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북 노동자 고용 기업에 자국인 채용 요구]
북중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북한 노동자의 비자 연장을 거부했던 중국이 이젠 구체적으로 북한 인력을 고용하는 중국 기업들에게 고임금 기술자나 관리직에는 자국인 채용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중간 교역이 급감하는 등 심각한 북중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간 외교적인 냉기류가 한반도의 안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5일(현지시간) “중국 동강에서 수산물가공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중국 국적) 조선족 기업인은 5천위안(95만원) 이상 임금을 받는 일자리에는 중국 사람을 고용하라는 게 (중국) 노동청의 요구”라면서 “북조선인력 고용서류를 심사하고 허가하는 중국 성 노동청에서 기술직책과 품질 감독 등 임금이 높은 일자리에 중국 현지인을 고용하라고 말한 것은 이례적”이라 보도했다.
RFA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북한 측의 요구로 동강 일대 수산물가공회사에서 일하는 북조선 노동자들의 월급이 2,300~2,500위안(43만 7천원~47만 5천원)에서 3,500위안(66만 5천원)으로 인상되면서 선착장에서 수산물을 받거나 기술과 품질감독 등 관리자의 월급도 3,500위안(66만 5천원)에서 5천위안(95만원) 이상으로 인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RFA는 이와 관련해 “한 수산물가공회사는 100명 정도의 북조선 인력을 고용했는데 월급이 높은 20명의 관리자가 북조선 간부들이었다”며 “이들 대신 중국 인력을 쓰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RFA는 그러면서 “북조선 인력을 고용하는 허가는 1년 단위로 노동청에서 받아야 하므로 지난해 허가 받은 회사도 재허가 신청서를 냈는데, 신청서 명단에 관리직은 전부 중국인으로 교체되면서 북조선 간부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RFA 중국 소식통은 “북조선 인력을 고용하는 중국 기업이 노동합동서(북한인력 고용 서류)를 노동청에 제출하고 허가 도장을 받을 때 5천위안(95만원)) 이상 월급을 받는 인력에는 중국인을 고용해야 허가 도장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단둥 일대에는 복장가공과 식품가공, 반도체조립과 하우스농사까지 북조선 인력을 고용하는 중국 기업이 많다”며 “100여 개 넘는 기업에서 기술자와 품질 감독 등 월급이 높은 관리자에는 중국 현지인을 채용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RFA에 따르면 “중국 사람도 일자리를 못 찾고 있는데 월급이 높은 직업에 북조선 인력을 고용하는 게 말이 되냐”며 “(중국 측이)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RFA의 소식통은 이어 “종일 수산물을 가공하는 힘든 노동에는 북조선 여성들이 일하고, 수산물가공을 제대로 하는지 감독하거나 최종 품질 감독, 납품 회계원 등 관리인력에 중국 인력을 고용하라는 것이냐”며 “북조선 간부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RFA의 소식통은 또한 “이 같은 조치는 북조선 측이 중국 기업에서 일하는 자국 노동자들의 월급 인상을 계속 요구하고 있어 이를 억제하려는 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완전히 틀어진 북중관계는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 지난 7월 9일, 중국 당국이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전원을 귀국시키라고 북한에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북한 당국은 파견 노동자들을 순차 귀국시키겠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중국은 북한 측의 제안을 무시하면서 비자가 만료되는 대로 전원 귀국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북한의 노동자 송출은 국제사회 제재로 외화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북한의 주요한 ‘돈줄’로 꼽히는 만큼 중국의 대규모 노동자 송환 요구는 북한에 상당한 압박이 되리라는 관측이다. 당장 북한 김정은의 돈줄이 차단당하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한편, 올해 초 발간된 유엔 대북제재전문가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러시아 등 40여 개국에서 10만 여명의 북한 노동자가 외화벌이노동에 동원되고 있다. 현재 중국 랴오닝성 일대에는 약 3만여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체류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렇게 중국에 파견된 북한의 노동자들을 통한 외화벌이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에 위배된다.
[갈데까지 간 북중관계, “中, 北에 강력 경고 메시지 보냈다!”]
미국의소리(VOA)도 한달여전인 지난 9월 3일, “중국 정부가 중국 여자 프로농구 리그에 진출한 북한 여자 농구 선수의 비자 발급 거부 및 귀국조치를 취했다”면서 “중국 당국은 이러한 보도에 대해 이례적으로 ‘대북 제재 이행’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국 당국이 농구선수 박진아의 추방 소식을 전하면서 구태여 ‘대북제재 위반’이라는 이유를 달았다는 점이다. 이는 북중관계가 사실상 갈 데까지 갔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달 전 북·중 간 이상기류 조짐을 공식 부인했던 사실을 무색하게 만든다.
