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whytimespen1@gmail.com

[중국 대표 기업들의 대규모 주문은 엔비디아로 향했다]
중국이 화웨이를 앞세워 반도체 자립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정작 중국 대표 빅테크들은 엔비디아 제품 확보에 대규모 주문을 넣었다. 바이트댄스·알리바바·텐센트가 주문한 그래픽카드는 300만 장 이상으로, 표시가격 기준 350억 달러를 넘는 규모다. 화웨이가 성장하고 있는데도 미국산 반도체를 향한 수요는 꺾이지 않았다. 이번 주문은 중국의 국산 대체 정책이 기업 현장의 엔비디아 의존까지 해소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1일, “중국 빅테크 3사가 엔비디아의 RTX PRO 5500을 대량 주문했다”면서 “중국 고객 전체의 주문은 600만 장을 넘어섰으며, 엔비디아는 공급을 보장할 수 없다고 안내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미국의 수출통제로 구매 가능한 제품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엔비디아 하드웨어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강하게 나타난 것”이라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화웨이에 부담스러운 대목은 구매자들의 정체다. 바이트댄스·알리바바·텐센트는 중국 AI 서비스와 클라우드 산업의 중심에 있는 기업들이다. 이들의 구매 판단은 국산 기술을 홍보하는 발표와 달리, 실제 사업 운영에 필요한 장비를 확보하는 결정이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반도체의 대표주자인 화웨이가 서방의 기술을 따라잡았으며, 세계적 반열에 올라섰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사실은 중국내 빅테크들마저 화웨이보다는 엔비디아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첨단산업을 대표하는 중국내 고객들이 여전히 미국산 제품에 큰 수요를 보인다는 점은 화웨이 대체론의 한계를 증명하고 있다.
[최첨단 제품을 못 사도 엔비디아를 찾는 이유]
RTX PRO 5500은 엔비디아의 최상위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와는 다른 워크스테이션용 제품이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수출통제 아래에서 구매 가능한 제품을 찾아야 한다. 가장 강력한 제품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엔비디아 수요가 남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업이 AI 반도체를 고를 때는 칩의 최대 연산 성능만 비교하지 않는다. 기존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원활하게 작동하는지, 개발자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서비스를 운영하는 전체 비용이 얼마인지 함께 계산한다. 장비를 바꿔 얻는 이익보다 전환 비용이 크다면 구매자는 익숙한 플랫폼을 계속 찾게 된다.
AI 추론처럼 실제 서비스 운영과 연결되는 영역에서는 이러한 판단이 더욱 중요하다. 응답속도와 운영 효율이 이용자 경험과 비용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주문만으로 세 회사가 모든 상업 서비스를 엔비디아에 맡기고 화웨이를 예비용으로만 사용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화웨이도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웨이의 과거 약점은 실제 취재에서도 드러났다. 로이터는 지난 3월 “정부의 국산 반도체 장려에도 화웨이가 어센드 910C를 민간 빅테크에 대량 채택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반면 신형 950PR은 소프트웨어 호환성과 응답속도 개선으로 바이트댄스·알리바바가 주문을 계획했다”고 전했다.
이 보도가 보여주는 것은 고객들이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화웨이를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 사용 환경에서 불편을 줄이고 사업에 도움이 되는 개선을 제시해야 구매로 이어진다. 화웨이가 중국 기술 자립의 상징이라는 위상을 갖고 있어도, 고객 확보에는 별도의 경쟁력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중국 빅테크가 화웨이를 완전히 버렸다’고 단정하듯 말하면 안된다. 이번 사태의 정확한 의미는 화웨이가 아무도 사지 않는 제품이라는 데 있지 않다. 화웨이의 발전에도 엔비디아를 대체하려는 중국의 목표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점유율 상승과 기술 의존 해소는 다른 문제다]
화웨이의 중국 시장 성장은 분명하다. 로이터가 지난 10월 13일 인용한 IDC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데이터센터용 AI 칩 시장에서 화웨이의 출하량 기준 점유율은 28%, 엔비디아는 34%였다. 화웨이가 실제 고객을 확보하고 판매를 늘리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점유율 상승만으로 모든 경쟁 과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산 공급이 제한된 시장에서 국산 판매가 늘어나는 현상과, 고객이 자유롭게 비교해 국산을 우선 선택하는 현상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정책 지원과 제품 경쟁력이 각각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도 따져야 한다.
