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국도 잇따라 '손절'…러, 美 제재에 무역 고립 심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미국의 제재로 인한 세컨더리보이콧 위협이 거세지면서 핵심적 무역 상대국이었던 중국을 넘어 제3국까지 러시아와의 교역을 줄이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본의 닛케이아시아(Nikkei Asia)는 4일, “러시아의 돈줄을 끊기 위한 미국의 제재망이 제3국까지 확대되면서 러시아의 무역 고립이 심화하고 있다”면서 “러시아의 군수 물자·자금 조달을 돕던 우호국의 금융기관들이 잇따라 거래 제한에 나서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보도했다.
닛케이는 이어 러시아 중앙은행을 인용해 “러시아의 1~4월 수입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줄었다”고 전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러시아에 전쟁 물자를 조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규모도 3월 이후 급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국 해관총서(세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중국의 대(對)러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4%나 감소했다. 이는 3월의 16% 감소에 이은 것으로, 2022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감소한 수치다. 그 중에서도 강철·알루미늄 등을 비롯해 이중용도 품목으로 지목된 전자 부품의 수출들이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외에도 그간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신흥 국가들과의 교역도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 올해 1분기 튀르키예(터키)의 대 러시아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감소했으며, 같은 기간 카자흐스탄의 대 러시아 수출 역시 25% 줄어들었다.
닛케이는 이에 대해 “중국의 대러 무역은 지난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며 “튀르키예와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중국이) 첨단 부품을 우회 수출하는 통로 역할을 해 그간 러시아의 군수경제를 가속화하는 주요 통로가 되어 왔다”고 전했다.
[대 러시아 교역의 급감, 미국의 세컨더리보이콧 영향]
올해 들어 러시아와 우호 국가들의 교역에 제동이 걸린 이유는 역시 미국의 추가 금융 제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중국이 러시아에 대해 전쟁물자로도 사용이 가능한 이중용도 물품 등을 수출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이를 취급하는 금융기관을 제3자 제재(Secondary Boycott)를 가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한 바 있는데, 이러한 제재가 현실화되면서 중국의 주요 은행들이 러시아와의 송금 및 거래를 제한하고 나섰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제3자 제재가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은 미국의 금융제재를 받게 되면 SWIFT 글로벌 경제시스템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달러를 사용하는 모든 결제시스템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만약 중국의 한 은행이 그러한 제재를 받는다면 그 은행은 국제적 금융거래가 전면 중단될 수 있어서 사실상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현재 러시아는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SWIFT 결제망에서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러시아는 무역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등 제3국의 은행들과 거래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형은행들은 거의 모두가 달러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금융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의 제재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대형 은행인 공상은행 등은 최근 러시아에 대한 위안화 표시 결제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한때 양국 간 무역 결제의 약 80%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의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3월부터 대러 거래는 특정 은행을 통해서만 결제할 수 있게 됐다”며 “거래 가능한 은행의 심사 역시 엄격해져 입금까지 1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상황”이라고 닛케이에 말했다.
튀르키예의 주요 금융기관들 역시 1월 이후 러시아 군수 업체들에 법인 계좌 폐쇄를 통보했다. 군수 관련 업체가 아니더라도 서류나 데이터 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등 규제에 나섰다. 아랍에미리트(UAE)의 대형 은행인 퍼스트아부다비은행과 에미레이트NBD 등 역시 같은 조치를 실시했으며 몽골의 일부 은행도 지난달 결제를 일시 중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러시아의 우방국인 카자흐스탄의 은행마저도 러시아 신용카드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또한 러시아 매체인 코메르산트의 보도에 따르면 3월 말부터 러시아 전자 부품 제조업체의 결제가 중국 은행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 닛케이는 이에 대해 “러시아 기업들이 재고로 대응하고 있지만 여름 이후로는 전자 부품 등 부족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며 “최종 제품의 가격 상승이 불가피해지면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위험도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제재에 비상걸린 러시아, 전쟁 지속 여부에도 영향]
지금 러시아는 심각하다. 중국마저 사실상 등을 돌린 상태이기 떄문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 중앙은행은 5월 보고서에서 “지난해 가을 이후 미국의 제재가 러시아 기업뿐만 아니라 모스크바에 우호적인 국가의 기업들도 표적으로 삼았다”면서 무역 감소와 국경 간 결제의 복잡성 증가에 대해 경고했다.