우리 신문은 지난 7월 31일, “혈맹이라던 북중관계, 확실한 이상징후 포착, 당분간 회복 불가능!”이라는 제목의 정세분석(유튜브 2837회)을 통해 “피로 맺어진 관계, 곧 혈맹이라 부르는 북한과 중국간의 관계에 확실한 이상징후가 포착됐다”면서 “특히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김정은을 향한 시진핑 주석의 불만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까지 나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급감하는 북중간 무역, 식료품 최대 98% 줄였다]
그런데 북중관계가 파국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은 양국간 교역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해관총서(한국의 관세청)가 지난 9월 30일 밝힌 통계에 따르면 북한에 절실히 필요한 곡물과 농업 물자 수출이 지난해(1월~8월)에 6582만 달러였는데, 올해는 같은 기간동안 746만 달러로 지난해에 비해 겨우 11.3%에 불과했다. 무려 98.7%가 줄어든 것이다.
쌀 외에도 옥수수·질소비료·복합비료의 대북 수출 현황 역시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됐다. 같은 기간 질소비료 수출액은 1만7596달러(약 2300만원)로 전년 동기 158만 달러(약 21억원)보다 98.9%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옥수수는 97.7%, 복합비료는 81.5%로 모두 큰 폭으로 줄었다.
다만 북중 전체 무역 규모는 그렇게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북·중 무역 총액은 지난해 1~8월 14억 달러(약 1조8349억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 12억8938억 달러(약 1조6850억원)로 91.8% 수준을 유지했다. 이러한 무역동향은 한마디로 중국이 북한에 대해 단속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는 것에 대해 중국이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북중간 외교관계에도 이상기류]
사실 북한과 중국은 올해 수교 75주년을 맞아 ‘북중(조중) 우호의 해’로 선포했지만 현실은 정주년(5·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썰렁하다. 앞서 중국은 올해 4월 평양에서 열린 북중 우호의 해 개막식에 공식 서열 3위인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파견했고, 자오 위원장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우의를 과시했다. 이후 양국간에는 인적 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됐지만 북한이 러시아와의 관계가 끈끈해지면서 북중간 외교도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평양과 베이징에서 각각 열린 북중우호조약 63주년 기념식 등에선 양국 참석 인사의 급이 예년보다 낮아졌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금까지와 달리 우호조약 체결 및 양국 관계와 관련된 기사를 한 건도 싣지 않았다. 그야말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일 외에도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 2018년 설치된 김정은과 시진핑 주석의 발자국 기념물이 돌연 제거된 바 있었으며, 북한은 조선 중앙TV 등의 영상 송출을 지난 6월, 중국 위성에서 러시아 위성으로 돌연 교체됐다.
또한 지난 9월 8∼9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정권 수립 76주년 기념행사에 왕야쥔 주북 중국대사가 '휴가'를 이유로 불참했는데 이 역시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로 기록된다.
지난 9월 25일에도 동북아시아 6개국 81개 광역 지방정부 연합조직인 '동북아지역자치단체연합'(NEAR·사무총장 임병진 전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이 중국 동북 랴오닝성 선양에서 제14차 고위급 실무위원회를 개최했는데, 이 행사에도 북한은 불참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측이 북한을 일부러 초청하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어떤 이유가 되었건 북중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북중 관계, 자르려해도 못끊고, 다듬어도 더 헝클어져”]
이라한 북중관계에 대해 홍콩의 성도일보는 지난 9월 15일 '중국관찰'이란 기사에서 “북중 양국 관계는 중국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남당의 마지막 황제였던 이욱(李煜, 937~978)이 이별을 노래한 한시 ‘오야제(烏夜啼·까마귀 우는 밤)’에 나오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정리할수록 더 헝클어진다(剪不斷 理還亂, 전부단 리환란)’는 대목을 연상케 한다”고 설명했다.
성도일보는 이어 “북·중 사이엔 은혜와 원한이 교차했다”면서 “덩샤오핑(鄧小平)은 1991년 김일성에게 ‘중국과 북한은 형제다. 그렇다고 동맹은 아니다’라고 말한 적 있고,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은 은퇴 후 ‘작은 김(小金, 김정일), 이 사람은 무척 교활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성도일보는 그러면서도 “북·중은 서로 필요한 존재”라면서 “북한은 체제의 전복을 막기 위해 ‘오랜 형’을 공개적으로 반목할 수 없으며, 중국도 지정학적 이유로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성도일보는 마지막으로 “북·중은 어떤 모순도 공개할 수 없고, 겉으로는 전통 우호를 크게 말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며 “더구나 올해는 북·중 수교 75주년이자 북·중 친선의 해”라고 마무리했다.
이것이 북중관계의 실상이다.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해서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두 나라 사이는 결코 동맹관계로 갈 수는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김정은의 돌연변이적 외교가 북중러 3국 관계마저 완전히 흐트러지게 만들고 있다고 할 것이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