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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美외교관 괴롭히는 ‘아바나증후군’ - 美정보당국, 아바나증후군 배후 '러시아 또는 중국'추정 - 베트남 가려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발목잡은 아바나증후군 - 17개 미 정보기관 정보역량 총동원 배후 실체 조사 시작
  • 기사등록 2021-08-27 13:57:56
  • 수정 2021-08-27 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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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 발목 잡은 의문의 '아바나 증후군']


지난 24일(현지시간) 동남아시아를 순방 중이던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싱가포르에서의 베트남 출발이 예고 없이 3시간 지연되자 그 원인이 원지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베트남 주재 미 대사관 측은 “하노이에서 ‘건강 관련 이례적 사건’(anomalous health incident) 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만 설명했다.


물론 부통령의 선임 고문인 시몬 샌더스는 이번 지연이 “부통령의 건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부연했지만, 부통령의 예고 없는 일정 지연의 이유로 ‘건강 관련 이례적 사건’이라는 용어를 쓴 것에 대해 CNN 등 현지 언론은 2016년 쿠바 주재 미 대사관 직원들에게서 나타난 ‘아바나 증후군’을 떠올렸다. 통상적으로 미국 정부가 사용한 ‘건강 관련 이례적 사건’이란 용어는 ‘아바나 증후군’을 지칭할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바나 증후군이 다시 미국 외교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아바나 증후군이란?]


아바나 증후군이란 지난 2016년 말 쿠바 주재 미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발병한 정체불명의 증상을 일컫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와의 국교 재개를 기념해 수도 아바나를 방문한 2016년 당시 아바나 주재 미 대사관 직원들이 두통과 이명을 호소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중에는. 머리가 터질 듯 아프거나 호흡곤란 때문에 실신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한결같은 증상은 “귀에서 매미 소리 같은 게 자꾸 들리고 지속적으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구토와 현기증 때문에 못 견디겠다”는 것이었다. 두통과 어지럼증·기억력 및 방향 감각 상실 등의 인지 장애에 시달린 이도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휴가에서 돌아온 한 직원이 냉장고 플러그가 뽑혀 있는 등 외부 침입 흔적을 발견했는데, 그 후 심한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심지어 뇌손상까지 입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를 치료하러 본국에서 급하게 의사가 파견되었는데 그마저도 시내 호텔에 투숙한 날 같은 증상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쿠바에서의 피해자는 금새 80여 명까지 늘었다.


바로 이러한 연유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증상을 쿠바의 수도 아바나라는 이름을 따 ‘아바나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미국은 이 사태로 말미암아 결국 외교 문제로 번지게 되었고 미국 주재 쿠바 외교관 15명이 추방됐다.


2019년 미국인 학자들은 감염된 외교관들의 뇌에서 비정상인 부분들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내놓았지만 쿠바는 이마저 일축했다.


[미 외교관들을 괴롭히는 아바나증후군]


그런데 이러한 아바나증후군은 줄기차게 미 외교관들을 따라 다니고 있다. 2018년엔 중국 광저우에서 미 대사관 직원과 가족 일부를 포함해 15명이 ‘아바나 증후군’을 겪었으며, 캐나다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전 세계에 배치된 미 외교관과 정보 요원들이 비슷한 증상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가장 최근에 일어난 지역은 독일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최소한 2명 이상의 주독 미국 외교관들이 구토와 두통, 불면 등을 동반한 '아바나 증후군'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이 가운데 한 명은 업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주재지에서 이 같은 증상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WSJ은 전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독일 이외 유럽 지역에서도 유사한 증상자가 발견됐다고 전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증상이 나타난 사람들은 정보 기관 소속이거나 가스 수출 및 사이버 안보 등 러시아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외교관들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특히 “대부분 피해자들이 거주지를 이전한 직후 아바나 증후군에 걸린 것으로 확인돼 이사 과정에서 목표가 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WSJ은 전했다.


오스트리아에서의 아바나증후군 사건 역시 지난 7월 17일(현지시간) 발생했는데 오스트리아 당국은 "빈에 파견된 외교관들과 그들 가족의 안전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아바나 증후군을 겪은 미 공무원과 가족이 약 200명으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100명 정도는 CIA 요원과 가족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워싱턴DC의 국가안보회의 당국자와 백악관 직원 등 미 본토에서도 이런 사건이 터져 미 정보기관들이 발칵 뒤집혔다. 당시 잡지 GQ는 “2019년과 지난해 11월 미 백악관 남쪽 정원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속 인사가 자신의 차로 이동하는 중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의식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백악관 가까운 곳에서 발생해 더욱 큰 충격을 안겼다.