위기 의식을 느낀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국경 간 결제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보려 했지만 중국측으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으로서도 이러한 미국의 제재에 대해 뾰쪽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파문은 크다. 우크라이나 북동부에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는 첨단 무기 부족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이 중단되면 당장 전쟁 무기 생산을 압박하게 될 것이고 전쟁의 지속 가능성마저도 약화시킬 수 있어서다.
[푸틴의 해외순방, 미국 제재 돌파구 찾기 위한 것일 수도]
이런 시점에서 푸틴이 돌연 해외 순방을 자주 기획하고 또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푸틴은 집권 5기를 시작한 이후 제일 먼저 중국을 찾아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고, 이어 5월 지난 23~24일 벨라루스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리고 세 번째 순방지가 지난 5월 26일 우즈베키스탄이었다.
사실 그동안 푸틴의 해외 순방은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물론 지난해 3월, 국제형사재판소(ICJ)로부터 전쟁범죄 혐의로 수배가 내려진 상황이기도 하고 서방의 제재가 극심해지면서 해외 활동에 큰 제약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랬던 푸틴이 취임 5기 접어들면서 이렇게 해외 순방을 강화하는데는 분명히 뭔가 푸틴의 꿍꿍이 속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푸틴의 속셈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변변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사실상 문전박대를 받았다. 심지어 푸틴의 역점사업이자 러시아로서는 상당한 수입원이 될 수 있는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계약마저도 중국의 거부로 체결하지 못했다. 명색히 국빈방문이면서도 단 하루의 회담으로 끝날 정도로 분위기 역시 냉랭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중국도 입장이 난처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상황은 딱한데 중국이 푸틴의 하소연을 다 들어줄 수도 없어서다. 그래서 푸틴이 경제관료 여럿을 동행해 뭔가를 만들어 보려 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가두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푸틴은 이제 북한의 김정은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이걸보면 푸틴이 지금 얼마나 다급한지 알 수 있다. 중국으로부터 얻지 못하는 것을 북한으로부터라도 만들어 보겠다는 속셈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미국내 북한전문 매체인 NK뉴스는 4일, “북한과 러시아 양측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계획하는 가운데 러시아 고위 관리들이 사용하는 정부 전용기가 북한에 착륙했다”고 보도했다.
항로 추적 웹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로시야항공 특수비행대 Tu-204-300기가 러시아 현지시간으로 2일 오후 7시께 모스크바브누코보국제공항(VKO)에서 출발해 약 10시간 뒤인 3일 오전 6시(한국 시간 기준) 평양국제공항(FNJ)에 도착했다.
NK뉴스는 “3일 아침에 전용기가 평양에 도착한 것은 지난 주 북한이 위성 발사에 실패한 데 이어 양측이 우주 발사 협력에 관심을 표명한 이후였다”면서 “고위 관리가 사용하는 정부 여객기의 예고 없는 비행은 정상회담 준비 또는 군사 및 우주 협력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NK뉴스가 민간 위성서비스 업체 플래닛랩스의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3일 오전 11시30분께 평양국제공항에 주기된 Tu-204-300기와 크기가 일치하는 비행기도 발견됐다. 이 비행기는 다음 날인 4일 오전 11시까지 평양을 떠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북한과 러시아 어느 쪽도 러시아 정부 고위인사가 이용하는 비행기의 북한 방문 목적을 밝히지 않았다. 러시아 외무부는 별도 논평을 하지 않았다.
NK뉴스에 따르면 이 비행기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푸틴 대통령의 해외 방문 중 동행하는 관리들, 그리고 다른 정부 관리들이 종종 예고 없이 이동하는 데 사용됐다. 최근 몇 년 동안 평양을 방문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눈여겨 볼 것은 푸틴은 이르면 수일 내에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으로, 북한과 함께 두 차례의 국외 순방 일정을 병행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북한을 방문한다는 것은 러시아가 무역제재로 인해 앞으로 생산이 어려운 품목까지 포함해 그동안 지속해 왔던 무기생산을 독려할 가능성이 크고 베트남의 경우 그림자 무역을 통해 공개적으로 거래를 할 수 없는 이중용도 품목들의 거래를 타진할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이라면 그런 거래가 얼마든지 가능할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미국 등의 서방경제의 틀 속에 이미 편입되면서 경제성장을 노리고 있는 베트남이 푸틴의 부탁을 들어주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등 서방진영은 베트남과 러시아간의 무역거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푸틴의 순방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대외무역에 대해 쌍심지를 켜고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푸틴은 갑작스런 해외 순방을 통해 사실상 구걸외교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푸틴의 뜻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제재는 푸틴의 자존심을 숙일 수밖에 없도록 날로 강도도 심해지고 또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