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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11 10: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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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수돗물 그대로 마시는 비율은 5.4% 불과… OECD 국가들은 평균 50% 넘어
-한국의 수돗물 원수 수질은 UN 122개국 중 8위… 미국이나 호주보다도 물의 품질 우수
-신뢰의 부족으로 우리는 막대한 비용 지불중… 선진국 진입 미뤄진 채 ‘문턱’에서 맴돌아


▲ 한국의 수돗물 품질은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한국인들은 수돗물을 안 마신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비율은 5.4%에 불과하다고 한다. 수돗물이 비위생적이라는, 사회에 만연한 편견 때문이다.


해외의 선진국 시민들은 대개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 우리나라처럼 가정집에 고가의 정수기를 두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가정용으로 생수를 사는 경우도 적다. 식당에서도 물을 달라고 하면 대개 수돗물(Tap water)을 제공한다.

 

OECD 국가들이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비율은 평균 50%가 넘는다. 미국이 56%, 영국은 70%다. 옆 동네 일본도 47%나 된다. 수돗물을 바로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나라처럼 커다란 기계식 정수기를 설치하거나, 엄청난 양의 생수통을 구비해 마시지는 않는다. 대개 수도꼭지에 간단한 필터를 부착하거나, 정수 기능이 있는 물통에 수돗물을 따라뒀다가 마시거나, 아니면 끓여먹는 식이다.

 

유독 한국인들이 수돗물을 불신하는 이유가 뭘까? 가까운 중국처럼 수돗물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의 수돗물 품질은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원수 수질은 UN 국가별 수질지수에서 122개국 중 8위를 차지했다. 미국이나 호주보다도 좋은 수준이다. 수돗물 정수장은 세계에서 손꼽는 엄격한 수질관리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 수도협회의 정수장 평가에서 최고등급 인증을 받았다. 세계보건기구가 수돗물검사 권장 항목으로 163개를 제시하는데, 한국의 지자체는 대부분 200개 이상의 항목을 검사하고 있다. 미국은 110개 항목, 일본은 121개 항목을 검사한다.

 

낡은 수도관이나 오염된 물탱크 등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기우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급수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고, 오래된 아파트나 주택 등을 선정해 낡은 수도관 교체작업을 하고 있다. 수돗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 각 지자체에서는 무료로 ‘우리집 수도꼭지 수질검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극소수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경우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그대로 마셔도 건강에 아무 지장이 없다.

 

이렇게 세계최고 수준의 수돗물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해외에서는 찾아보기도 힘든 가정용 정수기의 보급률이 60%에 달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막연한 불신과 편견 때문이다. 막대한 금액을 들여가며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듣지 않는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정치철학과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저서 에서 한 나라의 경쟁력과 신뢰의 상관관계에 관해 설명했다. 한 나라의 경쟁력은 그 나라가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사회구성원 간의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상호간의 신뢰가 낮은 국가는 그만큼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신뢰가 높은 국가는 선진국이 된다고 역설했다.

 

수돗물 음용 비율은 한국의 신뢰 수준을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척도이다. 국민들은 수돗물을, 상수도 업체를, 지자체를,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수돗물이 안전하다고 열심히 홍보를 하고, 가정마다 검사까지 해주고 있지만, 가정용 정수기 보급률이나, 생수 소비율은 상승곡선을 그린다. 수돗물 음용율을 현재보다 5% 포인트만 높여도, 연간 2,300억 원의 가계비용이 절감된다고 한다. 경제 효과, 환경 효과, 사회적 편익도 있다. 수돗물에 대한 ‘신뢰’. 이 무형의 자산이 없어서 가계와 국가 차원에서 거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수돗물과 같은 예는 얼마든지 있다. 쓰레기통 부족 현상도 사회적 신뢰가 낮아 발생하는 문제다. 공공장소에 쓰레기통을 설치할 경우, 가정용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주민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지자체는 공공 쓰레기통을 설치하지 않는다. 있는 쓰레기통도 없애는 상황이라고 한다. 지자체가 주민들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다. 이러니 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버려진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사회적 손실이 발생한다.

 

조용하다 싶으면 떠도는 괴담이나 음모론도 근본적으로는 ‘신뢰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다. 괴담, 음모론, 소동이 일면 너도나도 집단적인 패닉에 빠져들고 우리는 그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2008년 광우병 소동을 떠올려보라. 당시 정부 차원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검역 절차와 더불어 안전성을 검증하는 과학적 자료까지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77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정부와 전문가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러한 신뢰의 부족은, 우리 사회로 하여금 개개인 차원의, 또는 군중 차원의 근거없는 공포와 광기를 우선시하게 했다. 그렇게 무려 1조 9,228억 원이라는 사회적 손실이 발생했다. 그리고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간 우리 사회는 크게 발전한 바 없이, ‘신뢰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비슷한 유형의 소동을 반복적으로 겪어왔다.

 

대한민국이 진정 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후쿠야마 교수가 지적한대로, 우리는 이 신뢰의 부족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고, 그로 인해 선진국으로 진입이 계속 미뤄진 채 그 문턱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이 신뢰라는 자산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정치인들의 말부터 시작해서, 문화, 교육, 시민의식에 이르기까지. 개선해나가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경제발전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오고, 이제 그 성장 속도가 더뎌질대로 더뎌진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우리가 ‘신뢰’라는 자산에 대해 고민할 때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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