2019년에도 NSC 소속 고위급 인사가 워싱턴DC 근교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도중 신원미상의 한 남성과 마주친 뒤 비슷한 증상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을 보도한 월간지 GQ는 “이 인물은 산책길에 주차된 승합차를 지나쳤는데, 한 남성이 해당 승합차에서 내려 그녀 곁을 지나간 뒤 갑자기 자신의 개가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했고, 이어 자신도 날카로운 소음이 들림과 동시에 극심한 두통을 겪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러한 아바나증후군이 베트남에서도 재연된 것이다. 이날 해리스 부통령의 출발 지연과 관련해 NBC 방송은 실제 지난 21일경 베트남 하노이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최소 2명의 외교관이 아바나 증후군 의심 증상을 호소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미 고위 당국자는 “베트남에서 ‘소리’ 등과 같은 아바나 증후군 증상이 보고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며 “현재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중인 대사관 직원 중 일부가 거주지에서 음파와 관련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면서 안전을 위해 대피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비슷한 일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지만 확인된 건 없었다”고 했다.


NBC는 “하노이 주재 미 대사관 측은 해리스 부통령이 베트남으로 출발하기 불과 몇 시간 전 이 사실을 보고했고, 순방팀은 이에 따른 조치로 출발을 지연시킨 것”이라고 전했다.


[아바나증후군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신기한 것은 피해자 대부분은 거주지를 옮긴 직후 이 증세를 겪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침입에 의해 아바나증후군을 발생시키는 뭔가의 작동기재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미 국립과학공학의학원(NASEM)은 지난해 12월 19명의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 연구한 결과,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극초단파를 포함한 고주파 에너지가 이 기이한 질병의 가장 가능성이 있는 원인일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ASEM의 전문가위원회는 화학적 노출이나 전염병 등 다른 원인을 고려했지만 그럴 것 같지 않다며 피해자의 증상이 고주파 에너지에 의한 공격과 좀 더 부합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NYT는 "이번 보고서는 신중하고 과학적인 언어로 표현됐지만 이 사건이 악의적 공격의 결과라는 강한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미 국립과학아카데미(NAS)도 “이같은 의문의 공격으로 발생한 뇌 손상은 어떠한 지향성 에너지 장치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으며, 중앙정보국(CIA)과 국무부에서도 비슷한 의혹을 가지고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극초단파는 사람의 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측두엽으로 파고들어 뇌 신경을 손상시킬 수 있다. 그래서 전장이나 첩보 현장에서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런 증상은 별실이나 벽 뒤에 있을 때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CNN은 "벽은 뚫지 않지만, 창문은 뚫을 수 있는 물리적인 힘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누가 이런 짓을 하는가? 美 역량 총동원해 조사진행]


문제는 이러한 아바나증후군이 워싱턴DC 등 미 본토에서도 발생하자 미국 정보기관들이 최근 2~3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의문의 피습 사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일단 미국 정부는 과학자들과 정보기관들의 정보와 판단을 근거로 해당 사건이 극초단파 공격 혹은 지향성 에너지 무기와 연관돼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미 의회도 지난 5월 1일 이날 상하원 군사위원회가 합동으로 청문회를 열고 국방부 관계자 2명으로부터 같은 유형의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이 청문회에서 제니퍼 월시 국방부 정책 책임자와 그리핀 데커 미 국방부 신흥 위협팀 팀장은 “세계 각지에서 지향성 에너지 무기 공격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정치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이어 얼마 전 유럽에서도 같은 사건에 대한 브리핑이 실시됐으며 유럽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미군을 겨냥해 비슷한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가장 많은 의심을 받는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일단 미국 언론들은 러시아를 제1의 배후로 꼽으며 “1970~1980년대 모스크바의 미 대사관이 극초단파에 공격당한 적이 있고, 6~7년 전엔 러시아가 사람의 뇌를 노린 극초단파를 이용한 최신 ‘음파 무기’를 개발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월간지 GQ는 “중국 또한 아바나증후군의 배후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비밀리에 개발한 전자파 기술이라는 설도 나온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아바나증후군 공격이 해리스 부통령과 같은 미 행정부 최고위층에게까지 ‘영향권’ 내에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미 정부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미 국가정보국장실(ODNI), CIA(중앙정보국) 등 17개 미 정보기관은 아바나 증후군이 미 외교관 및 정보 요원들을 겨냥한 계획적이고 지능적인 공격에 따른 것으로 보고 1차적으로 러시아 첩보 조직인 정찰총국(GRU)이 배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합동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사건 대응을 위해 구성된 태스크포스에는 각 정보기관의 전문가와 정보 분석원, 의료 전문가 등이 포함돼 활동 중이다. 이번에 새롭게 태스크포스(TF)를 맡게 된 CIA 요원은 10여년을 정보 분석 업무를 수행하면서 2001년 9·11 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 추적에도 경험이 있다고 WSJ가 전했다.


CIA의 한 전직 요원은 "CIA가 초기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서툴렀다"라며 "그러나 번스 국장이 취임하고 나서 최고 요원을 투입하는 등 전력을 기울이면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WSJ에 말했다.


윌리엄 번스 CIA 국장도 이 사안과 관련해 매일 브리핑을 받는 등 조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미 정보 당국은 직접적인 증거를 입수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WSJ은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도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터’라는 외교 현장. 첩보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이 지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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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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