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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4-06 0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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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의 파시스트 행태는 다양한 시민들을 자유 혹은 보수에 대한 가치로 각성시키고 있다
-무능력한 바른미래당의 애매한 스탠스로는 국민에게 보수의 가치 설파나 설득이 불가능하다
-자유주의 청년들, 다양한 조직적 경험과 함께 경제적 자유주의 이해하며 지식을 체계화해야


▲ 매력적인 말들로 자유주의를 설파하는 사람들이 혹시 ‘피리부는 사나이’ 아닐까?

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의 파시스틱한 행태는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을 자유에 대한, 혹은 보수에 대한 가치로 각성시키고 있다.


이는 파시즘의 폭력성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반작용으로, 담담하게 바라봐야 할 당연한 현상이다.


다시 말해, 그저 ‘시민들이 깨어난다’며 무작정 기뻐할 성질의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오히려, 이 시민들의 반작용이 어디서 어떤 형태로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 반작용의 엔트로피를 건강한 방향으로 유도하여야 한다.


이번의 반작용에 2018 체제 대한민국의 모습과 미래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올드보이즈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하며 자유 보수주의를 정당 가치로 삼았다.


바른미래당 역시 보수주의를 주장하나, 말그대로 샤이(shy)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는 기존에 말하던 샤이 보수와는 다르다.

기존 샤이 보수는 정의를 참칭하고, PC를 내세워 폭력을 행사하는 좌파 세력들이 무서워 ‘숨은’ 시민들을 뜻했다.


바른미래당은 시민이 아니라 정치인이다.

숨지 않았다.

다만 행동하는 모습이 샤이한 소녀와 같을 뿐이다.


대한애국당은 국가 보수주의적 모습을 보여주나, 이 역시 파시즘적 성격을 띠어 갈 곳 잃은 어르신들을 절벽으로 이끌고 있다.


대한애국당에 대해서는 말해봐야 입이 아프다.


중요한 것은 116개의 의석을 가진 자유한국당과 30개의 의석을 가진 바른미래당이다.


다만 이 두 당은 의석만 있고 정치적 영향력이 빈사상태다.


우선 자유한국당은 소위 ‘이명박근혜’와 관련된 반민주 행적에 코가 꿰여있다.


정치란 아젠다를 세팅하고, 자신의 주장을 한 후 협의를 해 나가는 과정이다.


2017년 중반부터 지금까지, 박근혜 청산을 마치지 못한 자유한국당의 아젠다는 박근혜의 그림자를 벗어난 적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구속당한 지금, 또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이명박의 그림자 아래 놓이게 될지 모른다.


나아가 매년 3월 1일, 4월 3일, 4월 16일, 5월 18일, 6월 10일, 10월 16일은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날들이다.

그 모습과 이유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렇다면 바른미래당은 도대체 왜 힘이 없는가?

정치가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당은 가치적 결사체가 되어야 강력하다.

자신들이 믿는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바른미래당 안에 현재 실제로 죽음을 각오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가?

그 전에,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보수우파의 가치는 무엇이고 또 정당한가?


자유한국당이 과거를 청산하는 데에는 십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른미래당의 애매한 스탠스로는 국민에게 보수의 가치를 설파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다.


전 세계적으로 보수주의 리더십은 빛이 바래고 있는데, 저렇게 애매한 스탠스로는 보수주의와 함께 허물어져 갈뿐이다.

허울뿐인 ‘올드보이즈’에게는 미래가 없다.

개헌을 막는 데 유용할 뿐이다.


젊은 자유주의자들과 피리부는 사나이들


보수 권위주의 리더십의 종언은 청년들에게 두 가지 다른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하나는 사회자유주의적 각성이고 하나는 자유지선주의적 각성이다.


사회자유주의적 각성을 한 젊은 청년들은 정의당, 더불어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파시스틱한 열정을 내뿜고 있다.


자유지성주의로 각성한 청년들이 뜻을 의탁할 곳이 없었을 뿐이다.
이에 곳곳에 자유주의를 참칭하는 단체와 오피니언 리더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제갈량이 되어 천하삼분지계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보수주의, 사회주의와 균형을 이루는 자유주의 세력을 확립할 사람이 현재 존재할까?


자유주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설명과 정의, 설득이 어려운 개념이다.


이를 하루아침에 이해하고, 그 가치를 전파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쉽고 매력적인 말들로 자유주의를 설파하는 사람들이 혹시 ‘피리부는 사나이’가 아닐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들은 파시즘 앞에 절망에 빠진 청년들을 감정적 목소리로 선동하여, 또다른 파시즘으로, 정치적 절벽으로 데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반작용 엔트로피가 무가치하게 소멸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막 자유주의로 각성한 청년들은 조금 조심해야 한다.

시국은 빠르게 변하고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지만, 그 조급함에 이성적 사고마저 잃으면 안된다.


누군가를 믿거나, 따르거나, 행동하거나 혹은 또 누군가를 이끌기 이전에 철학적 바탕을 탄탄히 해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활에서 몸으로 깨우쳐야 한다.


다양한 조직에 몸담아서 정치적 자유주의를 이해하고, 돈을 벌고 쓰면서 경제적 자유주의를 이해하며, 다양한 서적을 통해 지식을 부지런히 체계화해야 한다.


구호와 선동으로 내면화되는 사회주의, 역사의식으로 내면화되는 보수주의와 다르게, 자유주의는 자아 성찰로 내면화되기 때문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동•서양의 두 가지 원칙에 기초해 자유주의를 이해해볼 것을 제안한다.


나 자신을 조심하고,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라 모든 자유주의적 에너지가 정치적 에너지로 모이지 못하고 소멸될 수도 있다.


이는 국가적 위기를 악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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