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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6중전회’ 앞둔 중국에 터진 ‘장가오리 사건’, 파장은? - 중국 유명 테니스 선수 ‘미투’, 중국에 번지는 음모론 - 펑솨이 폭로 일파만파 확산, 해외 언론들도 깊은 관심 - 6중전회 앞둔 시진핑, 조용히 묻어버릴 가능성 높아
  • 기사등록 2021-11-05 13:32:43
  • 수정 2021-11-06 00: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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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명 테니스 선수 ‘미투’, “전 부총리가 나를...”]


중국 유명 테니스 선수 펑솨이(彭帥·36)가 시진핑 1기 부총리를 지낸 장가오리(張高麗·75)를 향해 쓴 폭로 글이 중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11월 2일 밤 10시 7분, 펑솨이는 자신의 웨이보에 올린 장문의 글을 통해 장 전 부총리가 강제로 성폭행을 했다고 폭로했다. 자신이 은퇴한 뒤인 2018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웨이보에 올린 글


펑솨이의 폭로 글에 의하면 “베이징(北京)에서 함께 테니스를 친 뒤 장 전 부총리와 그의 아내와 함께 장 전 부총리 집에 갔다가 그곳에서 성관계를 요구받았고 그날 오후까지 울면서 거부를 했지만 저녁 즈음 무섭고 당황스러운 상태에서 결국 동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에는 “부총리쯤 되는 지위에 계신 분이라면, 두렵지 않다고 할 것을 안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화염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이 되더라도, 자멸을 재촉하는 길일지라도 진실을 알리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한 이 글 가운데는 “자신이 장 부총리의 자택에서 성폭행을 당할 당시 그의 아내 캉제(康潔)가 망을 봤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 글은 웨이보에 오른 직후 중국 당국에 의해 20여 분만에 삭제됐다. 팔로워가 56만명에 달했던 펑솨이의 웨이보 계정은 현재 검색이 불가능한 상태이고 연락도 두절되고 있다.


그러나 펑솨이의 이 글은 Byron Wan 등의 반중 트위터리안 등의 SNS를 통해 널리 퍼져 나갔다.


[펑솨이 글, 만리방화벽도 뚫고 중국내 확산]


중국 당국이 전력을 다해 펑솨이의 글이 중국내에 전파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지만 이번 글 자체의 성격상 폭발력이 워낙 크다 보니 그 막강하다던 중국의 만리방화벽마저도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은 두 사람의 이름은 물론 ‘테니스’라는 단어까지 검색 금지어로 설정하면서 철저한 온라인 검열로 차단하고 있지만 고발 글을 캡처한 파일이 해외 인터넷 사이트 등에 돌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내에서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독음을 갖고 풍자한 글들이 넘쳐났다. 그 중 하나가 장가오리(張高麗)의 이름 가운데 ‘고려(高麗)’가 있다는 점을 착안하여 “그해 펑 사령관은 고려를 포격했고, 지금 고려(장가오리)는 펑솨이를 폭행했다(當年彭師炮打高麗 如今高麗炮打彭師)”는 글이 중국의 웨이보 등에 올라왔다.


6·25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국군 펑더화이(彭德懷·팽덕회) 사령관(師, ‘솨이’라고 발음)과 펑솨이의 성(姓)이 같고, 장가오리 전 부총리 이름의 한글 독음이 한국의 옛 왕조 고려인 데 착안한 것인데, 이로 인해 뜬금없이 ‘고려’가 장가오리 사건에 소환된 것이다.


또한 독음을 갖고 풍자한 펑더화이 사령관과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사진 ‘펑솨이와 부총리’ 등 각종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 웨이보 같은 SNS와 해외의 트위터에 봇물을 이뤘다.


난데없이 한국 드라마인 ‘총리와 나’도 순삭됐다. 제목이 문제가 됐는지 영화 평판 사이트 더우반(豆瓣)에서 민감한 내용을 이유로 사라진 것이다. 그만큼 장가오리 사건 내용이 중국내에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이 뉴스는 중국밖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었다. 3일(현지시간)자 뉴욕타임스(NYT)는 베이징발로 펑솨이의 ‘미투’ 소식을 보도했다. 스포츠 스타와 전직 정계 거물의 스캔들에 중국을 뺀 전세계 독자가 주목한 것이다.


