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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전쟁의 두려움 적나라하게 보여준 러시아 국경도시 - 러시아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죽음과 공포 - 폐허로 변해 버린 벨고로드, 바로소 알게 된 전쟁의 참상 - 푸틴의 오판, 러시아의 전쟁 피해는 이제부터 본격 시작
  • 기사등록 2024-06-27 04: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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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죽음과 공포]


러시아에 전쟁의 공포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국경 도시인 벨고로드의 상황은 전쟁이 가져온 죽음과 파괴가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온 러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25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불과 40km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벨고로드가 원래는 조용하고 편안한 도시였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여가 되어 가던 지난해 12월 30일경부터 전쟁의 피해를 본격적으로 겪기 시작했다”면서 “그날 벨고로드 중심부에 우크라이나의 로켓이 떨어지면서 어린이 2명을 포함한 민간인 25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그 날 이후로 이 도시와 주변 지역은 거의 매일 공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에 의하면 지금까지 약 200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800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물론 이 숫자는 우크라이나가 겪은 피해에 비하면 지극히 적은 숫자지만, 러시아의 다른 어느 곳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보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실례로 벨고로드 주립대학교의 22세 졸업반 학생인 미하일 이반키프가 겪은 일들을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30일, 부모님과 약혼녀를 위한 새해 선물 쇼핑을 막 마친 상태였다. 첫 직장을 구했고 약혼녀와 이사를 앞두고 있었던 그에게 아버지는 그 새해가 그의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축복의 말을 던졌다. 그리고 그들 가족은 새해 전야를 함께 축하할 계획이었고, 다음 날인 31일 부모님을 만나러 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는 30일 우크라이나의 폭격으로 말미암아 두 다리를 잃었고 결국 병원에서 사망했다. 가족간의 송년 약속은 끝내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원래가 우크라이나 민족인 이반키프의 가족들은 소련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우크라이나 서부 출신인 할아버지는 스탈린의 강제수용소에서 몇 년을 보낸 후 추방당했다. 그들 가족들은 이후 소련인으로 자랐고 소련군에서 복무했으며 러시아 북서부의 프스코프에서 살다가 2013년 벨고로드로 이사해 쭉 살고 있었다. 그들 가족이 벨고로드를 택한 것은 그곳이 온화한 남부 기후에 현대적인 느낌과 비옥한 농경지도 있었으며,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가까웠기 때문이다.


전쟁 전만 하더라도 벨고로드에서 80여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시와는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어서 사실상 한 도시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자매 도시라 할만큼 교류도 많았고 역사, 문화, 언어적으로 공통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실 벨고로드는 폴란드의 지배와 타타르족의 습격을 피해 탈출한 우크라이나의 자유 농민과 코사크족이 정착한 곳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와는 친척들도 많이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지내 왔었다.


이렇게 인구가 34만명에 불과했던 벨고로드는 우크라이나의 대도시인 하르키우가 사실상 인근의 최대 도시로 의지해 왔고 그만큼 교류도 많았었다. 실제로 벨고로드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하르키우에서 명성을 얻은 러시아 래퍼이자 가수인 노이즈 엠씨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하르키우가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정도다.


하르키우에는 멋진 바와 더 큰 쇼핑몰, 그리고 영화관도 있었다. 또한 벨고로드의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맥도날드도 있었고, 유럽 최대 규모의 바라바쇼바 야외 시장은 러시아와 구소련 전역의 상인과 바이어를 끌어들이는 곳이었다. 벨고로드와 하르키우 사이의 국경은 사실상 대부분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별 의미없는 선이었다.


그런데 2014년 접어들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이 처음으로 돈바스를 침공하고 하르키우에서 분쟁을 선동하려 했던 때이다. 그러면서 벨고로드와 하르키우 사이의 국경이 확고하게 세워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바라바쇼바의 운명도 나빠졌다.


그리고 2022년 러시아 미사일이 바로 이 바라바쇼바 시장을 강타하면서 15헥타르(전체의 거의 20%)의 노점이 폐허로 변했다. 그러면서 덩달아 벨고로드도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의 최전선 도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폐허로 변해 버린 벨고로드, 비로소 알게 된 전쟁의 참상]


벨고로드는 올해 들어서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희생양으로 등극했다.


지난 6월 9일, 미국이 제공하는 무기로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한 이래 우크라이나는 개전 이래 처음으로 전투기를 이용해 벨고로드의 러시아군 사령부를 폭격했다.


이에 대해 영국의 스카이뉴스는 9일, “이는 우크라이나 공군이 처음으로 러시아 내 목표물에 발사한 최초의 포탄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후로 벨고로드는 우크라이나군의 단골 폭격 목표가 됐다. 24일에도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이 대대적으로 감행되어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군만 벨고로드에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군도 오발 사고로 벨고로드를 초토화하는 데 일조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 19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러시아 통제 하에 있는 영토를 우발적으로 폭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가장 많은 오폭이 일어난 지역이 바로 벨고로드”라고 지적했다.


