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러시아 파병 사실상 시인한 푸틴]
그동안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면서 오리발을 내밀던 러시아가 결국 이를 시인했다. 그것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마지 못해 인정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때 푸틴이 매우 당혹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25일, “푸틴 대통령이 브릭스 정상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군이 러시아군을 지원할 병력을 파견했다는 보도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북한과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푸틴의 이러한 발언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직전 러시아 외교부가 했던 것처럼 완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인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이 북한군 파병과 관련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인정한 것도 역시 처음이다.
하루 전 러시아 외무부의 마리야 자하로바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한국과 미국 등이 보도한 북한군 파병 사실에 대해 “북한의 무장병력 위치에 대한 질문은 평양으로 보내야 할 것”이라면서 “그러한 주장은 허위이며 과장”이라고 애써 강변했다.
눈여겨볼 것은 푸틴이 사실상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마지못해 인정했을 때의 상황이다. 푸틴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 미국 기자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증거로 회자되고 있는 위성 사진을 제시하며 이에 대한 푸틴의 견해를 물었다.
이에 대해 "위성사진은 진지한 것이고, 만약 사진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무엇인가를 반영한다는 것이 틀림없다"면서 러시아와 북한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비준 내용을 꺼내든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 기자가 위성사진이라는 증거를 들이대면서 푸틴에게 이에 대한 진실을 캐묻자 푸틴도 한숨을 푹 쉬면서 마지못해 시인하는 모습을 연출했고, 그 때 표정도 상당히 짜증이 섞여 있었다는 점이다.
푸틴은 또한 북한군의 러시아 배치가 군사적인 확전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도 "우크라이나 상황을 확대한 것은 러시아가 아니다"라며 정색하며 반박했다. 그러면서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쿠데타'(친러시아 대통령을 몰아낸 유로마이단 혁명)가 확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도 되지도 않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고, 그만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관한 답변이 궁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푸틴이 기자회견에 들어오기 전부터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방의 금융·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중국을 앞세워 서방 주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와 별도로 브릭스 자체 결제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다수의 참가국들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푸틴은 "우리는 SWIFT의 대안을 만든 적도 없고 만들 계획도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푸틴은 브릭스의 확장을 통해 서방세계가 러시아를 아무리 고립시키려 해도 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을 따르는 국가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브릭스의 대대적 확장을 통한 반서방블록의 결성을 꾀했지만, 이 역시 참가국들로부터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실제로 푸틴은 12개국의 브릭스 가입을 원했지만 푸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푸틴은 브릭스 회담 마지막까지도 몇 개국이 추인을 받았는지 공개하지도 않았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격한 반응 보이는 미국과 유럽]
그런데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가 북한군의 러시아 참전을 그렇게 숨기려 하고 끝내 시인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북한군의 개입이 가져올 후폭풍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이는 푸틴이나 김정은마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외교적 재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미국의 반응은 러시아와 북한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미국의소리(VOA)는 “하원 정보위원장인 마이크 터너 의원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해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이 미국이 정한 금지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터너 위원장은 특히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을 침범할 경우 미국은 북한군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행동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면서 “북한군이 러시아 영토에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면 우크라이나가 미국 무기를 사용해 대응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공화당 소속이면서 하원의 정보위원장이 미군의 참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백악관의 존 커비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터너 의원의 이 같은 성명과 관련해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가담할 경우, 우크라이나 군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국방부의 사브리나 싱 부대변인도 24일(현지시간) 러시에 파병된 북한군이 쿠르스크 등의 전장에 배치됐다는 우크라이나군의 주장에 대해 “만약 북한이 전투에 참여한다면 그들은 공동 교전국이 되며 그것은 매우 심각한 이슈”라며 “북한에서 온 군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전투 작전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인도·태평양에도 불안정을 초래하며 유럽이나 한국을 비롯한 인도·태평양의 동맹국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북한이 공동 교전국이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이 단순한 병력지원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자체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전 당사국이 된다는 것이고, 후일 이로인한 전쟁의 피해 보상이라든지 전쟁후 정산에 북한도 당사자가 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를 하면서 어떠한 배상금 책임을 졌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유럽연합(EU)도 이날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 명의 성명을 통해 “DPRK(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유럽과 세계 평화·안보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독단적 적대행위”라며 “DPRK(북한)가 러시아의 불법 침략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병력을 보낸다는 보도에 심히 우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U는 앞서 북한의 파병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추가 제재 등을 고려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맞파병론도 나온다. 이미 나토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한 상황이라 이에 대해 후속조치를 준비중이다. 분명한 것은 북한군이 러시아 전력에 가세해 우크라이나 전황을 바꾸거나 전쟁 장기화에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면 국제사회의 대응 수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빅터 차 교수는 CSIS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북한군 파병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라며 “이는 결국 북한의 고립 심화, 한국-나토 간 관계 강화, 한국의 대우크라이나 지원 확대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차원에서 유럽에서는 맞파병론이 나오는 것이다. 당장 우크라이나가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서방산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문제도 허용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이에 대해 커비 보좌관은 “아직 북한군 파병의 정확한 성격을 모른다”며 “대통령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고 답했는데, 원론적으로 북한군의 실제 역할에 따라 판단을 달리할 여지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11월 5일의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겠는가하는 추정도 나온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난처한 중국,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진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4일,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중국을 곤경에 빠뜨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SCMP는 이어 “북한의 이러한 행동은 중국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서 “북한과 러시아의 금지된 장난은 북한-중국-러시아 간의 권위주의적 연대에 대한 국제적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반중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인민대학의 스인홍 교수도 SCMP에 “베이징이 러시아-북한 군사 동맹에 대해 상당히 불안하고 잠재적으로 화가 난 것은 분명하다”면서 “중국이 이들 문제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동맹국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고 그들을 짜증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음에도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중국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이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군대를 파병한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관련 상황을 알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사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지금 중국의 현실적인 입장임을 보여준 것이다.
NYT도 24일, "이달 초만 해도 중국과 북한은 수교 75주년을 기념하며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를 재확인했다"며 "하지만 북한의 러시아 파병 결정은 그 유대를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시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이어 북한이 그동안 핵무기 프로그램 고수와 주기적인 한국 위협으로 중국을 실망시켜 온 점을 언급하며 "북한이 이번 파병으로 유럽 내 전쟁을 고조시키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러시아와 중국이 이끄는 반서방 세력과 대립하는 쪽으로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북한의 이번 파병에 대한 대가로 북·러 군사 기술 교환이 이뤄질 수 있단 점도 중국 지도부가 우려하고 있는 바다.
NYT는 이에 대해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의 발언을 인용, "중국이 러시아를 도우려는 북한의 노력을 어떻게 억제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면서 “중국이 마비와 무능 사이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중국의 입장은 한마디로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가 앞으로의 동북아 정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관심거리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