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선은 막히고 금고는 비고…크렘린이 종전을 말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마침내 스스로 종전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전쟁 목표 달성의 자신감에서 나온 신호가 아니라 전선·경제·민심이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적 압박의 결과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개막 직전 벌어진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은 러시아가 더 이상 후방 안전지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한때 "며칠이면 끝난다"고 자신했던 전쟁은 어느새 크렘린이 출구를 고민해야 하는 장기 소모전으로 변했다.

모스크바타임스는 3일, “러시아의 전쟁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2026 공식 프로그램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3일 아침 상트페테르부르크 상공을 가득 채운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의 검은 연기가,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지우기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는데, 러시아 최대 은행 중 한 곳의 직원은 ‘6년 동안 이 포럼에 참가해왔지만 올해 분위기가 가장 숨막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드론은 6월 3일 새벽 상트페테르부르크 석유 터미널과 크론슈타트 해군 기지를 동시에 타격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은 서방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회복력 있는 글로벌 경제 강국임을 투사하는 크렘린의 연례 최대 무대이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포럼 개최지이자 푸틴의 고향이다. 타이밍은 의도적이고 상징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130개국에서 2만여 명이 참가하는 이 3일간의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은 5일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도시 타격에 ‘체계적(systemic)’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공격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폭격에 대한 "정당한" 보복이라고 규정하며 추가 공격을 예고했다.
AFP는 “행사장에서 연기가 육안으로 보였다”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공항은 수 시간 동안 폐쇄됐으며 모스크바발 항공편 수십 편이 지연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고문 세르히 스테르넨코는 SNS에 “상트페테르부르크 포럼이 우크라이나의 타격으로 생긴 검은 연기를 배경 삼아 개막했다”고 조롱했다. 한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메르켈 독일 총리, 아베 일본 총리가 연설자로 섰던 그 포럼은 이제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에만 의존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2026년 6월, 러시아의 현주소다.
["일주일이면 끝낸다"던 전쟁이 4년 수렁으로]
불과 4년 전, 크렘린의 계산은 단순했다. 72시간 안에 키이우를 장악하고, 친러 정권을 세우고, 세계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러시아 최정예 부대가 헬기로 키이우 외곽 안토노프 공항에 강하했고, 미국 정보당국조차 우크라이나가 72시간을 버티지 못할 것으로 봤다. 그 전쟁이 지금 4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흐름은 완전히 뒤집혔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는 전선 분석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는 지난 4월 2024년 여름 이후 처음으로 전선에서 영토를 순손실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애틀랜틱카운슬은 “이는 모스크바의 침공이 다섯 번째 여름을 맞이하는 가운데 전세가 역전될 수 있다는 가장 최근의 신호 중 하나”라며 “우크라이나는 현재 국토 전체를 수복할 군사력은 부족하지만, 2026년 전략적 우선순위를 러시아에 최대한의 사상자를 입혀 침공 자체를 지속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새로 임명된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미하일로 페도로프는 공개적으로 “목표는 러시아군을 월 5만 명 정도 제거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그 목표가 허언이 아님은 수치가 입증한다. 우크라이나 무인기부대 사령관 로베르트 브로브디 소령은 “지난 5월 첫 19일 동안에만 드론 타격으로 러시아군 1만 9,203명을 제압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선언한 올해 봄 공세는 주요 우크라이나 도시를 단 한 곳도 점령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다.
[드론이 전쟁의 문법을 바꿨다]
러시아가 수세에 몰린 핵심은 드론이다. 포병 소모전에서 드론 전쟁으로 판이 바뀌자, 그 순간부터 전세가 기울었다. 포춘(Fortune)지는 “러시아는 4년 전 압도적 수적 우위로 침공했지만 서방 지원과 드론의 부상으로 그 우위가 무력화됐다”며 “최근 증거들은 러시아군이 전장에서 좌절을 겪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드론 혁신이 전장 우위를 우크라이나 쪽으로 전환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애틀랜틱카운슬은 “전례 없는 사상자 속도로 러시아는 극심한 충원 위기에 빠졌다”며 “대규모 탈출을 유발하는 재동원령을 꺼리는 푸틴이 대학생에까지 징집 범위를 확대하고 있으며, 130개국 이상에서 용병 2만 7,000명을 고용했고 2026년에는 외국인 모집 목표를 1만 8,500명으로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틀랜틱카운슬은 이어 “2026년 초부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에 핵심적인 발트해·흑해 정유소와 석유 터미널에 대한 강력한 드론 공습을 이어왔다”며 “이 공격들은 러시아가 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의 경제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도록 차단했다”고 분석했다. 전승절 열병식마저 드론 위협에 대폭 축소된 채 치러졌고,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 하늘에까지 연기가 피어올랐다. 러시아 국토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다는 메시지였다.
