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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분석] 시진핑은 왜 중국 공산당 100년 역사를 뒤집으려 할까? - '3차 역사결의'한다는 시진핑, 무모한 역사뒤집기하고 있다! - 덩샤오핑 뭉개고 자신을 마오쩌둥 반열로 올리려는 것 - 3차 역사결의, 중국을 암흑시대로 되돌리려는 것
  • 기사등록 2021-10-20 21:45:21
  • 수정 2021-10-21 07: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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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6중전회에서 사상 세 번째 역사결의]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오는 11월 8일부터 11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 전회)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대에 이어 3번째로 '당 역사 결의'를 채택할 것으로 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등 관영매체들은 19일 “6중 전회에서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한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결의'를 심의할 것”이라면서 “18일 시진핑 총서기 주재로 회의를 열어 이 같은 일정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도 이날 “중국 공산당이 6중전회에서 3번째 역사 결의를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역사결의’가 뭐길래?]


오는 11월의 6중전회에서 결의하게 될 ‘역사결의(歷史決議)’라는 것은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내용에 대한 평가를 담는 것으로, 이 결의가 채택된 것은 중국 공산당 창당 이후 지금까지 100년 동안 마오쩌둥(1945년)과 덩샤오핑(1981년) 때 2차례뿐이다.


1945년 4월20일 제6기 7중 전회에서 통과된 '약간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와 1981년 6월 27일, 제11기 6중 전회에서 채택된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가 그것이다.


우선 1945년의 '역사 결의'는 혁명을 주도한 마오쩌둥의 당 지도력 확립이 갖는 의의를 인정하는 내용을 담는 한편 '마오쩌둥 사상'에 당 지도 사상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런데 1982년 6월 27일의 ‘역사결의’는 1949년 중국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면서부터 1981년 당 제11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이르기까지 중국 공산당의 주요정책과 사건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평가를 내린 것으로, 마오쩌둥(毛澤東)의 공로와 과오를 비판하면서 마오쩌둥의 과오를 인정하고 그의 우상화를 부정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결의는 8개 분야, 38개 항목과 3만 5000자로 구성되어 있다.


덩샤오핑 시대의 이러한 역사 결의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마오쩌둥은 영원히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는 ‘무오류’의 우상적인 신화를 뒤엎고, 마오쩌둥의 신적(神的) 지위를 붕괴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국 공산당 100년 역사상 딱 두 번밖에 없었던 ‘역사결의’를 시진핑 주석이 3번째로 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3번째 역사결의를 하려는 이유?]


그렇다면 시진핑 주석은 왜 이 시점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행했던 역사결의를 3번째로 하려는 것일까?


(1) 중국 공산당 100년 역사를 재정리하기 위해


이번에 시진핑 주석이 ‘역사결의’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새로운 차원에서 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시진핑은 자신을 마오쩌둥과 같은 반열에 서 있는 존재임을 부각시킨 바 있다. 지난 7월 1일의 중국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도 자신이 곧 마오쩌둥임을 분명히 했었다.


이날 정치국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보더라도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중공 역대 지도부 중 4명을 언급하면서 “혁명·건설·개혁에서 중대한 성취를 이뤘고, 귀중한 경험을 축적했다”고 평가한 내용에 이어 시 주석 재임기에 대해 “새로운 중대한 성취를 이뤘고, 새로운 귀중한 경험을 축적했다”며 앞선 4명의 지도자와 분리했다.


또한 시 주석 집권기 동안에 “당심(黨心), 군심(軍心), 민심(民心)이 전례 없이 결집하고 진작됐다”고 했다. 이러한 서술은 중국 공산당 100년의 역사를 마오쩌둥의 1기에 이어 시진핑 주석 집권을 통해 2기가 시작된 것이라 정의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말해 그동안 중국 역사를 거론할 때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과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을 중국 공산당 역사의 핵심 인물로 봤고, 특히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마오쩌둥 시기, 덩샤오핑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곤 했었다.


즉, 중국 공산당 역사 속에서 신중국의 '창업자'인 마오쩌둥은 외세에 시달리던 중국을 일어서게(站起來) 했다면,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설계사로서 중국을 부유하게(富起來)했고, 이를 통해 중국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진핑은 그 덩샤오핑을 마오쩌둥의 반열이 아닌 장쩌민과 후진타오 수준의 지도자로 격하하면서 자신이 덩샤오핑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이고 마오쩌둥과 동일한 반열의 인물로 부각하려 한다는 뜻이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중국을 강하게(强起來) 만들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아니라 마오쩌둥-시진핑으로 정리하면서 자신의 역사적 위상을 마오쩌둥의 반열에 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콩 명보는 “중공 100년 역사를 시진핑 집권 전과 후로 나눈다는 의미”라고 정리했다.


