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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5-13 21: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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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출마는 엄청나게 위험한 도박. 자신의 노동 팔아서 사는 사람들에게 패배는 치명적
–한국의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은 돈 걷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 오로지 돈쓰는 문제만 고민
–노동권과 노조 강화가 진보이며, 지자체에 더많은 권한과 예산 보내는 것을 개혁으로 여긴다


▲ 깐깐한 검증을 거칠 자신감이 없으면 출마는 엄두도 낼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 출마자들의 현수막이 하나 둘 내려가기도 하고(컷오프자와 경선패배자), 올라가기도 한다(약세정당). SNS에서는 출마의 포효와 격려, 승리의 환호, 패배/컷오프의 비탄과 위로 등이 넘쳐난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느끼는 생각.


내가 아는 한 출마자들은 대부분 괜찮은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출마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 당원, 언론, 경쟁자들의 깐깐하고 집요한 검증/공격을 견뎌낼 자신감이 있는 사람만이 출마한다. 그러니 도덕성이 평균보다 많이 높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대인관계가 좋다. 눈치, 용기, 강단, 활동력 등도 좋다.


그런데 대부분은 떨어질 것이다. 한국에서 출마는 일종의 출가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튼튼한 사업체라도 있으면 모를까,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위험 부담이 있는 도전이자 도박이다.


운좋게 당선된 사람과 좋은 인연이 있는 낙선, 낙천자는 그래도 한해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지자체 예산 도랑 주변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낙선, 낙천자는 만만치않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과거에 비해 모든 시장/산업 생태계가 피폐해졌기에 고통이 더할 것이다.


시장/산업 생태계가 건강하다면, 아니 정치생태계라도 풍성하다면, 대인관계 좋고, 공심, 눈치, 용기, 설득력, 활동력, 도덕성 등을 고루갖춘 낙선/낙천자들을 대거 흡수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건 공공사무(정책, 사업 등) 관련 일(연구)을 하면서, 꽤 오랫동안 풍찬노숙 해봐서 좀 안다. 낙선, 낙천 이후 어떻게 생활을 꾸리고, 어떻게 공공사무에 대한 관심을 유지할지 정말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척박한 정치생태계가 통탄스러운데 어쩌랴! 이걸 만든 원흉이 정치인과 정당이니!


두번째 소감.


한국은 자신의 머리로 제도를 설계해본 적이 없어서, 기형적인 제도가 한 둘이 아니다. 그 정신(존재이유), 작동조건과 원리 등에 비추어 보면 엄청나게 기형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문제의식조차도 없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조합, 정당, 지자체다. 따지고 보면 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는 정부와 공직도 그렇다. 대체로 권한과 책임, 권리와 의무가 엄청나게 불일치하여, 돌부처도 돌아앉게 만드는 마력(예산, 인사권, 감사권 등)을 갖고 있다. 그러니 사생결단의 쟁투 대상이다.


한국의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은 돈 걷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 오로지 돈 쓰는 문제만 고민한다. 돈은 중앙정부가 걷어서 일정한 공식(교부세)과 정책(보조금)에 따라 내려보내준다. 가난하면 많이 내려보내주고 부자면 적게 내려보내준다.


지방세가 좀 있지만, 그 때문에 생기는 갈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지자체들은 지방세를 깎아주려고 노력한다(과태료 관련해서는 갈등이 좀 있을 것이다). 갖은 명분으로 중앙에 쌓여있는 자원을 더 가져오려고 기를 쓴다.


내가 아는 한 전세계 지자체 중에서 주민들로부터 돈 걷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지자체는 한국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공무원들은 돈 버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쓰는 문제만 고민하는 재벌 3세나 4세와 비슷한 심리를 갖게 된다.


