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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3-16 13:36:08
  • 수정 2019-03-16 13: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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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과 양반들, 인민 착취할 수 있는 내부 권력만 쥔다면 어떤 외국 세력과도 협력
-주사파 ‘우리민족끼리’ 강조. 남북 인민들의 삶과 체제 차이 무시. 북의 보호국 만들려나
-현대판 친일파인 주사파들 연구하고 기억공간에 저장해야. ‘빨갱이인명사전’ 제작 필요

[대한제국의 망국과 친일파의 역할]


900여 차례 침략을 받아 굴복하기도 하고 물리치기도 한 우리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장면으로 꼽자면 구한말부터 일제에 의한 병합에 이르는 시기일 것이다.


이씨조선 말기, 국가 권력을 쥔 왕실과 기득권 양반계층은 나라가 망하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인민들을 착취할 수 있는 내부적 권력만 쥘 수 있다면 어떤 외국 세력과도 협력할 태세였다.


“황제와 대신들이 외세에 의존하여 국가를 보전하려는 고식적인 길을 취하고 있을 때, 정부의 무능한 시책을 비판하고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감연히 싸운 것은 일반 국민이었다. … 그러한 여러 정치단체들의 시초를 이루고 또 활동이 가장 맹렬하였던 것이 독립협회였다.” (이기백, <한국사신론> 제14장 제1절, 제2절)


독립협회는 창립하자마자(1896) 먼저 중국으로부터 독립한다는 의미에서 청의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운다. 이후 다양한 사회운동 정치운동을 전개하여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모은다.


그 운동이 절정에 달하던 1898년 10월 종로광장에서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를 개최하여 고종에게 헌의6조(獻議6條)를 건의한다. 그 제6조에 ‘장정(章程)을 실천할 것’이라고 하여 입헌정치와 법치행정을 요구하였다. 독립협회는 우리나라가 위기에서 주권을 지키려면 입헌군주국 정도로 개혁해야 한다고 고종에게 건의한 것이다.


“정부는 독립협회가 황제 대신 대통령을 옹립하여 공화정치를 하려고 한다 하여 독립협회 해산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상재 등 17명의 중심인물을 체포하였다. 이에 독립협회 회원들은 밤낮을 이어 만민공동회를 열고 피검자의 석방운동을 일으켜 그 기세가 험악하였다. 이에 정부는 황국협회(皇國協會)로 하여금 보부상 무리를 끌어다가 시위 군중에게 테러를 감행케 하였다.” (이기백, <한국사신론> 제14장 제1절, 제2절)


즉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여가고 나라에 어떤 위협이 닥치든, 고종과 권력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을 조금도 내려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군주와 권력자의 ‘정치적 부패’가 극에 달한 것이다.


일본은 착실히 준비하였다.


먼저 청일전쟁으로 청을 물리치고(1894), 러일전쟁(1904) 마저 승리한 후,


“러시아 미국 영국 등 여러 나라들로부터 한국에 있어서의 특수이익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려 하였다. 이 목적을 위하여 일본은 송병준, 이용구 등으로 하여금 일진회(一進會)라는 친일단체를 조직케 하여 보호조약(즉 을사조약)의 필요를 선전케 하였다. 그것은 보호조약이 일본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기백, <한국사신론> 제14장 제1절, 제2절)


을사조약의 주요 내용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인 통감이 모든 내정을 관장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후 헤이그 밀사 사건(1907)이 벌어지자 일본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丁未7條約)을 맺게 하여 통감이 사실상 내정을 통할하게 만든다.


“한일신협약이 맺어진 직후(1907, 8월) 일본은 드디어 얼마 남지 않은 한국의 군대를 아주 해산하여 버렸다. 당시 서울에는 시위보병(侍衛步兵) 2개 연대 약 3,600명, 시위기병, 포병, 치중병, 합하여 약 400명, 지방에 진위보병(鎭衛步兵) 8개 연대 약 4,800명, 합하여 겨우 8,800명의 군대가 있었다.” (이기백, <한국사신론> 제14장 제1절, 제2절)


마침내 일본은 오래전부터 진행하던 한국 병합을 실행한다. 융희 4년(1910) 5월에 일본 육군대신 테라우치(寺內正毅)를 새 통감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부임 즉시 황성신문(皇城新聞), 대한민보(大韓民報),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등 언론기관을 정간시켜 국민의 눈을 가리도록 하였다. 그런 뒤에 총리 이완용(李完用)과 더불어 병합 안을 꾸미어 8월 22일에 드디어 조약에 조인하였다.” “조약안을 꾸미는 데 문제된 것은 황족(皇族)과 매국분자들의 신분보장에 관한 것 뿐 이었다.”


