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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러시아 연해주 탈환 노리는 中, 2026년 베이징조약 파기할까? - 러시아 극동지역 ‘그림자 점령’ 나선 중국 - 한때는 앙숙이었던 중국과 러시아, 다시 러시아를 넘보는 중국 - 진짜 영토 갈등, 2026년을 주목하라!
  • 기사등록 2024-04-04 11:12:40
  • 수정 2024-04-04 11: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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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지역 ‘그림자 점령’ 나선 중국]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중국에 경제적 예속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러시아 극동지역에 거주민을 집중적으로 보내면서 일부 지역에서 경제적 지배력을 이미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에 대한 중국의 속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일부지역을 점령할 때 쓰던 방식이었던 ‘그람자 영토점령작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뉴스위크는 지난 2일(현지시간)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무제한 파트너십’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한 영토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접경지역인 연해변강주(Primorsky Krai)에 중국인 농부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현지인들을 압도하고 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연해변강주(Primorsky Krai)란 1860년 청나라가 러시아에 양도한 지역으로 모스크바에서 남동쪽으로 약 6,400km 떨어져 있으며, 러시아의 극동연방관구의 극동경제지구에 속하는 지역이다. 러시아어로 '바다와 접하고 있다'는 의미의 '프리모르스키 변강주'를 한자로 훈차하여 '연해(沿海) 변강주'라 부른다. 주도(州都)는 블라디보스토크이다.


눈여겨볼 것은 이 지역에 베이징의 정책 입안자들과 중국 민족주의자들이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국 자연자원부가 지난해 2월, ‘공공 지도 내용 표시 규격’을 배포했는데, 이 중 ‘규격’의 제14조는 한어 병음과 외국어로 된 지도를 제외하고, 러시아의 8개 지명을 표기할 때 중문 이름도 괄호 안에 함께 표기해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이러한 소식은 대만의 연합신문이 지난해 2월 24일, “중국 정부가 중국어로 된 지도를 제작할 때 러시아 내 지역 8개에 중문 표기를 병행하도록 했다”고 보도한 바 있었는데,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통신사가 이를 공식 확인하면서 러시아에서도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때 중국은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을 ‘하이선와이(海參崴)’로 병기해 표시했다.


[한때는 앙숙이었던 중국과 러시아]


사실 일부 러시아 영토 지역에 대해 중국이 한자 병기를 하기로 했다는 것은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해당 지역들이 과거 중국의 고유영토였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이들 영토로 인해 국경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말해 준다.


분명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결코 동맹으로 갈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이다. 지난 2022년 9월 8일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러시아와의 정당한 협력은 자제할 필요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두 독립 강대국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고 동맹이 아닌 동반자”라고 지칭했다.


여기서 화이부동은 공자가 논어에서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하다”고 말한 데서 비롯한 성어로, “조화를 이루되 같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환구시보가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은 한마디로 중국과 러시아가 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피를 나눈 동맹은 결코 될 수 없는 관계라는 의미다. 왜 그럴까?


사실 중국에게 있어 러시아는 한때 주적(主敵)이었고 또 앙숙관계였다. 두 나라 사이에 국경 자체가 무려 4380km에 이르기 때문에 사실 바람 잘 날 없는 관계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실 1689년, 청나라와 러시아 제국간의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을 때도 국경 분쟁은 심각했다. 1685, 1686년 두 차례에 걸친 알바진 전투에서 러시아는 청나라에 참담하게 패배했다. 그런 상황에서 두 나라 모두 전쟁 지속보다는 평화를 원하면서 국경협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러시아는 아무르강 유역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접었다.


사실 네르친스크조약은 중국으로선 서양 국가와의 첫 번째 협정이고, 양국의 평등한 기초 위에 체결한 협정이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변방국은 오랑캐라는 중화주의가 표기된 국제협정이기도 하다.


네르친스크 조약 이후 청나라의 기력이 쇠하면서 170년 후인 1858년 아이훈 조약으로 흑룡강 이북을 빼앗겼고, 2년후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마저 빼앗겨 버렸다.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 국경선은 이때 그어진 것이다.


그리고 1840년 아편전쟁이 벌어졌을 때 패배한 중국은 영국과 난징조약(1842년)을 맺으면서 홍콩을 강탈당했다. 그로부터 18년 후인 1860년, 2차 아편전쟁 끝에 러시아도 중국과 베이징조약을 맺고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해 중국의 극동 영토 상당 부분을 빼앗았다. 중국으로서는 대치욕을 당한 것이다.