벨고로드는 러시아 군사 기지와 훈련장이 있으며 최근에는 거의 매일 폭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하르키우에 대한 집중 공격을 펼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역시 벨고로드를 공격하며 반격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5월 4일 러시아군은 하르키우에 대한 공습 중 벨고로드에 활공폭탄인 FAB-500을 잘못 투하해 7명이 부상을 입고 수십 가구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로부터 2주 후에도 러시아 군용기가 벨고로드에 활공폭탄을 투하했으나 탄약이 터지지 않아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지난해 4월에는 러시아의 Su-34가 벨고로드의 주거 지역을 폭격해 일부 아파트가 파손되고 주민 2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으며 러시아 당국도 이를 공식 인정했다.


그러면서 한때 새 주택과 좋은 학교로 유명했던 벨고로드는 이제 콘크리트 대피소가 즐비하고, 부상자 소생술이나 붕대 감기, 지혈법 등 정기적인 간호 및 응급처치 훈련으로 전국에서 유명세를 탔지만 대신 거주민들은 쭉쭉 빠져 나가고 있다. 더 이상 사람 살기 어려운 도시로 변해 버렸고 또 이미 폐허로 변해가고 있어서다.


많은 사람들이 벨고로드에서 빠져나가는 동안 군용 차량이 줄지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에 따르면 러시아는 벨고로드 지역에 약 3만 명의 병력을 집중 배치했다.


벨고로드는 이미 약 26,000채의 가옥이 파괴됐고 9,000명의 어린이가 대피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원격으로 공부하고 있다. 사회학 연구그룹인 익스트림스캔 그룹의 설립자 엘레나 코네바는 15만 명이 이 지역에서 이주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푸틴의 오판, 러시아의 전쟁 피해는 이제부터 본격 시작]


그런데 블라디미르 푸틴은 하르키우로 진격하는 것이 벨고로드를 포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폭탄은 정반대의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벨고로드 주민들은 러시아가 하르키우를 폭격하면 자신들도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언론인이자 활동가인 티모페이는 “러시아가 대규모 공격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모두가 보복 공격이 뒤따를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하르키우의 우크라이나 지휘관들은 벨고로드에 대한 공격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군사 인프라를 파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전쟁의 공포를 안겨주는 것이다. 전자는 합법적인 전쟁 행위이지만, 후자는 민간인들에게 전쟁의 공포심을 안겨주면서 온 러시아 국민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상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은 벨고로드의 사람들도 변하게 만들었다. 이젠 남은 주민들이 벨고로드를 지키기 위해 차츰 전사로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변해가는 이유는 단 한가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이 불안과 절망감, 그리고 우울증과 소외감을 낳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강조한다.


눈여겨볼 것은 이렇게 엄청난 피해를 당한 벨고로드의 사람들이 정작 국경 반대편에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 심지어 우크라 군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과 같은 처지이고 또한 우크라이나 군인들도 살기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쟁이지 그들이 벨고로드를 그렇게 폐허로 만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벨고로드의 사람들이 느끼는 전쟁의 두려움과 불안이 점차 러시아 전역의 사람들에게도 전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벨고로드로부터 전해지는 전쟁의 참상을 이미 알고 있으며, 그러한 일들이 언젠가는 자신들에게도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비극적인 전쟁이 옳지 않은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쟁에 대해 말을 할 때 푸틴 정부가 선전하는 미국의 도발에 의한 전쟁이라든지 우크라이나의 나치 등 선전선동 구호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심리적 불안감을 없애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지난 러시아 대통령 선거일에도 벨고로드에서는 투표가 진행되었지만 계속 이어지는 우크라이나의 포격 때문에 투표소는 한산했다. 아예 인적이 보이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러시아에 남은 몇 안 되는 독립 언론사 중 하나인 노바야 가제타의 한 기자는 텅 빈 투표소를 묘사했다. 하지만 국영 선전 채널인 채널 원은 유권자들의 긴 줄을 보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노바야 가제타는 선거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투표율 87%, 사망자 10명, 부상자 68명. 블라디미르 푸틴의 승리.”


이코노미스트에 의하면 많은 젊은이들은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다. 현실과 크렘린 정치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서다. 사람들은 말한다. “모스크바(크렘린궁)는 벨고로드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기야 푸틴이 언제 러시아 국민들의 희생에 대해 안타까워 하거나 우려를 표명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수많은 전쟁터에서 아까운 젊은이들을 소위 ‘고기 분쇄기’로 몰아 넣고도 전쟁을 중단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그 아닌가?


그리고 그야말로 푸틴의 정신상태를 보여주는 극적인 하나의 소식. 지난 5월 31일, 러시아 비상사태부는 벨고로드에 '위험 없는 도시'를 위한 전 러시아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수여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완전히 폐허가 되었는데도 ‘위험없는 도시 1위’라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벨고로드의 참상이 전 러시아 지역에 퍼져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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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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