“조약의 서문에는 양국의 상호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기 위하여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한국의 우방이 아니라 적국이었다. 또 일본은 한국인을 희생시키고 일본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한국을 병합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한국 병합은 장차 일본으로 하여금 중국을 침략하는 기지를 제공케 하였고, 때문에 동양의 평화는 더욱 교란되었다.” (이기백, <한국사신론> 제14장 제1절, 제2절)


일제의 침략에 대한 반항으로 ‘왕실의 반항’과 ‘양반출신 관료들의 반항’이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조직적인 저항은 조선이 병합된 이후에야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으로 터져 나왔을 뿐, 구한말에는 크지 않았다. 그만큼 이씨조선 지배세력들의 권력욕과 국민들에 대한 가렴주구가 자심하였던 것이다.


“일본의 강압에 반대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국민과 힘을 뭉쳐 반대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종이나 정부는 일본인의 위협보다 국민의 비난을 오히려 더 두려워할 지경이었다. … 이미 친일적인 매국분자가 입각하여 일본 통감부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는 현실에서 국왕이나 몇 개인의 개별적 반항으로써 침략에 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기백, <한국사신론> 제14장 제1절, 제2절)


이씨조선 및 대한제국 왕들과 지배계층인 양반관료들은 나라야 망하든 말든 피지배 계층인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짤 권력을 보장받기 위해 어떤 외국세력과도 협력하는 길을 택하였다. 한마디로 영혼이 썩은 쓰레기들이었다. 그래서 피지배 계층인 ‘국민들과 함께’ 외세에 대항하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고, 따라서 신분제 폐지와 입헌군주정을 주장한 독립협회를 용납할 수 없었다.


▲ 대한제국 황실과 대신들의 초상. 오른쪽부터 이완용 이병무 임선준 고영희 순종 고조 송병준 황태자 김윤식 이재곤 조중응.[제3의 길]


오늘날, 나라를 말아먹은 이런 세력의 한 축인 고종비 민씨를 명성황후라고 숭상하려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칭 민주화 운동했다고 주장하는 걸 보노라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봉건전제왕조인 이씨조선과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은 전혀 관련이 없다.


친일파란 적국인 일본이 나라의 주권을 집어삼길 때 국민들의 정신을 현혹시켜 저항 없이 병합을 진행하도록 도움 주는 역할을 한 세력을 말한다. 이들은 조선의 병합 과정 곳곳에서 일본의 강요가 아니라 조선인의 뜻에 따라 병합이 진행된 것처럼 국민들의 의지를 오도(誤導)하는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요컨대 친일파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자유를 적국에게 넘긴 세력을 뜻한다.


[주사파는 현대판 친일파다]


주사파는 대한민국의 적인 북한의 전제자(despot) 백두혈통 김정은 일당을 보위하기 위한 도당이다. 이들 도당은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나 전제정 국가에서는 조직의 결성도 유지도 불가능하겠지만, 공화정 국가가 보장하는 자유권의 보호를 받아 조직을 유지하면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적국에 사실상 넘기고 국민들을 전체주의 전제정 정권에 예속시키려는 집단이다. 친일파가 조선을 일본에 넘긴 것처럼, 주사파는 대한민국을 북한 정권의 보호국으로 만들려고 한다.


주사파는 ‘우리민족끼리’가 중요한 것이지, 남북 인민들의 삶의 수준 차이를 만든 배경이 되는 정치경제 체제의 차이는 별 게 아니라고, 국민의 판단을 혼동시킨다. 한국전쟁을 일으켜 민족적 비극을 일으킨 민족 반역집단인 북한 정권을 더 민족적인 정권이라고 포장하여 선동한다. 국민들의 정신을 혼란케 하여 공화주의(내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치경제 체제가 갖는 가치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도록 선동한다.


이를 위해 주사파는 먼저 대한민국 군대의 정신력과 전력을 약화시키려 한다.