1969년에도 헤이룽장성 우수리강(러시아명 아무르강) 중류의 전바오다오(珍寶島·러시아명 다만스키섬)를 두고 서로 자국 영토라며 두 차례나 전투를 벌였다. 양측 국경 수비대 간 주먹질로 시작된 싸움은 탱크와 다연장 로켓까지 동원된 전투로 확대됐다. 심지어 러시아는 중국에 핵 공격 계획까지 세울 정도로 확대됐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과 소련간의 관계는 공산주의 정부가 두 나라 모두 들어섰음에도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중국은 러시아를 수정주의라고, 러시아는 중국을 교조주의라고 맹비난하면서 갈등은 지속됐다. 그러다 결국 두 나라 사이에서는 전바오다오(珍寶島·러시아명 다만스키섬)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면서 충돌했던 것이다.


그해 9월 더 이상의 확전을 막기 위해 애매한 형태로 일단 분쟁은 중단되었고, 이후 2001년 20년 기한 중-러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은 푸틴과의 회담을 통해 이 조약을 5년 더 연장했다.


지금 러시아와 중국은 길고 긴 국경선에 군 병력을 각각 81만4000명, 65만8000명을 배치하면서 대치 상태를 유지해 왔다. 중국이 미국과 화해를 한 것도 소련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중국은 자유진영인 미국보다 러시아를 더 경계했다.


그러다가 2001년 7월 16일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해 영토 문제를 비롯한 각종 분쟁을 해결하고 상호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장쩌민 주석과 푸틴 대통령간에 맺어진 조약이었다. 이렇게 때론 경쟁관계가 되기도 했고, 그러다가 또 미국에 맞서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렇게 협력을 하면서도 군사동맹은 맺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러시아를 넘보는 중국]


흥미로운 것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잃어버린 영토의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향해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주장하면서 영토 탈환 작전을 펼쳤고, 이를 위해 러시아 거주민들을 집중적으로 살게 하면서 나중에는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과 같은 방식으로 중국도 러시아에 대한 영토 회복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중국은 지금도 대만을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필리핀, 베트남 등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영토 분쟁이 앞으로 러시아를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판단하는 중요한 이유가 중국 당국이 앞장서서 중국인들을 러시아와의 국경지역 일부에 집중적으로 영주를 시키고 있어서다. 실제로 중국 북동부의 탄광지역인 허강이 경제적으로 어렵게되자 이 지역의 농부들이 대대적으로 러시아 변경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스팀슨 센터의 중국 프로그램 책임자 윤 선은 뉴스위크에 “중국인의 러시아 지역에의 대량 유입은 러시아의 통제에 도전할 수 있다”면서 “주권 문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현지에서 중국인 농부들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물론 지금같은 중러관계 속에서 영토 분쟁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만약 양국간 갈등이 다시 불거진다면 이 지역에서의 영토 분쟁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수 있다.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돈바스지역에 그러했던 것처럼 해당 지역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중국도 러시아와의 국경지역에 무장세력을 파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중국에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중국이 러시아를 자극하는 영토분쟁을 벌인다 하더라도 러시아가 강력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점도 앞으로 주목할 부분이다.


뉴스위크도 이와 관련해 “위안화에 대한 러시아의 의존도가 확대될수록 양국 간에 외교적 긴장이나 무역 분쟁이 발생할 경우 푸틴을 곤경에 빠뜨리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직면한 경제적 도전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짜 영토 갈등, 2026년을 주목하라!]


눈여겨볼 것은 러시아 극동 도시 블라디보스토크가 불과 163년 전인 1860년까지는 중국 영토였다는 점이다. 바로 문제의 베이징조약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를 러시아에 넘겨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베이징조약이 2년 후인 2026년에 유효기간이 종료된다. 만약 그때 베이징조약을 연장하지 아니하면 중국과 러시아간에는 또다시 국경 분쟁이 발발할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천추의 한과 같은 베이징조약을 파기하고, 네르친스크조약 당시로 되돌아 가는 것이 중요한 국가 과제다. 아마도 중국은 1860년에 맺어진 치욕의 베이징조약을 파기하고, 1689년의 네르친스크조약으로 되돌아가려 할지도 모른다. 이는 러시아에게 1689년 이후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의 극동지역을 중국에 반환하라는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군사강대국으로 우뚝 서 있다면 불가능하겠지만 그러한 러시아 전성시대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중국에게는 또한 기회다. 당연히 1689년의 네르친스크 조약을 들이밀면서 고토(古土) 회복에 나서려 할 수도 있다.


중국은 지금 바로 그러한 절호의 시기가 올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3연임을 넘어선 종신집권으로 가는 시진핑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고 있다. 시진핑에게는 과거 청나라 시대말에 있었던 치욕의 역사를 씻어내고, 다시 원대한 제국으로 부활해야 한다는 그 꿈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청나라 말 대표적 불평등 조약인 베이징조약으로 러시아에게 빼앗긴 블라디보스토크 등의 실지(失地) 회복은 시진핑에게 있어 당면한 과제일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푸틴의 심정은 어떠할까? 러시아제국의 붕괴를 기다리는 시진핑의 모습을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국제정세는 이렇게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는 냉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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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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