 완전한 검열 대상이다. 한때 수십만 명이 참여했던 홍콩 빅토리아 공원의 촛불 집회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사라졌다. 올해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중국 당국은 올해 처음으로 천안문 희생자 유가족들의 묘지 방문까지 제한했다”며 “수십 년 동안 유지돼 온 최소한의 추모 공간마저 봉쇄된 것”이라고 짚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통제를 넘어 개인의 애도 행위까지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역설적으로 이는 공산당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준다. 정권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현재의 반대 세력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잊혀질 사건이라면 이처럼 거대한 검열 시스템과 감시 체계를 동원할 이유가 없다. 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천안문이 금기어로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건이 여전히 체제의 약점임을 증명한다.


[시진핑 체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원형]


천안문의 의미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 시진핑 체제를 이해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열쇠가 된다. 실제로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인터넷 검열을 대폭 강화했고, 시민사회와 언론에 대한 통제를 확대했으며, 당의 이념 교육과 충성도 검증도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반부패 운동 역시 단순한 부패 척결을 넘어 당 내부 통제력을 회복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결국 오늘날 중국의 강력한 국가 통제 모델은 천안문 이후 형성된 통치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진핑 체제는 천안문을 잊은 체제가 아니라, 오히려 천안문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체제인 셈이다.


[홍콩—한때 아시아 최대 추모 집회가 있던 자리에 친중 행사]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한때 홍콩 빅토리아 공원이 매년 수십만 명이 모이는 평화적 민주 저항의 진원지였지만, 이제 이날 공원에서는 친중 행사가 열리고 현지 언론은 학살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한다”고 전했다.


RFA는 이어 “홍콩 언론이 6·4를 모르는 것도, 정보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감히 이 주제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6년이 지나는 사이,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자유로운 언론 환경을 자랑했던 홍콩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


[검열이 오히려 증명하는 것—두려움은 기억보다 강하지 않다]


이날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과 영국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37주년 추모 메시지를 게시했다. 타이완의 라이칭더 총통은 “중국이 6·4 사건을 직시하고 진실을 인정하며, 고통을 치유하고 화해와 대화의 문을 열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냈고, 타이베이 자유광장에서는 촛불 추모 집회가 열렸다.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도 기독교계 시설 채플에서 추모 행사가 진행됐다.


미국 의회에서는 1989년 천안문 운동 당시 학생 지도자였던 아서 류가 미 의원들 및 지지자들과 함께 의사당에서 추모 행사를 가졌다. 그의 딸은 미국 피겨스케이팅 선수 알리사 류다. 천안문 세대의 이산이 다음 세대를 통해 미국 사회 깊숙이 뿌리를 내렸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또한 민주주의 저널은 “천안문 광장의 시위 진압 이후 중국 공산당이 이 사태 전체를 완전한 침묵의 장막으로 덮었고, 그 봉인은 너무나 철저해서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중국 정치의 제3의 금기(third rail)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역설이 있다. 37년간의 검열이 철저할수록, 그 검열의 존재 자체가 사건의 심각성을 반증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우기 위해 이토록 거대한 국가 기계를 작동시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컬럼비아대학교 정치학과 앤드루 네이선 교수는 프리덤하우스 기고에서 천안문 이후 중국 지도부가 체득한 교훈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공산당 체제는 국내외의 적들에 둘러싸여 있다. 둘째, 위험한 자유주의 사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당원에 대한 이념 규율과 사회 전반에 대한 사상 통제를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 셋째, 당은 강한 지도자 아래 반드시 단결해야 하며, 결코 우유부단함이나 망설임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이 세 가지 교훈이 오늘날 시진핑 체제의 통치 철학을 그대로 설명한다.


그러나 네이선 교수는 같은 글에서 이 체제의 취약성도 명확히 짚었다. 그는 “중국 체제가 많은 면에서 강하지만 동시에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지식인, 학생, 민간 부문 기업가, 중산층 상당수가 사상 통제와 법치 부재에 불만을 품고 있고, 경제가 둔화되고 있으며, 시진핑이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지도부 승계 규범을 교란시켜 향후 그가 어떤 이유로든 퇴장해야 할 때 권력 투쟁이 발발할 위험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결국 이 체제가 강한 손이 필요하다고 믿는 그 논리 자체가, 체제 스스로 자신의 취약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네이선 교수는 결론 내렸다.


프로브 인터내셔널은 37주년 특집 분석에서, “시진핑 치하의 끝없는 억압과 강화된 말살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천안문 학살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커지고 있다”며 “매년 새로운 사진과 목격자 증언, 문서들이 계속해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고 짚었다. 국가 권력이 기억을 지우려 할수록 기억은 더 집요하게 살아남는다는 역설이다


후버 연구소는 “천안문 광장이 이제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자신의 요구를 항의하는 시민들을 향해 국가가 징벌적 전쟁을 벌이는 것을 의미하는 고유명사—즉 하나의 상징어(metonym)—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지 중국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국가가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눌 때, 그 행위의 이름으로 '천안문'이 소환된다.


루비오의 발언은 그래서 단순한 연례 외교 성명이 아니다. 그것은 베이징이 가장 두려워하는 진실—자국민의 민주주의 요구를 학살로 짓밟았다는 사실—을 세계 앞에 다시 한번 들이밀었다. 중국 외교부가 즉각 ‘비방’이라고 반발한 것도, 마오닝 대변인이 “명확한 결론이 이미 났다”며 논의 자체를 차단하려 한 것도, 모두 같은 두려움의 표현이다. 37년간 탱크와 검열과 체포로도 지울 수 없었던 기억—그 기억의 불멸성이야말로, 천안문이 중국 공산당 최대의 아킬레스건으로 영원히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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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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