이번 엔비디아 주문은 그 구분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국산 제품이 성장하는 동시에 미국산에 대한 강한 수요가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반도체 산업을 ‘완전한 성공’이나 ‘전면 실패’로 설명하기보다, 어떤 작업에서 대체가 진행됐고 어디서 해외 기술 의존이 남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충분히 공급할 수 있어야 대체도 가능하다]
생산 능력도 중요한 과제다. 화웨이 순환회장 쉬즈쥔은 9월 “자사의 AI 컴퓨팅 장비 생산으로 중국 내 수요를 모두 충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는 화웨이 제품에 수요가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필요한 물량을 충분히 공급하는 데 제약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당연하다. 화웨이가 첨단 EUV 장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보다 급이 낮은 DUV 장비를 활용해 억지스럽게 반도체를 생산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EUV가 없는 상황에서 DUV를 이용해 고효율의 반도체를 억지스럽게 만들다 보니 수율도 낮아지고 또 당연히 원하는 시간내에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엔비디아 주문을 모두 화웨이 품질에 대한 불신으로 설명할 수 없다. 기업은 성능뿐 아니라 납기와 공급 가능 물량, 기존 시스템과의 연결도 따진다. 화웨이가 기술적으로 대응 가능한 제품을 보유했더라도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공급하지 못하면 구매 수요는 다른 곳으로 향할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시간표와 기업의 시간표도 다르다. 정부는 장기적인 기술 자립을 추진할 수 있지만, 기업은 당장 출시할 서비스와 확보해야 할 고객이 있다. 국산 장비를 기다리는 동안 사업 기회를 놓친다면 그 비용은 기업이 부담한다. 국산화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이러한 사업상의 조건까지 충족해야 한다.
[Why Times Insight | 국가가 키운 대표 선수도 고객의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이번 주문이 화웨이에 뼈아픈 이유는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육성한 대표 기업이 자국 시장에서도 엔비디아 의존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성장과 기술 발전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곧바로 미국산 대체의 완성으로 포장한다면 현실을 놓치게 된다.
반도체 자립은 제품 발표나 성능 시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객이 필요한 물량을 공급받고, 기존 업무를 원활하게 옮기며, 운영 비용까지 따져 반복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시장 진입을 도울 수는 있어도 이러한 조건을 대신 충족시킬 수는 없다.
기업의 구매 선택을 애국심으로 평가하는 접근도 한계가 있다. 국산 제품을 사용하는 기업이 더 큰 비용이나 사업 지연을 감수해야 한다면 자립 정책의 부담이 산업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국내 공급업체를 육성하는 과정에서도 고객이 문제점을 솔직하게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화웨이에는 해외 경쟁사를 따라잡았다는 선언보다 고객이 체감하는 경쟁력이 중요하다. 어떤 업무에서 강점이 있고 어떤 부분에서 전환 비용이 발생하는지, 공급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지원으로 확보한 시장을 지속적인 고객 관계로 바꿀 수 있다.
중국 빅테크의 엔비디아 주문은 화웨이의 몰락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화웨이를 앞세운 중국의 기술 자립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은 분명히 드러낸다. 국가가 키운 대표 선수라도, 고객의 구매 결정 앞에서는 성능과 비용, 공급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 한국의 언론들에게 당부한다. 제발 중국 당국이 배포하는 보도자료만 믿고, 또 그들이 홍보하는 내용만 믿고 기사를 쓰지 말기를 바란다. 최소한 중국 반도체의 현실이 어떠한지는 제대로 알고 기사를 써야 우리 국민들에게 제대로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