[테니스 스타 펑솨이는 누구인가?]


여자 테니스 복식 부문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펑솨이는 사실 입지전적인 인간 승리의 인물이다. 1986년생인 펑솨이는 2013년 윔블던 오픈, 2014년 프랑스 오픈에서 대만 선수 셰수웨이(謝淑薇)와 여성 복식 챔피언으로 세계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가기까지는 엄청난 아픔도 있었다. 중국 주간지 ‘삼련생활주간(三聯生活周刊)’은 지난 2014년 ‘펑솨이: 승화 또는 침묵’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펑솨이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바 있다.


펑솨이는 평소에 선천성 심장병을 앓았다. 테니스 선수 꿈을 이루기 위해 12살이던 1998년 심장에 스프링 6개를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전신마취를 하면 신경에 약간의 손상이 예상된다는 의사의 말에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고 국부마취로 수술을 견뎌냈다.


그런데 2009년 프랑스 오픈 8강전 경기 막바지에 펑솨이가 카메라에 하트를 그린 적이 있었다. 4강 진출에 성공하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펑솨이는 심장 수술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하트 모양을 그린 이유를 설명했다. “난 어린아이를 그렸다. 그 아이의 심장이 두 날개를 달고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그러자 내 라켓이 홀연 경기장 네트로 바뀌어 날개를 덮었다. 다시 심장으로 변해 내 몸 안으로 돌아왔다. 여러분 모두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테니스 스타인 펑솨이는 현재 은퇴한 상태다. 그런 펑솨이였기에 중국내에서 이번 장가오리의 질 나쁜 행각이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장가오리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장가오리는 누구인가?


흙수저 출신의 입지전적인 정치가인 장가오리는 1946년 생으로 올해 75세다. 푸젠(福建) 출신인 장가오리는 중국 남부 푸젠(福建)성 진장(晉江)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홀어머니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문혁 기간에는 광둥(廣東)성의 당시 석유부 산하 마오밍(茂名) 석유공사의 기중기 노동자로 일했고, 장쩌민 전 주석의 측근인 리창춘(李長春) 전 정치국 상무위원에 의해 발탁돼 출세가도를 달렸다.


리창춘은 1998년 광둥성 서기 부임 후 장가오리를 중용해 개혁개방의 핵심 도시인 선전시를 맡겼으며, 장쩌민도 이후 2000년에 그를 산둥(山東)성장으로 발탁했다. 그리고 공산당 권력의 핵심인 중앙당 정치국 상임위원까지 올랐다. 한마디로 시진핑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장쩌민 계열의 인사라는 의미다.


장가오리는 18대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뽑혔으며, 시진핑 1기인 2012년부터 5년 동안 국무원 부총리를 지내기도 했다.


장가오리는 장쩌민(江澤民) 파벌로 분류되지만 18차 당 대회 직전 석유방의 대부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을 매개로 시진핑 주석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사실상 지금까지 발생한 성추문 사건 중 최고위 관리가 연루된 것이다.


[6중전회 앞둔 시진핑에게 득(得)인가, 독(毒)인가?]