주민들로부터 돈 걷는 문제와 관련한 갈등이 없다면, 지자체가 쓰는 돈에 대한 주민의 관심도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기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이런저런 사업으로 나간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시민단체, 지방언론, 선각자들이 아무리 방만한 지자체 예산 운용 실태에 대해 폭로하고 성토해도, 관심과 분노가 높을 수 없다. 게다가 중앙정치가 독과점화되어 있기에, 즉 정당들의 경쟁이 약하기에 더하다. 독과점 정당체제에서는 당선이 유력한 정당 후보나 지자체장은 주민보다 공천권자의 심기가 훨씬 무섭다.


이는 지방자치의 대전제가 무너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지자체장은 당선되면, 세상에 이보다 더 맘편한 직장이 없다. 물론 양심이 있는 지자체장은 수많은 결재를 하면서, 이해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승진과 보직에 목매는 직업 공무원들을 만나면서 고민을 많이 하지만, 잘하겠다는 집착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재선 욕심이 있으면 공천권자의 심기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경우는 있을 것이다.


어쨌든 주민(납세자)에 의한 예산, 인사 통제가 거의 안되기에, 결국 중앙정부(검찰, 감사원 포함)가 수많은 규제로서 통제를 한다.


그러다 보니 주민의 관심, 요구, 고통과 지자체장/의원의 권한의 괴리가 심하게 발생한다. 예컨대 주민의 최대 관심이자 고통은 일자리와 교육에서 오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지자체장이 할 게 없다. 오히려 여기에 부응한다는 것이 대체로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골목상권 보호 규제, 교육지원 등이 그렇다.


돈은 중앙정부에서 끊임없이, 아니 하염없이 쏟아지는데, 권한 자체를 제한해 놨기에 비용 대비 효과가 의심스러운 사업을 수없이 쏟아낸다. 박원순처럼 부지런한 지자체장일수록 더하다. 만약 초중등교육을 지자체 권한으로 했다면, 지금 지자체장들의 관심/에너지의 30% 이상은 초중등교육(좋은 학교, 좋은 교육과정, 좋은 교사 등)에 쏠려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쪽을 틀어막아 놓으니 관심/에너지가 엉뚱한 데로 분출한다.


수천 개의 지자체 사무를 찬찬히 뜯어보면, 딴 기관에서 하는 것을 지자체로 가져올 것도 많지만, 중앙정부로 올릴 것도 많고, 별도의 전담기구로 몰아줄 것도 많고, 아예 발을 뺄 것도 많다.


2012년에 나는 지자체-정부-공무원, 국회, 정당, 학교, 노조, 기업 등이 자신의 소명을 잘 이행하도록 만드는 진짜 구조 개혁을 꿈꿨다. 선거법과 헌법 개혁은 필수다. 그래서 정당의 영혼과 체질을 바꾸거나, 하다 안되면 나라도 국회에 들어가 보려고 하였다. 물론 실패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문제들이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가기에 2018년에 들어설 새 정부에게 이런 개혁을 기대했다. 그래서 연정과 협치를 담보하는 결선투표제 운동도 했다. 역시 실패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나라는 무엇이 문제인지, 왜 문제인지에 대한 컨센서스 자체가 없다. 담론 수준 자체가, 각종 권리와 의무, 권한과 책임의 균형을 잡는 것이 아니라, 노동권과 노조 강화를 진보라 생각하고, 지자체에 더 많은 권한과 예산을 내려 보내는 것을 개혁으로 생각하는 수준이다. 정당 개혁은 공천 제도를 손보는 수준이고.


대부분의 문제를 범법(적폐), 도덕, 궤멸, 분쇄, (대기업)약탈 프레임으로 보니, 제도에 대한 고민이 발 붙일 곳이 없다. 당연히 거의 모든 담론 수준이 일제히 후퇴해 버렸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고민하던 것, 참여정부 시절부터 고민하던 것이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이 또한 지나가고, 체제와 제도와 구조에 대한 고민은 2020년대 중반이나 되어야 부상할 것 같다. 엄청난 시간 지체 현상이다. 그로 인한 고통과 갈등은? 그저 끔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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