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T 폭로, 장관회의는 화상으로…정상 비공개회담도 없앤다?]
중국이 오는 11월 선전에서 개최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핵심 일정을 대폭 축소하려 하면서 회원국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불과 며칠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 당시 중국 측이 이례적인 휴식공간과 일정 조정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온 데 이어, 이번에는 중국이 주최하는 국제 정상회의마저 축소하려 한다는 것이다. 두 사건이 맞물리면서 시진핑의 건강과 체력 문제가 중국 정상외교의 새로운 제약요인으로 등장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후계구도가 불투명한 중국의 1인 권력체제에서 이런 논란은 단순한 건강이상설을 넘어 국가 운영의 구조적 위험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 “중국이 오는 11월 18~19일 광둥성 선전에서 개최하는 APEC 정상회의의 핵심 일정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회원국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면서 “중국은 APEC의 주요 행사인 외교·통상 장관 합동회의를 대면회의 대신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며, 또한 각국 정상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의견을 교환하는 비공개 회동도 없애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가 인용한 6명의 소식통은 “중국이 장관회의의 온라인 전환을 제안했다”고 전했으며, 5명의 소식통은 “정상들의 비공개 회동 취소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구상대로라면 정상들이 직접 참석하는 주요 일정은 만찬과 전체회의 정도만 남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중국이 2014년 이후 12년 만에 다시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번 행사를 통해 미국에 맞서는 다자주의의 수호자이자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의 중심국이라는 이미지를 과시하려 했다. 그런데 정작 회원국들이 실질적인 협상을 진행하는 핵심 회의는 줄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제33차 APEC 정상회의 개최 계획을 발표하면서 외교·통상 합동 장관회의와 최고경영자회의(CEO Summit) 등을 주요 행사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핵심 장관회의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중국이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다자간 대화의 기회는 줄이려 한다는 모순이 드러난 셈이다.
[“APEC을 정치적 쇼로 만들려 하나?”…회원국들의 거센 반발]
이번 일정 축소 계획에 대해 APEC 회원국들이 특히 반발하는 이유는 실질적인 외교협상의 기회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APEC 정상회의는 단순히 각국 정상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행사가 아니다. 정상회의에 앞서 열리는 장관회의에서는 무역 갈등과 공급망, 디지털 경제, 투자 규범 등 구체적인 경제 현안을 놓고 실무적인 협상이 진행된다. 또한 정상들의 비공식 회동에서는 공식회의에서 다루기 어려운 민감한 문제를 논의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런데 중국이 이러한 회의들을 대폭 축소한다면 정상회의는 사전에 준비된 연설과 공식 행사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FT에 따르면 한 관계자는 “중국이 행사를 철저하게 연출하려 한다”면서 “이는 APEC의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특히 APEC은 중국과 대만이 함께 참여하는 몇 안 되는 중요한 다자협력체다. 따라서 중국이 민감한 정치적 문제나 예상하지 못한 외교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자유로운 대화의 기회를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WSJ가 드러낸 시진핑의 이상 징후]
이번 APEC 일정 축소 논란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시진핑의 미국 방문에서 드러난 이례적인 장면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일 “시진핑이 지난 9월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 측이 백악관에 특별한 요구를 했다”고 보도했다.
핵심은 시진핑을 위한 별도의 휴식공간이었다. 중국 측은 백악관 웨스트윙에 시진핑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더욱 이례적인 것은 이 공간에 대한 출입 제한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만 해당 공간에 출입할 수 있었으며, 중국 공산당 최고위 지도부의 핵심 인물인 차이치 중앙판공청 주임조차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일정 자체도 크게 조정됐다. 중국 측은 당초 검토됐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업무오찬을 거절했다. 그 결과 양국 정상의 주요 일정 사이에 약 5시간에 달하는 공백이 생겼다. 시진핑의 미국 방문 마지막 날 국립문서보관소 방문도 미국 측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짧게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상외교 행사 가운데 하나인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일정 조정이 이뤄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정작 남는 것은 트럼프·푸틴과의 정상외교…중국의 계산은?]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부분은 미국과 러시아 정상의 움직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전 APEC 참석이 예정돼 있으며, 미·중 정상 간 추가 회담도 중요한 외교 현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이 함께 만나는 3자 회담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만 3자 회담의 성사 여부와 구체적인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나타난다. 중국이 장관회의와 정상들의 자유로운 비공식 회동은 줄이려 하면서도 미국과 러시아 등 주요 강대국 정상들과의 접촉에는 외교적 무게를 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도는 중국이 APEC을 실질적인 다자협상보다는 강대국 정상외교를 과시하는 무대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는다. 특히 시진핑의 체력과 일정 관리가 중요한 문제라면 중국은 예측하기 어려운 다자간 토론보다 사전에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 양자회담을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시진핑의 건강이 왜 중국 전체의 위험이 되는가?]