적국과 협의하여 동맹국과 훈련도 못하게 하고, 적군에 대한 정찰도 못하게 한다. 인권이니 뭐니 하면서 군대의 기강을 흩트리고, 전력 증강도 못하게 한다. 특정 성향의 대법원장을 임명하여 ‘양심적 병역거부’를 합헌이라 판결하여 국민개병제의 원칙에 구멍을 내었다.


방송 신문사 경영진을 바꾸어 특정 시각으로 보도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지금 대한민국 방송 신문사들의 북한 체제와 정권 및 북한 핵 관련 보도 태도는 외국 언론사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게 변하여 국민들의 눈을 가린다. 국민들은 자구책으로 유튜브 개인 방송이나 외신들을 통해 북한 관련 정보를 얻는 처지가 되었다.


주사파 대신들과 정치인들이 대거 벼슬을 차지한다.


북한의 핵 개발로 인한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을 ‘자해’라 하고, 북한 핵미사일을 막는 사드를 배치하자고 하니 ‘나라가 망한다’고 한 사람이 대신으로 등장한다. 특정 정파 정치인 모임에서 동맹국의 주요 관리를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등장한다.


마치 사기꾼들의 담화처럼, 듣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애매하게 포장한 정치언어들이 난무한다. 평화를 가장 많이 언급하는데, 정작 그들이 말하는 평화가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그 평화가 달성되는지 구체적 내용은 제시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이 북한 핵 위협에 굴복하여 마치 ‘빵셔틀’처럼 북한 정권에게 통치자금을 갖다 바치는 것이 평화인지 물어보시라. 또 주사파들은 통일도 많이 언급하는데,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인 어떤 체제로 통일하자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할 때 작성한 조약 서문에 “양국의 상호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기 위하여” 라는 추상적 표현 문구를 사용한 것과 유사한 언사들이다.


오래 전에 공자(孔子)는 정치의 시작은 ‘명분을 바로잡는 것’(正名)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제자 자로(子路)가 선생님이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핀잔하자, 공자는 이어서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사리에 맞지 않고, 말이 사리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명부정즉언불순, 언불순즉사불성) … 〕” 라고 하면서 자로의 짧은 소견을 나무란다. (공자, <論語논어> 자로 편)


명분이 불분명하고 말을 끊임없이 바꾸는 자들은 늘 국민을 속여 자신들의 권력이나 사익을 챙기는 세력들이다. 과거 친일파들이 교묘한 말을 늘어놓아 국민들을 현혹시켰듯이, 현대판 친일파인 주사파들도 늘 확실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 말을 교묘하게 바꾼다. 지금이라도 주사파들에게 ‘평화’가 뭔지, 어떤 체제로 ‘통일’하겠다는 것인지 물어보면 분명 어물거릴 것이다. 주사파들이란 바로 공자가 가장 싫어한 사이비(似而非) 집단, 즉 ‘비슷하지만 아닌’ 도당들이다.


친일파들과 주사파들은 모두 ‘양국의 번영’ 과 ‘평화’를 이유로 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자유를 적국에 넘기자고 한다. 친일파들이 조선을 일본에 넘겨 결과적으로 동양의 평화를 깨뜨리는 배신행위를 하였듯이, 주사파가 대한민국을 적 정권의 수하에 넘기려 하는 짓도 남북한과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깨는 민족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이런 점에서, 주사파는 현대판 친일파다.


[현대판 ‘친일인명사전’, 즉 “빨갱이인명사전”]


80년대 이른바 ‘민주화 운동’ 이후 우리나라에는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등 온갖 이름의 자칭 역사가 단체들이 등장하여 친일 연구를 하였다. 그 성과물로 나온 것이 이른바 <친일인명사전>이다.


몇 년 전에 교원단체 등과 교육감들이 나서서 우리 후배 세대들이 민족의 정기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이 '친일인명사전'을 일선 학교에 널리 보급하는 사업을 하였고, 방송 신문사들이 적극 취재 및 홍보하였으며, 상당히 많이 보급한 것으로 안다.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데 누가 감히 반대하겠는가?


나는 그와 꼭 같은 열정으로 주사파 연구자들이 대거 나오기를 기대한다. 우선 현대판 친일파인 주사파들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기억 공간’에 저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연구의 성과가 쌓이면 주사파들의 인명사전, 즉 빨갱이인명사전을 제작하여 우리 후배 세대들이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각 교육청을 통해 일선 학교에 널리 보급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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