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하게 막내린 반세기 시리아 철권통치, 도망친 아사드]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킴에 따라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던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이 결국 비밀리에 도망쳤다. 이로써 반세기가 넘는 알 아사드 일가의 철권 통치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특히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러시아와 이란의 전략적 실패라는 점에서 향후 중동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영국의 BBC는 8일(현지시간) “시리아 반군이 파죽지세로 주요 도시를 점령하더니 이날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장악했다”면서 “그동안 철권통치를 해온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도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도 “이슬람 무장세력 하야트타흐리트알샴(HTS)을 주축으로 한 시리아 반군은 ‘다마스쿠스가 해방됐다’고 선언했다”며 “이들은 다마스쿠스를 장악하고 공공기관을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알 아사드 정권의 모하메드 알잘리 총리도 “'폭군' 알 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를 떠났다”면서 “국민이 선택한 모든 지도부와 '협력'할 준비가 됐다”고 발표했다.
dpa통신도 군 관계자를 인용해 “시리아 정부군도 알 아사드 대통령의 통치가 끝났으며, 군 지휘부가 정부군 병사들에게 더는 복무할 필요가 없음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에서 우격다짐으로 정권을 장악했던 아사드 독재정권이 13년 만에 반군에 무너지게 됐다.
이에 대해 HTS 지도자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는 텔레그램 성명에서 “다마스쿠스 시내 공공기관들은 공식적으로 이양이 이뤄질 때까지 전 총리의 감독 아래 놓일 것”이라고 말했다.
54년에 걸친 아사드 가문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면서 수도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시리아 전역에서는 환호와 함께 아사드 일가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러시아로 도망친 아사드 대통령 가족]
한편, 아사드 대통령은 당초 7일 오후 8시에 대국민 연설을 한다고 예고했으나 실제로 하지는 않았으며,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8일 이른 시간에 다마스쿠스를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드는 이미 지난 며칠간 측근들이 도주해버려 고립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군과 협조하고 있는 시리아 총리도 “아사드 대통령과는 전날인 7일 마지막으로 연락을 취했으며 현재 위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일 시리아 보안 당국과 아랍 당국자들을 인용해 “아사드의 영국 출신 아내인 아스마 알 아사드가 지난주 세 자녀와 함께 러시아로 모두 도망쳤다”면서 “아사드의 두 처남도 시리아를 떠나 아랍에미리트로 도피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보아 아사드 역시 러시아로 줄행랑을 쳤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아사드를 지지하는 TV 뉴스 채널은 6일, “아사드가 이란으로 도피했다”고 보도했지만 나중에 이 보도를 공식 부인했다. 이집트와 요르단 관리들은 아사드 대통령에게 시리아를 떠나 망명 정부를 구성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도 손절한 시리아 아사드]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그동안 아사드의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고비때마다 군사력으로 아사드 정권을 비호해 왔던 러시아가 결정적인 순간에 아사드를 보호해 주지 않고 아예 버렸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에 있는 중동연구소의 시리아 프로그램 책임자인 찰스 리스터는 “아사드가 2015년에도 푸틴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의지했을 때 군사력을 투사해 적극 지원해 주었지만 지금은 그의 미래가 암울해 보인다는 점에서 아사드의 구조신호를 외면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러시아는 그를 구할 능력도 없고, 심지어 구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주목할 점은 이란의 쇠퇴로 인한 아사드 정권 지원 불발이다. 이란 정권은 아사드 정권이 위기에 처하자 말로는 군대를 파견해 지원해 줄 듯 말을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으며, 날이 갈수록 아사드 정권의 회복 불가능성이 강해지자 이란 정부는 다마스쿠스에서 이란의 외교관들과 군 장교 등을 긴급히 대피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텔레그래프는 “이번 시리아 사태는 이란의 선택권과 힘의 역학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란은 이미 무기력한 국가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텔레그래프는 이어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이란의 미래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면서 “그동안 시리아는 헤즈볼라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육교 역할을 해 왔는데 반군이 시리아를 장악함으로써 레바논은 완전 고립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이란을 심하게 약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텔레그래프는 “이란은 시리아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시아파 부대라는 다른 대리인을 두고 있었지만 이들 세력마저 반군의 공격에 아무런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졌다”면서 “이라크에 있는 시아파 민병대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텔레그래프는 “결국 이번 시라이 반군의 아사드 정권 축출은 이란 정권에게도 엄청난 타격이 되었다”면서 “이란의 약화는 미국의 트럼프 2기로 하여금 중립화된 이란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유혹을 갖게 만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AFP통신은 7일, “이란의 대리세력은 헤즈볼라도 2000명의 병력을 시리아에 보내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헤즈볼라는 레바논 접경지인 시리아 쿠사이르로 2천명을 보내 해당 지역의 진지를 방어하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레바논 접경지인 시리아 서부 쿠사이르는 HTS가 주도하는 시리아 반군이 공세를 펼쳤던 홈스와 가깝다. 헤즈볼라가 시리아 정권을 통해 무기를 밀수하는 주요 경로로 지목돼 이스라엘이 종종 폭격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사드家 독재를 열흘만에 무너뜨린 시리아 반군 HTS]
이번에 시리아의 아사드 가문의 철권통치를 무너뜨린 반군의 주축 세력은 수장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가 이끄는 무장 조직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이다.