이번 논란이 단순한 건강이상설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중국의 권력구조 때문이다. 시진핑은 2012년 집권 이후 중국 공산당의 주요 정책 결정권을 자신의 주변으로 집중시켰다. 외교와 안보, 경제정책뿐 아니라 군과 당 조직에 대한 통제권도 강화했다. 2018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을 폐지했고, 2022년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총서기 3연임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중국 공산당이 유지해 왔던 권력승계 관행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차기 지도자로 유력한 인물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미리 진입시키는 방식으로 권력승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 최고지도부에는 공식적으로 지정된 시진핑의 후계자가 없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시진핑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강력한 권력집중이 정책 추진의 일관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최고지도자가 갑자기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국 헌법에는 국가주석의 직무승계 규정이 존재한다. 그러나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권력은 국가주석직뿐 아니라 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권한까지 결합돼 있다.
따라서 국가주석의 법적 승계가 이뤄진다고 해서 당과 군을 포함한 전체 권력체계의 승계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중국은 최고지도자의 건강 상태에 관한 정보를 제한적으로 공개한다. 외부에서는 정상회담 일정의 변화나 공개 활동의 빈도 등을 통해 지도자의 상태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시진핑의 건강 문제가 현실적인 직무 수행의 제약으로 나타날 경우, 중국은 지도자의 건강이라는 개인적 문제와 후계구도의 불투명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마주할 수 있다.
[11월 선전 APEC, 시진핑 리스크의 시험대 되나?]
이제 국제사회의 관심은 11월 선전 APEC 정상회의로 향하고 있다. 중국은 이번 행사를 통해 세계 경제와 국제질서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과시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회의의 핵심 일정이 축소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중국의 정상외교 운영 방식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중국이 실제로 장관회의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정상들의 비공식 회동을 취소하는지 여부다. 둘째, 시진핑이 APEC 기간에 얼마나 많은 정상회담을 직접 소화하는지, 그리고 장시간 휴식이나 이례적인 일정 변경이 반복되는지 여부다. 셋째, 이러한 변화가 이번 행사에 국한된 것인지, 앞으로 중국의 정상외교 전반에서 반복되는지 여부다.
만약 이러한 현상이 계속된다면 시진핑의 체력과 건강 상태가 중국 외교의 중요한 제약요인으로 등장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릴 수 있다. 결국 선전 APEC은 중국이 세계에 보여주려는 강력한 지도력과 실제 시진핑 중심의 외교 시스템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동시에 확인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Why Times Insight | 커지는 시진핑 리스크, 중국의 가장 큰 약점은 무엇인가?]
이번 APEC 일정 축소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진핑이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정치와 외교가 최고지도자 한 사람의 건강과 활동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다.
FT가 보도한 APEC 일정 축소 계획과 WSJ이 보도한 미국 방문 당시의 장시간 휴식은 아직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진핑의 체력이 중국 정상외교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결국 중국이 직면한 진짜 위험은 시진핑의 건강이상설 자체가 아니다. 시진핑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이 집중돼 있고, 그가 갑자기 국정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후계구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1월 선전 APEC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이 세계에 보여주려는 것은 강력한 시진핑의 지도력이지만, 국제사회가 확인하려는 것은 그 지도력에 의존하는 중국 체제가 과연 얼마나 안정적인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강할수록 중국이 강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시진핑 한 사람의 불확실성이 중국 전체의 불확실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역설이 드러나고 있다.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