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무선호출기 수백대 폭발, 이스라엘이 배후]
레바논 전역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주로 사용하는 무선호출기가 동시에 폭발해 최소 9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부상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스라엘이 사전에 설치한 폭발물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작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무선호출기(삐삐)를 통신 수단으로 삼아온 헤즈볼라의 조직 운영력에 치명타를 안길 것으로 보인다.
CNN은 18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와 동부 베카밸리,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등 헤즈볼라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헤즈볼라 무장대원이 사용하는 무선호출기 수백대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면서 “폭발은 전날 오후 3시 30분부터 1시간가량 이어졌으며, 일부는 호출기가 울려 회면을 확인하는 도중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레바논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호출기가 폭발해 헤즈볼라 대원 등 14명이 부상한 것으로 시리아인권관측소는 파악했다. 모즈타바 아마니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도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이 폭발로 최소 9명이 숨지고 280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그중 200여명은 중태이며, 사망자 중엔 헤즈볼라 무장대원 8명과 무장대원의 10세 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폭발 헤즈볼라 삐삐, 대만회사 제품, 이스라엘이 폭발물 심어]
그런데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무선호출기 폭발은 이스라엘이 사전에 설치한 폭발물 때문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서방국가 당국자를 인용해 “이스라엘이 무선호출기 폭발사건의 배후”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정부는 폭발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미국과 주요 서방국에는 이번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 서방국 당국자들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가 수입한 대만 기업의 무선호출기에 소량의 폭발물을 심었다”고 말했다.
NYT가 당국자들의 견해를 종합한 바에 따르면 폭발한 무선호출기는 헤즈볼라가 대만 골드아폴로에 주문해 납품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 AR924 기종으로 각 기기의 배터리 옆에 1∼2온스(28∼56g)의 폭발물이 들어가 있었으며 이를 원격으로 터뜨릴 수 있는 스위치도 함께 내장됐다. 이스라엘은 또한 무선호출기가 폭발 직전 수초간 신호음을 내게 하는 프로그램까지 설치했다고 당국자 3명이 말했다.
이 때문에 부상자 대부분은 얼굴, 손 또는 복부 주변에 부상을 입었는데, 손가락을 잃거나 두 눈을 심각하게 다친 이들도 있었다. 레바논 보건부는 사건 이후 모든 시민에게 호출기를 즉시 폐기하라고 요청했다.
[헤즈볼라는 왜 무선호출기를 주요 연락망으로 사용했나?]
눈여겨볼 점은 헤즈볼라는 왜 무선호출기를 이 집단의 핵심 연락망으로 사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때문이다. 그는 지난 2월, 이스라엘이 위치 추적과 표적 공격에 활용할 수 있다며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헤즈볼라는 최근 몇 달 사이 통신보안을 위해 무선호출기를 쓰고 있었다. 한국에선 ‘삐삐’로 불렸던 무선 호출기인데, 호출음이나 단문 메시지를 주고받는 통신기기다.
이와 관련해 AP는 “무선호출기 폭발 사건은 오랫동안 계획된 작전으로, 레바논으로 기기가 배달되기 전 장치에 폭발물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원격 해킹을 통해 무선호출기의 리튬배터리를 과열시켜 폭발을 일으킨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으나, 전문가들은 이 방식보단 호출기에 폭발 장치를 직접 삽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CNN도 사이버보안 연구원 밥티스트 로버트의 견해를 인용해 “기기가 해킹당했다기보단 배송 전에 기기가 개조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폭발 규모로 볼 때 조직적이고 정교한 공격”이라고 전했다.
NYT도 미국 등 서방 당국자들을 인용해 “헤즈볼라가 수입한 대만산(産) 호출기에 이스라엘이 소량의 폭발물을 투입했다”면서 “헤즈볼라는 대만 업체 골드아폴로로부터 호출기를 납품받았으며 이들 기기는 배터리 옆에 폭발물이 들어가 있었다”고 전했다.