북서부 이들리브주를 주요 근거지로 삼고 있던 HTS는 지난 달 27일 근거지인 북서부에서부터 친튀르키예 무장세력과 합세해 대대적인 기습 공세를 시작한 뒤 시리아 제2의 도시인 알레포를 깜짝 장악한 데 이어 남쪽으로 빠르게 진격하며 불과 열흘여 만에 수도에서 정부군을 몰아내고 승리를 선언했다.
BBC는 “HTS는 2011년 창설된 알누스라 전선(자바트 알누스라)가 전신으로 창설 초기에는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저항보다는 과격한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이념을 설파하는 데 초점을 둔 단체였다”면서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그 혼란을 틈타 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단체들이 시리아 내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목적으로 알누스라 전선의 창설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BBC는 “이 단체의 지도자인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가 2016년 알카에다와 연계를 공식적으로 끊고 이름을 지금의 HTS로 바꾸면서 변신을 꾀했다”면서 “알졸라니는 이슬람주의와 민족주의를 결합한 온건적인 이념 노선과 아사드 정권에 저항해 시리아를 해방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다른 반군 분파를 규합했으며 아사드 정권에 저항하는 세력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BBC는 이어 “이후 HTS는 반군 장악 지역인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주에서 IS와 친(親)알카에다 세력을 몰아내고 지역 행정을 도맡으며 사실상 정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현재 HTS는 아사드 정권에 저항하는 반군 세력을 돕고 있는 튀르키예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HTS에게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이란 전쟁은 아사드 정권과 대항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후원자들이 자국의 전쟁 문제로 힘이 빠져 있는 바로 그 순간을 정부 전복의 시기로 잡은 것이다.
앞으로 HTS에게 남은 과제가 있다. 바로 서방진영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일단 HTS는 지하디스트로서의 정체성은 버렸지만, 설립자이자 지도자인 알졸라니는 HTS의 통치는 민주주의가 아닌 이슬람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HTS의 통치는 IS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근본주의적 이슬람교리를 따르는 통치는 아니며 기독교 등 다른 종교 집단에도 포용적인 통치를 펼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어 일단 서방 친화적인 자세를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HTS는 여성이 히잡 등으로 얼굴을 가릴 것을 요구하지 않고, 금연을 강요하지 않는 등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펴고 있다.
키포인트는 HTS에 대해 미국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의 문제다. 미국은 일단 HTS의 목표가 시리아의 민주화가 아닌 근본주의적 이슬람 국가 건설이라고 보고, HTS 지도부 역시 여전히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다며 HTS를 테러 조직 명단에 올린 상태다.
이에 대해 CNN은 알졸라니와의 최근 인터뷰를 통해 “그는 자신들에 '테러 단체' 꼬리표를 계속 붙이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목적은 아사드 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제도에 기반한 국가를 세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알졸라니는 그러면서 “아사드 정권을 몰아내고 나면 HTS는 언제든 해체될 수 있다”며 “HTS는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라 이 정권에 저항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다분히 서방 친화적인 자세를 강력하게 표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 입장에서도 HTS세력에 대해 배척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중동 정세를 안정화시키는데 오히려 HTS세력을 잘 포용하면 여러 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2기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