그렇다면 이번 장가오리 사건이 6중 전회를 앞둔 중국 정가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번 6중전회는 시진핑의 집권 3연임이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내년 가을 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가장 중요한 행사다. 그런 점에서 장가오리 사건은 어떤 방향으로든 6중전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장가오리가 비록 시진핑 1기때의 부총리이기는 했지만 장쩌민 계파인 상하이방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장쩌민파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장가오리가 시진핑 1기의 부총리로 발탁될 때도 장쩌민파에서 시진핑파를 견제하기 위해서 박아 놓은 ‘말뚝’이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그렇다면 장가오리의 몰락이 시진핑의 장기집권 가도를 훼방할 수 있는 장쩌민파에 대한 중대한 경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장쩌민파'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등이 시 주석 집권 이후 개인 비리로 처벌받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장가오리 사건은 이들을 더욱 추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도 3일(현지시간), “장 전 부총리와 같은 고위 지도자에 대한 공개적 비난은 전례 없는 일이지만 중국 공산당은 실각한 고위 관리들의 성적 비리를 폭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과거 상하이방 출신의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몰락할 때도 성적 스캔들이 먼저 터졌다”고 덧붙였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장 전 부총리의 추문은 중국의 지도급 인사들이 총집합하는 6중 전회를 앞두고 장쩌민계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와 다른 견해도 있다. 우선 장가오리 사건이 터진 시점 때문이다. 11월 8일부터 11일까지 열리게 될 6중전회는 사실 내년 가을 제20차 당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에게도 중요한 정치 일정인데, 이러한 행사의 개막을 불과 며칠 앞두고 터졌다는 점에서 정치적 파장에 관심이 모아졌다.


우선 초점은 과연 장가오리 사건을 시진핑 지도부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은 그동안 도덕성 유지와 함께 권력자들 간의 동반 책임론을 강조해 왔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장가오리 본인의 정치적 배후가 어떻든 간에 그가 시진핑 집권 1기(2013∼2017년) 최고지도부의 일원이었다는 점에서 시 주석으로서도 곤혹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렇다고 장가오리를 처벌하자니 이 사건이 확대되는 것 자체가 시진핑 3연임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고 또한 ‘경고’ 이상의 처벌을 위해서는 실제 사실을 확정해야 하는데 이는 중국 최고지도부 내의 추문으로 이어지고 권력투쟁도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시진핑 지도부는 이 사건을 유야무야 덮어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미국 CNN방송은 “중국 당국은 빠른 속도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며 “중국 지도부가 파장 확산을 우려한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미국에 머무르는 덩위원(鄧聿文) 전 중공 중앙당교 ‘학습시보’ 부편집인도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통해 “최고 지도부의 성추문을 이런 식(검열)으로 처리하는 것은 극히 정상”이라며 “중국공산당은 고위 관리에게 몸단속을 요구하지만 장가오리(사건)는 개인 도덕 문제로 사실상 광범하게 존재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덩위원은 “장 전 부총리는 상무위원 시절 서열이 가장 낮았다. 퇴직 후 영향력도 인맥도 없다. 경제 담당 부총리는 자기 사람을 키울 수 있는 공안부 같은 힘 쎈 자리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장쩌민 파벌에 대한 경고로 보기에는 근거가 약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에 반하는 음모론도 분명히 존재한다. 음모론은 삼엄한 중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에서 전직 상무위원 이름은 게시가 안 되는 ‘민감어’임에도 불구하고 펑솨이의 폭로 글이 20여분이나 지워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에 대해서도 반론이 있다. 중국의 민감어 검열은 인공지능(AI)이 하는데, 장가오리 글이 20여분이나 삭제되지 않은 것은 장가오리라는 이름 자체가 민감어가 아니었고 더불어 100만 이상 클릭을 자동 감지하는 시스템인데, 펑솨이의 글이 게시된 후 초기에는 클릭 자체가 적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모론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덩위원 전 편집인도 음모론에는 회의적이다. 현재 6중전회를 앞둔 시진핑의 입장에서 쓸데없는 잡음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별로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덩위원 전 편집인은 “시진핑은 당의 이미지 훼손을 바라지 않는다. 자작극이라면 인터넷을 지금처럼 봉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달리 만일 검은 배후가 있다면 목적은 무엇일까? 시진핑 흔들기? 6중전회 방해? 역사결의 훼방? 모두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펑솨이의 폭로로 인한 소동은 중국밖에서만 요란한 사건으로 부각될 것이고, 중국내에서도 SNS를 통해 이런 저런 소문들이 퍼져 나가겠지만 여느 때처럼 중국 공산당은 함구하면서 모르쇠로 일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스터리로 묻힐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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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원 객좌교수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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