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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1-22 16:54:23
  • 수정 2018-01-22 17: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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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진보주의자 남성은 군대에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거나 나쁜 것만 배웠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물질을 운송하는 일이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진보는 생활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군대와 생활인들을 혐오하면서 본인들의 자기정당화

내가 아는 대부분의 진보주의자 남성은 군대에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거나 나쁜 것만 배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

사실은 약간 늦게 군대를 간 나도 그랬다.

일년 고참, 그러니까 ‘아버지 군번’이 이등병 시절의 내게 ‘여기서도 배울 게 많다’고 했을 때 나는 ‘저는 약간 군대에 늦게 왔고, 그래서 여기서 배울 것들은 사회생활에서 다 배웠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가 개갈굼을 먹었다(아, 정말 개념없는 이등병…).

이등병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군대라야 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나는 군생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 대학 졸업장이 있었다면 군대에 말뚝 박지 않았을까.


이런 얘기를 진보판에서 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 그들은 군대에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거나 나쁜 것만 배웠다는 결론만을 도출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나의 특수성도 있다. 내 아버지는 내가 보통의 남성적 세계에선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후려쳤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을 것이고, 그의 선의였을 것이다. 그 자신이 고난을 겪기도 했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엄청난 괴로움을 거쳐 가긴 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 세계에서 잘 지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 졸업장이 있었다면 거기에서 말뚝 박지 않았을까 고민했을 정도였다. 나는 군수과 계원이었고, 기껏해야 담론이나 제공하는 일을 하던 내가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물질을 운송하는 일을 하니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내가 진보주의자들에게 섞여서 살던 시절, 나는 ‘아니 뭐 여러분에겐 끔찍했겠지만 세상엔 군대 생활에서 좋은 경험을 한 이들도 있는게 아니겠습니까…’라는 식으로 눙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경험에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을 본다.

‘나는 군대에서 나쁜 것들만 배웠다’라는 진술도 마찬가지다. 이 경험 역시 매우 소중한 것이다. 콕 집어 예를 하나 들자면 나쁜 사람을 함부로 욕하는 그들의 알량한 양심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쉽게 ‘나쁜 것들’에 투항할 수 있는지를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을 함부로 욕할 게 아니라 그 ‘나쁜 것들’이 오지 않을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갈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사실 그렇게까지 투항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 자신의 선량함에 대해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문제는 나는 거기에서도 배운 게 있다고 하는데, ‘빻은 행위’를 하는 자신을 보며 모멸스러웠다는 그들은 ‘빻은 행위’를 하는 생활인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군대와 생활인들을 혐오하면서 본인들의 자기정당화를 하는 듯 했다.

그래가지고 생활인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들의 무능함과 나의 그럭저럭한 적응력을 구별시켜줬다는 점에서라도 내 군대 생활을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제3의 길' 전재] 한윤형 hanyhy01@gmail.com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 문제, 미디어 문제, 그리고 현실 정치에 관한 글을 주로 써왔다. 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스>에서 2012년부터 3년 간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데이터앤리서치 부소장이다. 주요 저서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3), 《미디어 시민의 탄생》(201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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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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