NYT는 이어 “이스라엘은 또 호출기를 터뜨리기 직전 수 초간 신호음을 내게 하는 프로그램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헤즈볼라 지도부로부터 메시지가 온 것을 가장해 신호음을 울렸고, 이내 호출기 주인이 화면을 들여다보려는 과정에 폭발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로이터도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폭발한 호출기는 최근 헤즈볼라가 몇 달간 사들여 대원들에게 배포한 최신 모델로, 장치에는 조작된 흔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무선호출기 제작사인 골드아폴로 측은 이날 성명을 내고 “폭발에 사용된 호출기가 자사 생산 제품이 아니고 골드아폴로와 상표권 계약을 맺은 유럽의 유통사가 생산, 판매한 것”이라면서 “우리는 (유럽 회사에) 브랜드 상표 사용을 승인했을 뿐 이 제품의 디자인 및 생산에 어떠한 관련도 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골드아폴로의 창립자인 쉬칭광 회장도 이날 기자들에게 “그 제품은 우리 것이 아니다”며 “그저 우리 상표만 붙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대만 경제부도 “대만에서 호출기가 레바논으로 직접 수출된 기록이 없다”면서 “제조사의 추가 조사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무선호출기 폭발로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전투원 상당수가 죽거나 다치고 통신 체계까지 '먹통'이 되면서 조직 운영 능력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으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대해 보복을 예고했지만, 전투원뿐 아니라 헤즈볼라와 협력한 관계자 및 그 가족들의 일상까지 뒤흔든 공격에 전투력과 사기가 크게 떨어지면서 당장 보복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이와 관련해 지역 안보 전문가인 아메르 알사바일레 교수는 NYT에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전투원뿐 아니라 헤즈볼라와 연관이 있는 모든 이들을 일상에서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헤즈볼라에 심리적 타격을 입혔을 것”이라면서 “이건 헤즈볼라의 모든 구역에서 작전을 수행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으로 인한 헤즈볼라의 충격은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한 헤즈볼라 당국자는 로이터에 “이번 사건이 최근 1년여간 이스라엘과 충돌해 온 헤즈볼라에 발생한 가장 큰 보안 사고”라고 말했다.
또한 BBC는 “헤즈볼라에 공포와 혼란을 심기에 이보다 더 계산된 공격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라면서 “이번 공격이 헤즈볼라의 인력과 통신, 사기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짚었다.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분석가 니콜라스 블랜포드도 BBC에 “헤즈볼라의 무선호출기를 노린 이번 공격으로 헤즈볼라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됐다”면서 “이번 공격으로 망가진 통신 체계를 구축하는 동안은 조직원들 간의 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블랜포드는 이어 “헤즈볼라가 다시 통신 체계를 구축할 수는 있지만 그 사이 사람들이 필요한 때에 소통하지 못할 수 있다”면서 “이것이 앞으로 며칠, 혹은 몇시간 이내에 헤즈볼라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블랜포드는 다만 “헤즈볼라의 모든 구성원이 무선호출기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면서 “특히 현장에 있는 고위 당국자들은 연락원을 통해 소통하기 때문에 전자통신 기기를 몸에 지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의 레바논 분석가 데이비드 우도 NYT에 “헤즈볼라가 당분간은 전기 장치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다른 소통 수단에 기대야 할 것”이라면서 “이는 분명히 조직을 더 어렵고 위험하게 만들 것이며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헤즈볼라의 운영 역량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주목받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번 호출기 폭발 공격과 관련해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18일, “현재까지 이스라엘은 무선호출기 공격에 대한 책임을 주장하지 않고 있지만 이번 사건 자체가 모사드와 같은 특수부대가 저지른 것이라는 특징들이 많이 발견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암살 등 작전 수행을 위해 50여년 전부터 전화 등 통신수단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왔다.
1972년 뮌헨올림픽 직후 프랑스 파리에 주재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부 마흐무드 함샤리의 암살에는 유선 전화가 동원됐다.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에 살해당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에 대한 복수에 나선 이스라엘은 함샤리 자택의 전화기에 폭탄을 설치했다. 이후 전화를 받기 위해 수화기에 손을 댄 함샤리는 폭발 탓에 중상을 입었고, 한 달 만에 사망했다.
1996년 이스라엘의 국내정보기관 신베트가 꾸민 하마스의 사제폭발물 기술자인 야히아 아야시 암살에도 휴대전화기가 사용됐다. 아야시는 이스라엘에 포섭된 팔레스타인인이 건넨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중 폭발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작전에 사용된 모토로라 휴대전화에 장착된 폭발 물질은 50g 정도로, 휴대전화가 귀 부근에서 폭발할 경우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다시 전면전으로 가나?]
이번 사태로 헤즈볼라는 즉각 보복을 다짐하면서 전면전 가능성을 피력했다. 또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가 취약해진 틈을 노려 헤즈볼라와 지상전을 확대하며 전면전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양측 모두 전면전은 원하지 않는 데다가 미국이 적극적으로 전면 충돌을 막으려고 하는 만큼 당장 전면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는 시각이 더 많다”고 전했다.
당장 미국의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 사건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사자들의 외교적 해결을 당부했다. 유엔도 긴장 고조를 우려하며 자제를 촉구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