[블룸버그·FT가 폭로한 '붕괴 직전'의 재정]
전선의 패색과 함께 금고도 빠르게 비어가고 있다. 그것도 러시아 내부 문건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블룸버그통신은 6월 1일, “러시아 재무부와 중앙은행 고위 관료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지출이 감당 불가능한 경로에 들어섰다’고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이어 “2022년 전면 침공 이후 러시아 내부에서 나온 가장 심각한 내부 분열 신호라는 평가였다”면서 “2026년 1분기 러시아 경제는 3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경제부는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3%에서 0.4%로 급격히 낮췄다”고 짚었다.
FT는 “재무장관 실루아노프의 내부 서한을 입수했다”면서 “올해 첫 4개월 만에 재정 적자가 5조 9,000억 루블(약 82조 원, GDP 대비 2.5%)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FT는 이어 “이는 연간 계획치를 이미 50% 초과한 것이자 2022년 침공 개시 이후 최대 규모”라면서 “부정적 시나리오로 흐를 경우 2027~2028년까지 해마다 4조 루블씩의 초과 지출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키이우포스트는 “러시아는 2026년 예산의 40%에 달하는 16조 8,400억 루블(약 238조 원)을 국방·안보에 쏟아붓고 있다”면서 “국가 부채 이자 비용은 2021년 GDP 대비 0.9%에서 2026년에는 약 2%로 두 배 가까이 뛰어 연방 지출 전체의 9%를 차지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내셔널시큐리티저널은 “군비가 예산의 40%를 소진하고, 드론 공격 아래 에너지 수출이 쪼그라들고, 되돌릴 수 없는 인구 위기가 맞물리면서 러시아 경제는 크렘린이 더 이상 완전히 감출 수 없는 방식으로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가디언·모스크바타임스가 전한 크렘린 내부의 균열]
경제가 흔들리고 전선이 무너지자, 체제를 떠받치던 내부 기둥에도 균열이 왔다. 가디언은 크렘린 측근, 러시아 재계 인사, 서방 정보당국 관계자의 인터뷰를 토대로 “푸틴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거의 비판하지 않던 친크렘린 블로거들조차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이어 “푸틴이 최측근에게 연내 돈바스 전체를 점령할 수 있다는 믿음을 피력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했는데, 정작 그 전선이 역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자신감의 근거는 의문시된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올해 확실히 엘리트 사이에서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푸틴에 대한 깊은 실망감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어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행복지수는 4월에 1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며 “SNS에서는 세금 인상에 항의하는 소상공인, 반복되는 인터넷 차단에 분노하는 주민, 가축 살처분 명령에 들고일어난 시베리아 농민들의 영상이 빠르게 확산 중”이라고 짚었다.
영국 익스프레스는 “러시아 국영 TV 전쟁 해설자 알렉산드르 슬라드코프는 방공망이 대응하지 못한 채 러시아 최대 석유 수출 터미널에 5일 연속 타격이 이어지자 '우리는 또 당했다'며 분노를 터뜨렸다”고 전했다. 강경 선전가 내부에서조차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타임스는 “크렘린 엘리트들이 원한다 해도 푸틴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면서도 “이 흐름이 엘리트층 사이에서 갈수록 큰 짜증과 불만을 자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개인 지도자 체제의 정당성은 지도자의 능력,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능력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다. 시스템이 전략적 교착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할 때, 그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진단했다.
['오늘 안에 끝낼 수 있다'…종전론의 민낯]
이 모든 압박이 누적된 끝에 나온 것이 페스코프 대변인의 “오늘 안에도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발언이다. 표면상으로는 평화 메시지처럼 들리지만, 내용은 다르다. 러시아가 제시하는 조건은 돈바스·자포리자·헤르손과 크름반도의 러시아 영토 인정, 우크라이나군의 전면 철수, 우크라이나의 중립화다. 협상이 아닌 항복 요구에 가깝다.
AP통신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올해 2월 이미 ‘미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6월을 종전 합의 시한으로 제시했다’고 공개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 일정에 맞춰 양측에 압박을 가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AP는 이어 “그러나 5월 이스탄불 직접 협상은 채 2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결렬됐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광범위한 영토 철수를 요구하는 조건을 고집한 탓이었다”고 짚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오늘 당장 무너질 것인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푸틴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전선에서는 결정적 돌파가 보이지 않고, 경제는 전쟁 비용에 잠식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은 러시아 후방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크렘린은 점점 더 높은 비용을 치르며 같은 전선을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4년 전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단기간에 굴복시키겠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2026년의 현실은 정반대다.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러시아가 언제 승리할지가 아니라, 러시아가 얼마나 오랫동안 현재의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느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개막일에 검은 연기로 뒤덮인 하늘은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답변이었는지도 모른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