(2) 마오쩌둥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기 위해


시진핑의 3번째 역사결의의 또 하나의 의도는 마오쩌둥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는 덩샤오핑의 ‘역사결의’ 내용을 다시 마오쩌둥의 신격화로 환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시진핑 자신에 대한 신격화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실 덩샤오핑 시기의 2차 역사결의는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의 정치적·경제적 가치관과는 상당히 달랐고 지향하는 바도 차이가 났기 때문에 마오쩌둥을 밟고 넘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새로운 중국의 역사를 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차 역사결의에는 1957년 대명대방(大鳴大放)운동에 대한 반우파투쟁(反右派鬪爭) 비판, 1958년 대약진(大躍進)운동과 농촌인민공사화(農村人民公社化)운동의 실패, 1959년 펑더화이[彭德懷]를 비판하는 반우경투쟁(反右傾鬪爭)에 대한 비판, 1963∼1965년 일부 도시와 농촌에서 전개한 사회주의교육운동에 대한 비판, 1965년 문예계 ·학술계에 대한 과도한 정치비판, 1966∼1976년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 등의 내용이 조목조목 담겨 있다.


한마디로 마오쩌둥의 ‘무오류’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마오쩌둥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원리와 마오쩌둥 사상의 궤도를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이러한 마오쩌둥의 행적 비판을 바탕으로 자신은 사실상 마오쩌둥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면서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그러한 덩샤오핑의 결단이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중국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지금의 중국이 본래의 공산당 사상을 벗어나 타락한 자본주의의 사상에 물들어 있다”면서 “지금의 중국을 원래 마오쩌둥이 창안했던, 공산당 정신으로 투철한 중국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공동부유론을 본격적으로 꺼내든 것이고 중국의 경제를 공산당이 주도하는 체제로 변화시키면서 ‘모두가 잘 사는 인민 경제의 중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 그러한 점을 시진핑의 3기, 곧 3연임을 통한 장기 집권의 핵심 아젠다로 삼으려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시진핑의 3차 역사결의는 덩샤오핑에 의해 수정되었던 마오쩌둥의 무오류를 다시 복원하면서 마오쩌둥에 대한 비판들을 삭제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다시 말해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의 공(功)보다는 과(過)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했다고 보고, 시진핑은 아예 그러한 잘못된 덩샤오핑의 역사결의를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곧 마오’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초석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3번째 역사결의에 무슨 내용을 담을까?]


그렇다면 시진핑의 3차 역사결의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기게 될까? 당연히 핵심은 시진핑의 장기집권 가도를 열기 위한 리더십의 정당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통해 잘못된 자본주의 유입이 지금의 중국에 어떠한 부작용들을 일으키고 있는가에 대해 사회적·사상적 근원을 분석하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서 시진핑이 주석으로 취임한 후 중국을 ‘제2의 창업 시기’로 만들었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2012년의 시진핑 등극 이후 추진했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비롯해 부패 척결, 군사력 증강 등을 통해 ‘미국을 압도하는 중국’으로 만들었다는 점과 '신(新)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통해 중국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자화자찬이 가득 담길 것으로 판단된다.


더불어 첨예한 미중갈등 국면에서 세계 패권 장악이라는 중국몽(中國夢) 달성을 위해 확고하고도 안정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내용 역시 비중있게 다뤄질 것이다.


이와 관련,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지난 9월 28일자 1면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계속 성공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선언'에서 시 주석이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이후 추진한 부패 척결, 군사력 증강, 일대일로(一帶一路) 등을 열거한 뒤 중국이 강대국으로 비약한 근본은 "시진핑의 신(新)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과학적 지도에 있다"고 쓴 바 있다.


[결국 시진핑의 장기집권이 목표]


결국 시진핑의 3차 역사결의는 시진핑 자신의 3연임을 넘어 장기집권으로 가는 발판을 확고하게 다지기 위한 포석이라고 보여진다.


중화권 매체인 둬웨이(多維) 역시 “중국 공산당이 오는 11월의 6중전회에서 시진핑 시대로의 진입을 알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당 입장에서는 올해가 창당 100년을 결산하며 새 시대를 천명하기 좋은 기회”라는 것이다.


시진핑의 3연임이 확정되는 것은 내년 2022년 11월이다. 아직까지 1년여가 남아 있다. 이 1년 열두달은 시진핑에게 있어 지독히도 긴 세월이 될 것이고, 또 자신의 발길에 채이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자신을 억누르는 커다란 집들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생사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기에 앞으로의 1년이 시진핑에게 어떠한 시련을 안겨다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왕조 창업과 천하 통일 위업 달성에 마음이 급했다. 그럼에도 초야에 머물던 주승에게서 “성을 높이 쌓고, 식량을 비축하고, 왕을 서둘러 칭하지 말라(高築墻, 廣積糧, 緩稱王)”는 조언을 듣고 마음을 비우면서 결국 통일왕조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시진핑은 지금 주원장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스스로 왕이라 칭함을 받는 그 자리로 올라가려 하고 있고 스스로 세계 패권국 미국과 맞서려 하고 있으며, 대만에 대해 싸움을 걸면서 언제 어떠한 충돌로 점화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한발 한발 딛고 있는 것이다. 살얼음판이다.


중국 역사를 되돌리는 시진핑의 무모한 도전이 과연 중국 역사를 어떻게 바꿀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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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EDUIN News 대표
    -전 OUR NEWS 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기획팀장
    -전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단법인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이사장

    -저서: 북한급변사태와 한반도통일, 2012 다시우파다, 선거마케팅, 한국의 정치광고, 국회의원 선거매뉴얼 등 5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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